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대장정 불구 특혜 의혹 빗겨간 ‘미완의 수사’ 지적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사진=뉴시스)

소기 성과 자평 불구, 핵심의혹 규명 사실상 실패
최악 넘긴 롯데 재가동, 경영분쟁 잠재 불안 여전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재계 5위 롯데그룹의 총수일가를 대상으로 펼친 검찰의 비리 수사가 4개월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검찰은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대부분의 총수일가를 재판대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비자금 등 핵심 의혹을 충분히 밝혀내지 못한 ‘빈손 수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롯데그룹은 총수의 법정구속이라는 최악의 고비를 넘겼지만 오랜 검찰 수사로 어수선해진 그룹 경영의 재정비라는 숙제가 남아있다. 여기에 아직 풀지 못한 한·일 지배구조 문제와 형제간 싸움 등 잠재적 위협 요인이 여전한 가운데 검찰과의 만만치 않은 법정공방을 남겨두고 있다.

검찰, 신동빈 회장 등 24명 기소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지난 19일 신동빈 회장 등 롯데그룹 총수일가 5명을 비롯해 임원 총 24명을 무더기 기소했다는 그동안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중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신격호(94) 롯데그룹 총괄회장,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 18명은 불구속 기소 됐으며 신영자(74)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등 6명은 구속 기소됐다.

이번 수사를 통해 밝혀낸 롯데그룹 총수일가가 조세포탈과 횡령, 배임을 통해 저지른 범죄 금액은 2791억 원, 롯데그룹 비리 수사를 통해 밝혀진 전체 범죄 금액만 5400억 원이라고 검찰은 설명했다.

검찰은 신 회장에게 1753억원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등 혐의를 적용했고
롯데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은 858억원의 탈세, 508억원 횡령, 872억원 배임 혐의를 적용했다. 롯데가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은 10년간 한국 롯데 계열사 여러 곳에 등기임원으로 이름만 올리고 391억원 상당의 급여를 부당하게 챙긴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한 차례 구속영장이 기각된 강현구(57) 롯데홈쇼핑 사장과 허수영(65) 롯데케미칼 사장 등도 영장 재청구 없이 불구속 기소됐다. 강 사장은 횡령과 방송법 위반 등의 혐의, 허 사장에게는 탈세 및 뇌물교부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최종원 전 대홍기획 대표,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은 횡령, 소진세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장은 변호사법 위반 등의 혐의로 함께 불구속 기소됐다. 서미경씨는 탈세 혐의, 신영자 이사장은 롯데면세점 입점 로비 혐의로 구속돼 이미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그룹경영권 승계구도의 틀에서 벌어진 총수일가의 회사 자금 빼먹기, 이권 취득 횡령·배임 등 총체적 비리를 규명하고 책임있는 총수일가 모두를 재판에 넘겼다”며 “효율적이고 집중적인 수사로 수사장기화 방지에 노력했다”고 자평했다.

숙제 남긴 수사, 의혹은 진행형?

하지만 검찰의 자평에도 이번 롯데그룹 수사에 대한 평가는 박하다. 지난 6월 10일 본격적으로 시작된 롯데그룹의 검찰 수사는 그동안 수많은 의혹에도 불구하고 검찰로부터 제대로 수사받아 본 적이 없는 이른바 ‘수사 불모지’였다는 점에서 큰 기대감 속에서 진행됐다.

검찰이 최종적으로 찾아낸 것은 롯데건설과 롯데홈쇼핑이 조성한 일부 비자금에 불과했고 그나마 비자금 사용처와 정책본부 개입 증거는 찾아내지 못했고 비자금 조성 과정 및 사용처 수사도 성과가 미진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혹의 실체파악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검찰은 신 회장과 핵심 계열사 사장 등 9명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했지만 3명만 청구됐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최대 수혜기업으로 꼽히는 롯데그룹을 둘러싼 전방위 사정이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제2롯데월드 인허가 및 롯데그룹 차원의 거액 비자금 조성 의혹 규명에 대한 기대감이 집중됐다. 하지만 제2롯데월드와 관련한 롯데의 정관계 로비 의혹은 손도 대지 못했다.

▲ 사진=뉴시스

전현직 공군 고위 관계자들과 롯데 측 인사들 간의 유착을 비롯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학 동기인 장경작 롯데호텔 전 총괄사장까지 이름이 거론되면서 MB정권에 대한 수사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지만 검찰은 롯데그룹 7개의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면서 제2롯데월드 시행사인 롯데물산은 제외, 제2롯데월드 관련 의혹을 비껴갔다.

검찰은 줄곧 제2롯데월드 인허가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 단서가 없어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보여왔지만, 사실상 수사의지가 없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롯데홈쇼핑의 로비 의혹도 남은 과제다. 검찰은 수사 초기 10억원대의 로비목적 비자금을 발견했지만 강현구(56) 롯데홈쇼핑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로비 의혹 수사가 지지부진해졌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강 대표와 직원들이 지난해 미래창조과학부의 방송채널 재승인 심사 전후에 소위 ‘대포폰’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은 재승인 관련 대관 로비자금 등으로 7억원을 사용한 업무상횡령 혐의로 강 대표를 불구속기소하는 데 그쳤다. 강 대표가 로비를 한 대상이나, 실제 인허가 연장 심사에 로비가 영향력을 미쳤는지 등은 밝히지 못했다.

법조계 안팎에서 ‘미완의 수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충분한 내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본류를 겨냥하다보니 변죽만 울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검찰 수사 결과 발표로 오히려 롯데그룹이 수년간 짊어져온 각종 특혜 의혹에 면죄부를 얻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검찰의 아쉬운 수사에는 회장의 구속 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부닥친 롯데의 ‘철벽 방어’도 한 몫했다.

앞서 여러 차례 알려진 조직적인 증거 은폐·인멸 외에 그룹 내부 인사들의 굳은 ‘충성’ 또한 수사에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을 지낸 김치현 롯데건설 사장, 정책본부 지원실장을 역임한 채정병 롯데카드 사장 등은 신동빈 회장의 위법 의혹과 관련된 검찰의 질문에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리아세븐 정승인 대표가 조사를 받을 때 불필요한 진술로 회사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결의를 다진다는 취지에서 바지 속에 ‘안중근’이 적힌 종이를 부착했다는 일화는 롯데 관계자들의 남다른 충성심을 드러낸 사건으로 기억된다.

특히 그룹 2인자인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검찰의 수사에 큰 타격을 입혔다.

검찰 수사과정에서 제기됐던 비자금 조성과 각종 로비 의혹은 앞으로도 계속 논란이 될 것으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족쇄 풀었지만 갈길 먼 롯데

롯데그룹은 검찰 수사가 4개월여 만에 종결되면서 그동안 옥죄었던 족쇄는 풀리게 됐지만 앞으로 풀어야할 숙제 또한 산적해 있다.

일단 롯데그룹과 총수일가에 대한 관련된 수사가 완전히 종료된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실정이다. 롯데그룹 비자금 관련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경영권 분쟁으로 촉발된 내부 고소고발건은 아직 남아있다. 이를 통해 롯데그룹의 비리 의혹이 추가로 법정대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달 접수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고소·고발 2건도 남았다. 이 수사는 특수4부(부장검사 조재빈)에 배당된 상태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지난달 신 회장과 이원준 롯데쇼핑 대표 등을 주식회사의외부감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쇼핑이 지난 2013년 5월부터 2015년 11월까지의 공시에서 중국서 인수한 타임즈, 럭키파이 등 기업의 영업권 가치 손실을 낮게 산정해 3700억원이 누락된 허위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럭키파이의 경우, 롯데그룹이 당시 적자였던 중국 홈쇼핑 업체 럭키파이를 비싼 값에 인수한 것과 관련해 롯데그룹 수사 초기부터 비자금 조성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은 오너 일가 소유 회사에 대한 허위 자료를 제출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된 만큼 그 결과를 지켜봐야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2012~2015년 지정자료 제출시 유니플렉스, 유기개발, 유원실업, 유기인터내셔널 등 4개 회사를 누락하는 등 허위 공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회사는 신 총괄회장의 세번째 부인인 서미경씨가 1대 주주로, 막내딸 신유미씨가 2대 주주로 있다. 검찰은 이날 롯데수사를 종결한 이후에도 해당 사건들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또 신 회장은 검찰이 영장 재청구를 않음으로써 인신 구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됐지만 향후 법원에서 유무죄 여부를 가리기 위한 상당 기간의 법정공방이 기다리고 있다. 장기간의 법정공방이 예고되고 있는 가운데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비리 혐의가 진행형 이라는 점 또한 부담이다.

무엇보다 오랜 검찰 수사로 어수선해진 조직을 추수르는 작업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검찰 수사로 중단됐던 호텔롯데 상장과 한·일 롯데 간 지배구조 문제 해소, 지체됐던 대규모 투자와 M&A 등 경영정상화에 다시 시동을 걸 전망이다. 또한, 신 회장이 거듭 강조해왔던 ‘뉴롯데’를 향한 그룹의 체질개선도 본격화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롯데그룹은 다음달께 ‘더 좋은 기업’을 위한 혁신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혁신안에는 순환출자 해소 등 지배구조 개선문제, 호텔롯데 기업공개(IPO) 재추진, 윤리경영 및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검찰 수사 기간 중 수면밑에 가라앉았던 오너 형제간의 경영권 분쟁의 재점화로 그룹 내부의 ‘내홍’은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예전보다 경영권 분쟁의 강도가 더해질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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