출발은했지만 與野 ‘협치’는 여전히 미지수

▲ 정세균 의원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해 신임 국회의장에 선출된 뒤 동료 의원들에게 축하를 받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설석용 기자] 정치권의 초반 기 싸움으로 개원한 20대 국회 역시 법정시한 내 원 구성을 마치지 못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의 줄다리기는 그 어느 때보다 팽팽했다. 그러나 국회의장 후보로 거론됐던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이 더민주에 양보의 뜻을 표명한 후 상황은 빠르게 전개됐다. 더민주는 국회의장을 맡는 대신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직을 새누리당에게 넘겼다. 양쪽 모두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다. 국민의당 역시 2개 상임위를 차지하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3당은 사이좋게 상임위 배분을 마쳤다.

20대 국회는 22년째 법정시한을 어기고 있다는 비판여론을 뒤로한 채 간신히 초고속 원 구성을 마칠 수 있었다. 이에따라 불가능할 거라던 ‘협치(協治)’ 가능성이 다시 한 번 화두에 올랐다. 임기 말기에 접어든 박근혜정부로서는 성공적인 국정 마무리를 위해서는 야당과의 우호적인 관계가 절대적이라는 점에서 협치 가능성은 여전히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반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국회는 오는 13일 최종적으로 원 구성을 마무리한다. 여야 상호 양보로 일단 표면적으로 산뜻한 출발을 마친 20대 국회가 ‘협치’를 이룰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2년째 국회법 위법 상태 시작 불명예
與野 국회의장-법사위장 주고받기 거래

◆ 여야 힘겨루기로 시작한 20대 국회

지난달 30일 제20대 국회가 개원했다. 여야는 신임 국회의장 자리를 놓고 공방을 벌이며 원 구성 협상에 난항을 예고했다.

앞서 14대 국회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시기를 놓고 여야가 논쟁을 벌이다 무려 125일 만에 원 구성을 마치게 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이를 계기로 1994년 국회법을 개정해 원 구성 법정 시한을 명문화했다.

현행 국회법 5조3항에 따라 총선 후 첫 임시국회의 집회를 임시 개시 후 7일에 열도록 하고, 15조1항에서는 이때 국회의장과 부의장 선거를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41조3항에 따라 상임위원장은 임시국회일로부터 3일 안에 해야 한다.

그러나 이후 22년 동안 단 한 번도 원 구성 시한을 지킨 적이 없어 이미 사문화된 법이라는 지적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번 20대 국회는 특히나 여소야대 국면으로 시작해 이들의 기 싸움이 더 치열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선출 직후부터 원내 제1정당임을 내세워 국회의장을 더민주가 맡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제1야당임을 강조하며 법제사법위원장 역시 더민주의 몫이라고 강력히 치력했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여야가 나눠야 한다며 우 원내대표의 뜻을 반대했다.

3당 원내대표단이 꾸려진 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친분을 과시하는 등 상대적으로 고립된 더민주의 전략이었다는 분석이다.

우 원내대표는 본회의를 열어야 하는 7일 오전 새누리당에게 법사위원장은 양보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당시는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일각에서는 더민주가 초반부터 주도권을 잡기 위해 기선제압용 카드로 국회의장과 상임위원회 배분 문제를 사용했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의 힘겨루기로 인해 20대 국회 역시 7일 예정됐던 1차 본회의가 무산됐고, 국회의장과 국회부의장 선출이 9일에 이뤄져 사실상 법정시한을 지키지 못했다. '위법'상태로 의회를 시작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 새누리당 국회의장 양보 극적 타결

그러나 새누리당 국회의장 후보로 가장 유력했던 서청원 의원이 국회의장직을 포기한다는 발언을 하면서 상황은 빠르게 전개됐다.

서 의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 토론회 축사에서 "이번에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패했다"며 "왕도는 없다. 국회의장은 없다"고 거론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그는 "분명히 말한다. 우리 새누리당은 통 크게 미래를 보면서 야당이 국회의장을 달라면 줘버리라"며 "(그 문제로) 원 구성을 놓치지 말라. 8선 선배로서 말씀 드린다"고 정진석 원내대표에게 국회의장직을 포기할 것을 거듭 주문했다.

이에 정 원내대표는 "서청원 의원께서 위대한 용단을 내렸다"며 서 의원의 국회의장직 포기 의사를 존중했다.

정 원내대표는 "국민들은 빨리 원 구성을 마쳐 국회가 민생을 돌보는 일에 착수하라고 요청하는데 협상 당사자가 못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면서 "자기희생의 용단을 내린 서청원 의원에게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드리고, 이 순간 한 인간에 대한 한없는 신뢰를 표한다"고 서 의원을 극찬했다.

이후 정 원내대표는 "야당에 국회의장직을 양보하겠다"고 국회의장 양보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그러면서 "운영위와 법사는 당연히 우리가 가져간다"며 "운영위는 처음부터 무조건 여당이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의장을 야당이 가져가면 법사위는 당연히 새누리당이 가져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새누리당이 더민주와 공방을 벌여오다 한 순간 입장을 선회한 것은 22년째 원 구성이 지체돼개원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을 의식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국회 역시 원 구성 협상이 조짐이 보이자 야권을 향한 강수를 뒀다는 관측이다.

새누리당은 당장 국회의장을 내어줬지만 통큰 협상을 보여줌으로써 앞으로 야권에 대한 협상카드를 확보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더불어 민심확보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실상 더민주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맡는 건 무리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었다. 더민주가 이 주장을 강행하면서 여야의 원 구성 협상이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한편, 새누리당의 국회의장 양보로 더민주 내 국회의장 후보군으로 관심이 집중됐다. 원혜영 의원이 8일 저녁 국회의장 경선 출마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정세균·문희상·이석현·박범계 의원 등 4파전이 이뤄졌다.

더민주 역시 9일 오전 바로 의원총회를 소집해 정세균 의원을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하며 속도를 높였다.

▲ 20대 국회의장단에 선출된 (왼쪽부터) 새누리당 심재철 국회부의장, 정세균 국회의장,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사진=뉴시스)

野 국회의장 탄생 더민주 실익명분 챙겨
3당체제 본격 출격 상임위 8:8:2 구성
헌정사 역대 최단 기간 원 구성 기록

◆ 신임 국회의장 더민주 '정세균' 선출

정 의원은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실시된 국회의장 선출 투표 결과 총 287표 중 274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로써 14년 만에 집권여당이 아닌 야당에서 국회의장이 선출됐다.

정 의원의 국회의장 당선은 의미가 남다르다. 여소야대의 20대 국회에서 현 정부를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선두주자론'을 펼치며 의지를 굳혔다. 대권을 꿈꾸던 그가 국회의장으로 입장을 굳힌 데 대해 지역구민들에 대한 책임정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정계 복귀 무대로 종로를 선택하며 대권 행보라며 '떠날 사람'이라는 인식이 낙선의 이유로 언급되기도 했다.

정 의원은 국회의장에 선출된 직후 수락 연설문을 통해 "먼저 저를 의장으로 선택해주신 선배·동료 의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며 "막상 이 자리에 서보니 20대 국회의 첫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었다는 기쁨과 영광에 앞서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이어 "20대 총선 민심으로 만들어진 여소야대, 다당체제 하에서 국회의장에게 부여된 막중한 소임에 최선을 다하여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드는데 제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정 의원은 "지금 우리 국회가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많다"며 "피폐해진 민생을 살피는 일,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만드는 일, 오랜 타성으로 무너진 국가 시스템을 재건하는 일, 희박해진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 나가는 일, 시장의 공평성을 유지하고, 양극화를 해소하는 일, 국민 누구나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사회 안전망을 정비하는 일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의 책임성을 강화하고, 무너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는 국회,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무주에서 종로 진출까지 성공한 정 의원은 평소 뚝심있는 정치행보를 보여 왔다. 입법부 수장이 된 정 의원은 정부여당에 맞서 소신 정치를 펼칠 거란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의장 선출에 이어 새누리당 심재철 의원과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이 20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확정됐다. 이로써 3당은 골고루 입법부 수뇌부에 배치된 상황이다.

당초 난항을 예상했던 여야 협상이 빠르게 전개되면서 국회의장단 구성이 결국 법정시한은 넘겼지만 최근 30년 이래 가장 빨리 마무리했다는 분석이다.

마친 여야는 이제 상임위 구성만을 남겨 놓고 있다. 총 18개 상임위로 구성돼 더민주:새누리당:국민의당이 8:8:2의 상임위원장을 나눠 갖는 데 합의를 이뤘다.


◆ 상임위 구성도 신속 '협치' 기대해 볼만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은 8개 상임위를 맡는다. 국회의장을 내어주고 법사위와 운영위, 정무위 등 핵심 상임위를 차지해 실리는 축구했다는 평가다.

통상적으로 야권의 몫이었던 법사위는 모든 법안들이 거치는 최종 관문이다. 또 청와대를 소관 기관으로 두는 운영위를 가져옴으로써 박근혜정부 임기 말기에 안정적인 정책보좌가 가능해졌다. 또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까지 확보해 창조경제 정책을 뒷받침할 수 있게 됐다.

총선 이후 2개 상임위를 잃은 새누리당은 8개 구성 중 주요 상임위원장직을 넘겨받아 사실상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민주가 국회의장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면서 새누리당의 선택은 불가피했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법사위까지 주장했던 더민주가 이를 양보하면서 새누리당으로서는 최선의 이득을 챙겼다는 해석이다.

국민의당 역시 산업통상자원위와 교육문화체육관광위를 가져오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여야는 사이좋게 더민주 8개, 새누리당 8개, 국민의당 2개로 상임위 배분을 마쳤다. 오는 13일 본회의를 열어 원 구성을 최종 마무리할 계획이다.

정치권에서는 20대 국회를 맞이하면서 '협치'를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난달 18일 '임을 위한 행진곡' 합창이 논란을 일으키면서 이미 협치는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여야가 보여준 양보 정치로 협치 가능성을 충분히 내비쳤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임기 말기를 향하고 있다는 점 역시 여야의 협치가 가능하다는 전제다. 정부여당은 레임덕 조기화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야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20대 국회는 정치권의 큰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14년 만에 야당 국회의장이 선출, 16년 만에 등장한 여소야대, 20년 만에 재현된 3당 체제는 이번 국회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수식어들이다. 여기에 19대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역대 최단 기간에 원 구성을 마친 국회로 기록되기도 했다. '최악의 국회'라는 한 줄을 남기고 끝난 19대와는 사뭇 다른 전개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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