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혐의 결론 내려고 2년 넘게 걸렸나

삼성화재에 대한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물량 몰아주기가 결국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다. 이에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2년 반을 끈 조사 끝에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기업보험시장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제대로 된 판단기준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만 끌다가 삼성 등 재벌들의 몰아주기 거래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삼성그룹 계열사, 삼성화재에 기업보험 몰아주기 ‘무혐의’ 
“공정위, 입증자료 확보하지 못한 채 형식적 조사” 비난

삼성의 보험 몰아주기는 지난 2007년 국정감사에서 알려졌다.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영주 의원은 “삼성그룹이 지난 2006년 계열사의 보험료 중 97.8%인 4099억여 원을 삼성화재에 내 사실상 삼성화재에 전 계약을 몰아줬다”고 주장했다.

2년 반 조사 결론은 ‘무혐의’

보험 몰아주기를 한 재벌은 삼성그룹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김 의원은 “손해보험회사를 보유한 기업의 계열사들이 기업보험의 90% 이상을 입찰경쟁이 아닌 수의계약 방식으로 그룹 소속 보험사에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의혹이 제기되자 공정위는 재벌계열사들의 기업보험 몰아주기 등 부당지원 혐의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공정위는 2년6개월 동안 조사결과를 내놓지 않고 계속 “검토 중”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공정위가 이렇게 시간을 오래 끌자,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조사 관련 자료를 거의 확보하지 못한 채 형식적으로 조사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2년 반이 지난 12월16일 안영호 공정위 시장감시국장은 “지난 8일 전원회의에서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삼성정밀화학, 삼성코닝 등 삼성그룹 4개 계열사가 계열 손해보험사에 기업보험을 몰아준 행위가 부당지원에 해당되는지를 심사한 결과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고 밝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재벌그룹이 계열사 등 특수관계회사에 상품이나 용역 등을 부당하게 제공하거나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는 것을 부당지원 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적정 가격 수준을 적용하기 어려워 부당성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만 낭비, 기준 정립했어야” 
 
이에 이날 경제개혁연대는 “2년 반 동안 공정위는 무엇을 했냐”며 “공정위가 삼성 등 재벌들의 몰아주기 거래에 대해 면죄부를 준 셈이 됐다”고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비록 기업보험의 특성상 적정 가격(보험료)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고, 손보사 선택시 재벌 계열 손보사가 가진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우위 등을 감안할 필요성도 있겠으나, 이 같은 이유로 무혐의 결정을 내릴 것이었다면 2년 반이라는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그 기간 동안 보험 물량 몰아주기와 관련한 최소한의 판단기준이라도 정립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업보험시장의 특수성상 현행 부당지원행위 기준에 따른 부당행위로 규제하는 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재벌 계열사들의 계열 손보사 몰아주기 거래 자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며 “공정위는 부당성 입증이 어렵다는 말로 합리화하거나 여기서 사건을 종결할 것이 아니라, 계열 손보사 몰아주기와 관련한 판단기준 및 규제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한편, 20일 법무부는 이사 등 경영진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와 직계가족 등이 회사와 사업상 거래를 할 때 이사회의 승인을 받도록 상법을 개정하기로 했다. 삼성의 삼성화재 물량 몰아주기와 같은 ‘회사기회의 유용’을 막는 장치를 상법에 명문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오래 전부터 회사기회 유용 금지 명문화를 요구해 온 전문가들은 법무부의 상법 개정 방침에 대해 “이미 상당수 재벌 2·3세에게 부와 재산을 승계하는 대표적 수법으로 이용돼 왔기 때문에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환영한다”는 의견과 함께 “하지만 회사기회 유용 금지 명문화와 포이즌 필을 맞바꾸려는 시도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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