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취지는 좋은데 현실에서 정착은 ‘험로’ 예상

‘밥 먹지마’가 아닌 ‘먹었으면 더치페이 하라’는 법
낡은 접대 관행 고치고, 투명한 사회 개선 기대감
광범위한 적용 대상 부작용과 피해 우려 목소리도
시작앞서 김영란셋트 등 현실적인 가격대 옥신각신

▲ 지난 5월2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김영란 전 대법관이 자신의 저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를 중심으로 '열린 법 이야기' 북 콘서트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28일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김영란법은 오는 9월28일부터 전격 시행될 예정이다. 이 법안을 제안한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말하는 김영란법은 ‘밥 먹지 말라’는 법이 아닌 ‘먹었으면 더치페이 하라’는 법이다.

‘부정청탁·금품수수를 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가진 해당 법 시행까지 한 달 가량 남은 가운데 사회적으로 대변혁이 예고돼 주목된다. 벌써부터 사회 전반으로 이 법으 시행에 앞서 현실적인 법 적용 여부에 대한 논란과 불안감 또한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당장 김영란 세트로 불리며 시장 곳곳에 관련 상품이 나오는 가운데 일부 생산업체는 이 가격의 현실적인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들은 법의 완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맞서고 있다. 김영란법 시행 30일 앞두고 이 법의 미래를 짚어본다.

‘부정부패의 시발점’ 금품수수 등 비리 막기 위한 법안

▲ (사진=뉴시스)

김영란법은 2010년 ‘스폰서 검사’ 와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을 계기로 기존의 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비리를 막기 위해 만든 법이다.

이들 사건이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다’는 이유로 잇달아 무죄가 선고되자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금품을 받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다. 이에 대한민국 사법 사상 첫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으로 이 법안을 제안했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고 공직자의 금품 수수를 처벌할 수 있게 했다는 데 있다. 그동안 관행으로 여겨졌던 스폰서, 떡값, 전별금, 연줄 등을 포함해 대가성이 없더라도 공직자에게 전해지는 모든 금품을 부정부패의 시발점으로 여기는 것이다.

김영란 법에서는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직무와 관련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형사처벌(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 하도록 했다. 100만 원 이하의 금품의 경우에는 직무관련성을 따져 해당되는 경우만 과태료(2배 이상 5배 이하)를 물게 된다. 또 금품을 제공한 사람도 똑같이 처벌된다.

김영란법은 부정청탁과 관련한 처벌 규정도 강화했다. 김영란법은 금지대상인 부정청탁을 14가지 유형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사실상 공공부문의 거의 모든 분야가 해당된다.

구체적으로는 ▲인가·허가·면허·특허·승인·인증·확인 등의 부정한 직무 처리 ▲인가 또는 허가의 취소, 조세, 과태료, 범칙금 등 각종 행정 처분이나 형벌 부과에 대한 부정한 감경·면제 ▲채용·승진·전보 등 인사에 관한 부당한 개입 등이다.

또한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수상·포상·우수기관 선정 등에 특정 개인이나 단체·법인 등이 선정·탈락되도록 개입 ▲입찰·경매·개발·특허·군사·관세 등 직무상 비밀 누설 ▲특정 개인·단체·법인 등이 계약 당사자에 선정·탈락되도록 개입 ▲보조금·장려금·출연금·교부금 등의 부정한 배정·지원 ▲공공기관의 재화·용역의 부정한 매각·교환 ▲각급 학교의 입학·성적·수행평가 등의 부정처리·조작 ▲징병검사, 부대 배속, 보직 부여 등 병역 관련 업무의 부정처리 ▲공공기관 평가·판정에서 부정한 판정·결과조작 ▲수사·재판·심판·결정·조정·중재·화해 등 업무의 부정한 처리 등도 포함된다.

청탁한 사람과 이를 전달한 사람 모두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청탁을 들어준 공직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제3자를 통해 부정청탁을 하거나, 제3자를 위해 부정청탁을 한 사람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공직자가 청탁을 두 차례 받을 경우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징계 대상에 해당된다. 또 공직자는 직무와 상관없이 1회 100만원, 1년에 3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과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공직자 등’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약 400만명으로 추산된다. 공무원, 공공기관 임직원, 언론계 종사자, 사립학교 임직원 등과 함께 이들의 배우자까지 포함된다.

이에 더해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배우자를 통한 금품수수도 금지했다. 배우자가 공직자의 직무와 상관있는 금품을 수수한 경우 공직자가 이를 알고도 신고하지 않으면 공직자가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공직자들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아는 즉시 소속기관장에게 신고해야만 하며, 신고하면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부과 등을 감경, 면제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가 낡은 접대 관행을 고치고 투명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함께 광범위한 적용 대상으로 인한 부작용과 농림·축산·화훼 분야 등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영란법 기준완화 필요 vs 기준완화는 법을 무력화 시켜

▲ (사진=뉴시스)

이러한 김영란법 시행이 한 달가량 남았지만 여전히 시행령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 초점은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 10만원 즉 3·5·10만원 조항이다. 한마디로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소리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법을 통과시킨 국회와 정당 내부서도 왈가왈부를 계속하고 있다.

식대·경조사비 등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금품의 범위는 시행령으로 정해진다. 국민권익위원회는 5월9일 내놓은 시행령안에서 공직자 등이 직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3만 원이 넘는 식사 대접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게 된다. 단체로 식사 대접을 받았을 경우 1인당 접대 비용은 n분의 1로 상한 여부를 따진다.

또 선물 금액은 5만원 이내로, 경조사비 상한액은 10만 원 이내로 제한했다. 경조사비에는 경조사 목적으로 보내는 화환이 포함되며, 경조사 목적이 아닌 승진 선물 등으로 화환을 보낸다면 5만원의 선물 기준이 적용된다.

이러한 금액 기준에 대해 지난 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는 김영란법의 금품수수 예외 규정을 바꿔달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은 김영란법 시행령상 3·5·10만원으로 규정된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각각 5·10·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거나 그 시행을 유예하도록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농해수위 위원들은 시행령이 원안대로 시행될 경우 연간 2조3000억원 가량의 농축수산물 수요 감소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원안의 식사액 기준이 2003년 시행된 공무원 행동강령을 준용했다는 점을 지적, 이후 10여년 동안의 소비자·농축수산물 물가상승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여당 일부에서도 개정 목소리가 높지만 야당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국민의당 소속 일부 농어촌 지역구 의원들 역시 지난 8일 김영란법 시행령 안에 허용가액으로 명시된 식사비와 선물비를 각각 5만원과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에 대해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 전면금지’와 ‘부정청탁금지’라 설명하며 기준 완화는 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농축수산업 피해를 구실로 부정부패 척결 발목 잡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 김영란법 시행 앞두고 5만원 미만으로 가격을 맞춘 49900원 선물세트 (사진=뉴시스)

한편 추석이 3주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식.음료업계가 실속을 내세운 다양한 선물세트를 앞다퉈 선보이고 있다. 이번 추석은 김영란법 시행의 영향으로 5만원 미만의 선물세트의 비중을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번 추석은 김영란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만큼 백화점 등 일각에서는 고가의 프리미엄 선물세트가 준비되면서 양극화된 선물세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형마트에서는 고품격 상품으로 엄선된 품질을 자랑하는 고가의 선물과는 다르게 김영란법 시행에 대비해서 5만원 이하의 중저가 추석 선물 세트 상품을 지난해보다 20% 가량 확대 구성했다.

햄이나 참치 등의 가공식품과 샴푸, 치약 등 생활 필수품의 경우 선물 세트 가격이 대개 5만원 미만으로 평균 판매 가격은 3~4만원 선이다. 대중적인 가격인 5~20만원대 홍삼 및 건강 기능 식품 기획에도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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