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국정교과서의 핵심, 친일복권·독재미화”

‘1948년 대한민국 수립’ 기술…“역사 주체(건국 공로자) 바꾸려는 의도”
민주주의-경제성장 양립하는 가치…“경제성장 위한 독재, 있을 수 없어”
‘박근혜 게이트’ 씨앗 정경유착·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 박정희 시대 산물
“집필진 성향도 문제 있어”…이념적 우익 편향, 학술적 편향 또렷해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겸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사진=선초롱 기자)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도입부터 논란의 중심에 섰던 국정 역사교과서가 내용 공개 후 더 큰 파문을 불러왔다. 우려됐던 친일-독재 미화에 대한 언급이 상당수 사실로 확인됐으며, 우편향에 따른 사회적 반발도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진보성향 교육감 중심으로는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 거부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을 강요하는 정부 압박도 심해지고 있다.

이와 관련 사학계를 대표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꾸준히 반대해 왔고,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 공개 당일 반대 시위에 나서기도 했던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를 만나 국정 역사교과서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향후 역사교과서 편찬 방향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정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여러 논란 중에서 특히 ‘1948년 대한민국 수립’ 기술을 두고 지속적인 문제제기를 해오셨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1948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할 것인가 아니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술할 것인가 하는 이 부분이 국정교과서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교육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검정교과서와 국정교과서의 차이점으로 특히 이 부분을 강조했다. 또 교육부는 1956년부터 2000년까지는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표기했다가 2001년부터 진보적인 학자들이 ‘정부’를 끼워 넣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과거 역사교과서에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기술이 나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이는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란 기술과 함께 쓰였다. 두 표현을 혼용해서 썼는데, 굳이 따지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원안이라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수립’이란 표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줄임말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교수님 주장대로라면 정부가 사실과 다른 주장까지 섞어가며 1948년 대한민국 수립 표기를 고집하고 있는 것인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시 사람들이 1948년 정부수립일을 어떻게 기념했는지를 살펴보는 게 올바른 접근 방법이다. 이번에 나온 국정교과서 속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 뒤 배경을 보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등장한다. 이와 관련해 대한민국 건국시점이 정확히 언제인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48년을 주장하는 이들은 영토, 국민, 주권을 완전히 확보와 제대로 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됐으며 다른 나라로부터 독립국가로 인정받게 된 시점을 건국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는 달리 1919년을 주장하는 이들은 3.1운동을 통해 우리의 독립의지를 처음으로 전 세계에 알린 날을 건국의 날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외국 사례를 참조해 봤을 때 식민 지배를 받았다가 독립한 많은 나라들이 독립의사를 천명한 날을 기리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음을 기념하는 인디펜던스데이(Independence Day)는 1776년 7월 4일이다. 이날은 미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한 날이지 독립을 쟁취한 날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1919년 3.1운동에 해당한다. 미국은 독립선언 후 7년간의 독립전쟁을 치룬 끝에 1783년 독립국이 됐다. 우리에게 1945년 8월 15일에 해당한다. 이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취임하고 독립정부가 수립된 것은 1789년이다. 우리에게 1948년 8월 15일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미국은 1776년 7월 4일을 독립기념일로 기리고 있다. 우리의 제헌헌법 전문에 1919년 3.1운동 독립정신을 계승해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나와 있는데, 이는 미국처럼 독립을 선언한 날을 기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교과서는 1948년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어느 시점을 건국으로 보느냐에 따라 건국공로자가 바뀌기 때문이다.

 

- 건국 공로자가 변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

1919년을 기준으로 하면 일제 강점기 내내 항일운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이 건국유공자가 된다. 반면 1948년을 건국절로 기리게 되면 1945년 해방부터 1948년까지 활동한 사람이 건국유공자가 된다. 역사의 주인공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말이다. 해방 이후 3년 동안 대한민국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했다. 오히려 대표적 독립운동가인 여운형 선생이 1947년 백주에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사태가 일어났다. 이 3년간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면 대한민국을 수립한 개국공신은 독립운동가가 아닌 친일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김구, 김규식 선생 등 유수한 독립운동가들은 1948년 정부수립에 참여하지 않았다. 단독정부라는 이유 때문인데, 이분들은 분단정부가 수립되면 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해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1948년을 건국으로 보게 된다면 친일파가 개국공신으로 둔갑하게 된다. 친일파의 후손들로서는 역사 세탁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는데, 문제는 교과서에 수록해 이를 확고한 정설로 만들려는데 있다. 반면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1948년 건국 주장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뉴라이트의 건국절 주장을 수용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 겸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 (사진=선초롱 기자)

- 1948년 대한민국 수립 기술만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서술 역시 많은 부분에서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셨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틀렸다는 말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에 대한 기술은 “경제 성장을 이뤘다. 그것을 위해 독재는 불가피했다”라는 논리가 바탕이 됐다. 실제로 그와 같은 논리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공과 과 중 너무 과만 강조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여 국정교과서를 서술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독재 미화이다. 경제성장을 상위 개념으로 민주주의를 하위 개념으로 보고,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독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가 반드시 대립하는 개념은 아니다. 아시아는 후진국이기에 경제성장을 위해선 독재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없는 것은 아니나,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양립할 수 있는 가치이지, 어느 하나를 위해 어느 하나가 희생돼야만 하는 상충개념은 아니다. 양자를 상하 또는 선후관계로 본다면, 경제발전이 이루어져야 민주주의도 가능하다는 주장이 되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독재를 통해 이뤄진다는 궤변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사람은 경제발전을 이끈 박정희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박정희는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말살한 독재자일 뿐이다.

 

- 그렇다면 박정희 시대에 대해 제대로 서술하기 위해선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고 보는가?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4.19 민주혁명을 짓밟은 독재자다. 그의 독재는 시기별로 차이가 있는데, 1960년대에는 반공을 이데올로기로 내세워 반공독재를 했고, 1970년대 들어서는 영구집권을 위해 유신독재를 했는데 이를 뒷받침해 준 게 유신헌법이다.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만들고 대통령 연임 제한 규정을 삭제했다. 대통령 임기를 6년으로 했으며, 선출도 국민투표가 아닌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하도록 했다. 국민의 주권을 박탈한 것이다. 그 결과 1972년에 이른바 체육관 선거를 통해 99%라는 득표율로 당선이 됐다. 그는 1978년 대통령선거에서도 똑같은 방식으로 당선됐다. 사실상 영구집권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유신헌법을 통해 국회의원 1/3을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도록 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권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성장은 민주주의 없는 경제발전이다. 그 결과 정치와 경제가 결탁한 정경유착이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됐다.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이 정경유착인데, 그 씨앗은 이미 박정희 시대에 뿌려진 것이다. 따라서 국정교과서는 박정희의 경제성장을 미화만 할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결여된 경제발전이 어떤 폐해를 낳는지도 자세히 서술해야 한다. 이것이 문자 그대로 공과 과를 균형 있게 서술하는 태도이다.

 

-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주장과 박정희 시대 미화 주장에 국정교과서 기술에서 틀렸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또 있다면 무엇인가?

교과서로서 제일 덕목은 ‘역사적 사실이 틀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과서는 학계의 정설을 담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은 오류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지적하기 힘들 정도이다.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정부가 오류를 바로잡았다고 주장할 테니 빨간 펜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 국정제 자체를 반대하기에 국정교과서 폐기를 주장하는 것이지 국정교과서 개선을 바라는 게 아니다.

 

- 국정교과서 관련 집필진의 전문성 및 성향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맞는 말이다. 집필진의 편향성이 가장 큰 문제다. 심지어 집필자 가운데 ‘유신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현대사 집필진에 역사학자가 포함되지 않은 것도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역사는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통합학문이다. 이 때문에 역사교과서는 반드시 역사학자가 집필해야 한다. 만약 군사학자가 기술하면 그것은 군사서이고 경제학자가 적으면 경제서이지 역사책이 아니다.

국정화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사진=선초롱 기자)

- 중세와 고대 시대 필진의 경우 사학과 출신 교수진도 다수 포함돼 있던데 이 역시 문제라고 보는가?

정년퇴임한 분들이 전체 필진의 1/3이나 돼 너무 많다. 정년퇴임한 지 여러 해 되는 분들을 교과서 집필진으로 선임한 것은 문제가 많다. 교과서는 최신의 학설을 담아야 하는데 최근 연구 동향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학자들이 최근의 연구경향을 습득하는 통로는 자신이 논문을 직접 쓰거나 아니면 제자들의 학위 논문 심사를 통해서인데, 그분들 중에는 연구 활동, 후학 양성을 오래전에 그만둔 분들이 많다. 따라서 이분들이 본인의 평생 연구업적을 정리하는 학술서는 잘 쓰실 수 있을지 몰라도 교과서 집필진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교과서에는 여러 학설을 통합한 가운데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내용을 적어야 하는데, 원로 학자들은 자신이 연구한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뚜렷하다. 학자로서는 훌륭할 수 있겠지만 교과서 집필자로서는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번 국정교과서 집필진이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는 것이 문제지만, 학문적으로 편향됐다는 것 또한 큰 문제다.

 

- 현 국정교과서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향후 역사교과서 편찬은 어떤 방향으로 변해가야 한다고 생각하나?

작년 11월 3일 교육부가 국정화 방침을 밝혔을 때에는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36%가 국정교과서를 지지했고 53%가 반대했다. 그리고 이번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이 나온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17%, 반대 67%로 조사됐다. 작년 국정화 방침을 발표하면서 교육부는 국민들이 지금은 국정제에 대해 거부감이 크지만 막상 책이 나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1년 사이에 국정화 반대가 오히려 14% 늘어 정부의 주장이 무색해졌다. 국민의 2/3가 반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계, 현장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반대하고 있어 국정교과서는 현장에 발을 붙이기 어렵게 됐다.

이번 국정제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겪은 진통을 거울삼아 새로운 역사교과서 편찬은 검정제를 거쳐 자유발행제로 가야 한다. 검정제는 국가가 집필기준을 제시하고 그 기준에 맞춰 쓴 교과서를 심사해 승인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다. 검정제 역시 국정제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데,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국가가 큰 원칙만 제시해주고 나머지는 자유롭게 쓰도록 하는 ‘대강화’ 방식이 있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세세한 내용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세목화’ 방식이다. 세목화는 말이 검정제이지 사실상 국정화와 거의 다름이 없는데, 지금까지 정부가 견지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향후 역사교과서 발행제도는 검정제 하에서 큰 틀만 제시하는 대강화를 거쳐 궁극적으로 자유발행제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인데, OECD 회원국 대부분이 자유발행제를 실시하고 있다. OECD 회원국 가운데 국정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그리스 하나 밖에 없다. 그리스는 과거 군부쿠데타의 경험과 ‘그리스 정교회’의 순수성을 보존하려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국정제를 택하고 있다. 그 밖에 국정제를 채택한 나라는 후진국이나 독재국가들이다.

 

- 향후 역사 교육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나?

역설적이지만 이번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으로 인해 역사와 역사교육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최근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성숙한 시민의식이 역사의식의 성장을 잘 보여준다. 역사 교육은 시민의식이 더욱 성장하고 확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정교과서 폐지에 나서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는 당사자인 역사학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연구실에서 생산되는 학문적 연구 성과가 학생들에게 전파될 수 있으려면, 그리고 학생들이 그릇된 역사인식에 오염되지 않게 하려면 국가가 역사를 독점하는 국정화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연구자가 없어 자의반 타의반으로 앞장서게 되었다. 앞으로 국정화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현장에서 계속 목소리를 낼 생각이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