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여론 맞선 교과서 추진…갈등 불씨 재점화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유라 관련 이화여자대학교 감사 결과 브리핑을 마치고 퇴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오는 28일 공개한다는 방침을 재차 강조하면서 교육현장과 시민단체와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최순실 사태와 맞물려 국정역사교과서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반발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교육부의 강행 움직임에 교육현장에서는 불복종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고 국정교과서의 집필기준을 공개하는 여론의 공세 또한 높아지고 있어 정부의 향후 행보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국정역사교과서는 추진때부터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논란을 양산해왔다. 1948년 8월15일이 ‘대한민국 수립일’이냐, ‘정부 수립일’이냐를 둘러싼 ‘건국절 논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 등 진보·보수간 논란거리가 많은 현대사와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많은 상고사 등에 대해 교육계 이견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정치권과 시민사회, 보수 성향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각계각층의 국정 교과서 반대 목소리가 컸다. 특히 최근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이 훼손되면서 정부가 국정교과서 추진을 연기하거나 철회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를 예정대로 오는 28일 공개한다는 방침을 재확인하면서 논란이 다시 재점화 됐다.

교육부는 25일 국정 교과서 철회 방침을 세웠다는 일각의 보도에 대해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계획대로 28일 국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라며 “국정화 철회나 국·검정체제를 혼용하는 방법 등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21일 교육부가 공개 방침을 재차 확인, 국정역사교과서 발행을 못 박은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고등학교 ‘한국사’와 중학교 ‘역사’ 등 2종이다. 교육부는 내년 2월초께 교과서를 인쇄해 3월 중 전국 중·고교 6000곳에 적용하기로 했다. 국정교과서는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1월 최종본으로 확정된다. 국정교과서 집필진은 47명으로 교수·연구원, 중·고등학교 교원 등으로 구성됐다.

국정교과서 강행, 들끓는 여론

교육부가 국정교과서 강행의지를 밝혔지만 교육계와 시민단체가 공개를 요구하고 있는 집필기준이나 교과서 내용 등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어 논란은 확산되고 있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을 28일 전용 웹사이트에 e북 형태로 공개하고 브리핑을 통해 편찬기준과 집필진을 별도 발표하기로 했다. 하지만 웹사이트를 통한 국민 의견수렴은 실명인증을 거쳐야 하는 비공개 형식으로 추진키로 해 논란이 예상된다.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오류를 지적할 수 있는 소통창구를 사실상 차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편찬심의기준과 집필 과정을 심의할 교과서 편찬심의위원 명단(16명)도 최종본이 나오면 공개하기로 했다.

이런가운데 법원 국정 역사교과서의 집필기준을 공개하지 않은 교육부의 처분은 부당하다는 판결은 반대 여론에 힘을 싣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소속 회원들이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교육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중단 효력정지결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제공)

지난 24일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는 민변 소속 조영선 변호사가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낸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공개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교육부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집필기준이 공개된다고 해도 국정교과서 집필·심의업무의 공정한 수행이 객관적으로 현저하게 지장을 받을 것이라는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날 법원은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임에도 기각하지 않고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밀실 집필의 절차적 위법성을 지적하는 전향적 판결을 내렸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이 교육부의 집필기준 공개 직전 나온 만큼 실효성 측면에서는 정부의 국정교과서 추진에는 제동을 걸 수 없을 것으로 분석한다.

법원 판결과는 별도로 이미 집필기준과 집필진을 공개할 계획이었던 만큼 국정교과서 추진 동력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교육현장 반발, 국민시선 ‘싸늘’

국정역사교과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이 탄핵정국의 분위기 반전을 위한 도구로 국정교과서를 이용하는게 아니냐는 의심 섞인 해석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다수가 반대할 만큼 사회적으로도 국정교과서를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지고 있다.

국민 10명 중 6명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했다. 찬성 여론은 1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으로 급격하게 줄었다.

지난 24일 리얼미터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반대한다'(매우 반대 46.2%·반대하는 편 14.2%)는 응답은 60.4%로 나타났다. ‘찬성한다’(매우 찬성 7.5%·찬성하는 편 12.4%)는 응답은 19.9%로 조사됐다. ‘잘 모름’은 19.7%였다.

특히 교육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광주지역 전체 중학교가 내년에 국정교과서를 채택하지 않는 방안이 사실상 확정돼 파장이 일 것으로 보인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불채택은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도 다뤄질 것으로 보여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전국 시도교육감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교과서 배포와 대금 지급을 거부하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다.

일부 교육감은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진보 성향으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교육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 102개 대학의 역사교수들도 교육부 장관에게 국정교과서 추진 중단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냈고, 찬성 입장이던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조차 최근 반대로 돌아섰다.

일부 지방교육청은 국정교과서가 나오기전 교과서 신청 취소·반품 등 보이콧으로 맞설 분위기다.

오는 26일 서울 광화문서 열리는 5차 촛불집회서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함께 국정교과서 폐기 요구도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480여개 교육·시민단체가 참여한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이하 저지넷)는 26일 ‘국정교과서 폐기를 위한 시민대행진’을 진행, 서울 대학로 방송통신대 앞에서 행진을 출발해 광화문 촛불집회에 합류한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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