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계 신화적 존재 이중섭 조명...다양한 행사 봇물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는 천재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짧지만 강렬한 삶과 예술세계를 재조명하는 다채로운 문화예술행사가 예정 돼 주목받고 있다.

민족의 상징인 ‘소’를 강렬하고 인상적인 붓필로 그려낸 ‘민족화가’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추앙받고 있는 이중섭은 전쟁과 가난, 피란, 질병 등으로 얼룩진 비운의 삶을 살았다. 식민시대와 조국 분단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궁극의 작품을 그리고자 했던 그는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며, 현대미술계의 ‘신화적 존재’가 됐다.

그의 예술혼을 기리는 이번 전시·연극·영화를 통해 천재화가의 드라마틱한 삶과 예술세계를 한 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중섭, 백 년의 신화 展

▲ 이중섭 '황소', 1953-54, 종이에 유채, 32.3x49.5, 개인소장.(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올해로 탄생 100주년, 작고 60년을 맞은 이중섭의 개인전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중섭의 대표적인 유화 60여 점을 비롯해 생애 전반에 걸친 드로잉, 은지화, 엽서화, 편지화, 유품 및 자료 등이 총망라됐다. ‘황소’, ‘욕지도 풍경’, ‘길 떠나는 가족’ 등 이중섭의 생애 전반에 걸친 대표적인 작품들과 그동안 산발적으로 보존되고 있던 이중섭의 원작을 최대한 모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식민, 해방, 전쟁을 관통하며 정처 없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이중섭이 거쳐 간 부산·제주도 피란시기, 통영시대, 서울시대, 대구와 서울(정릉)시대 등 ‘시공간’에 따라 전개된다. 대표작 ‘소’ 연작 등 이중섭 생애 최고의 작품들을 통해 해학과 격조가 풍겨 나오는 이중섭 화풍의 정수를 볼 수 있다. 10월 3일까지 서울 중구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

▲ 연극 '길 떠나는 가족'.(사진=연희단거리패 제공)

극단 연희단거리패는 화가 이중섭의 드라마틱한 일생을 조명하는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식민치하 일본여인과의 결혼, 1.4 후퇴로 인한 남하, 정신병원에서의 죽음 등 예술가를 억압하는 시대적 상황과 경제적 빈곤이라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치열한 예술혼으로 맞서는 이중섭의 고단한 삶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환상적인 무대로 꾸며낼 예정이다. 연희단거리패 창단 30주년 기념작 중 하나로 배우 윤정섭이 이중섭을 연기하며, 김소희·오동식 등 연희단거리패의 대표 배우들이 열연한다. 연극 제목은 이중섭이 1954년 그린 유화 ‘길 떠나는 가족’에서 따왔다. 9월 10일~25일 서울 종로구 홍익대학교 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볼 수 있다.

영화 ‘이중섭의 아내’

▲ 영화 '이중섭의 아내' 포스터.

이중섭의 아내와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엿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도 개봉된다. 영화 ‘이중섭의 아내’(감독 사카이 아츠코)는 비운의 삶을 살다 간 천재 화가 이중섭의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가 직접 전하는 이중섭과 함께한 7년의 삶과 사랑을 다뤘다. 야마모토 마사코의 한국 이름 ‘이남덕’은 이중섭이 붙여 준 이름으로 ‘남쪽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중섭의 삶과 사랑을 재조명한 이번 영화를 통해 그동안 단편적으로만 알려졌던 인간 이중섭의 새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는 9월 8일 개봉 예정이다.

비운의 천재화가 이중섭은?

▲ 화가 이중섭.(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이중섭은 일제강점기인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 시절 미국 예일대학 출신의 서양화가 임용련을 만나면서 처음 미술에 입문하게 된다. 이후 1930년대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의 문화학원을 다니며 유학생활을 했다. 이 무렵 만난 문화학교 후배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를 만나 1945년 결혼해 2남을 두었다.

1950년 한국전쟁 중에 부산과 제주도를 전전하는 피난살이를 하다가 국제연합(UN)군 부대 부두노동을 하면서 모은 양담배갑으로 은지화를 제작했다. 이 시기 생활고로 부인이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떠나면서 가족과 이별하게 됐다.

1956년 만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통영·진주·서울·대구·왜관 등지를 전전하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가족과 재회할 수 없다는 절망감 속에서 거식증을 동반한 정신적인 질환을 앓으며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