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한때 세계 5위 해운강국이었던 한국이 해운 변방국으로 추락했다. 국내 1위·세계 7위권 원양선사인 한진해운이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데다 현대상선은 어정쩡한 해운동맹 조건부 가입으로 경쟁력을 의심받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내 해운사는 단 한 곳도 2M에 정식으로 가입하지 못한 처지가 됐다. 글로벌 해운경기 침체가 큰 배경이지만 금융논리에 치중됐던 무능한 정부의 정책실패가 오늘날 한국의 해운을 초라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삼일회계법인, 한진해운에 사형선고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한진해운은 조만간 파산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을 청산하는 게 기업을 계속 운영하는 것보다 경제성 있다는 최종 보고서가 나왔기 때문이다.

13일 한진해운의 조사위원인 삼일회계법인은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법 파산6부(김정만 수석부장판사)에 최종 조사 결과를 보고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기준일 현재 한진해운의 청산가치는 1조7천900여억원으로 산정된 반면 계속기업가치는 한진해운이 영업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불확실해 가치 산정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한진해운을 청산하는 경우가 계속 기업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것보다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는 뜻이다. 이는 미주·아시아 노선 등 핵심 영업을 양도함으로써 계속 영업할 기반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다만, 법원은 현재 진행 중인 회생 절차를 당장 중단하지 않고 주요자산의 매각을 계속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자산 매각이 마무리되는 대로 회생 절차를 폐지하고 청산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진해운의 미주·아시아 노선은 SM그룹 산하 대한해운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내년 1월쯤 인수 절차가 마무리 될 전망이다. 한진해운의 또 다른 알짜배기 자산인 롱비치터미널도 세계 2위 컨테이너 선사인 MSC와 매각협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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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은 찬밥신세

현대상선은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 가입을 '2M+H 전략적 협력'이란 형태로 마무리한 상태다.

2M 정식 회원사는 '선복공유 + 선복교환'을 공유하는 관계지만 현대상선은 '선복교환 + 선복매입'을 하는 한 단계 낮은 협력 수준에 그쳤다. 현대상선의 이번 가입을 두고 '반쪽 가입' '글로벌 해운 왕따' 등의 얘기가 도는 이유다. 

현재 세계 1·2위 해운사인 머스크와 MSC는 항로마다 필요한 선박을 공동 운항하는 '선복공유' 형태의 해운동맹을 맺고 있다. '선복공유'는 상대방 선박에 화물을 실을 때 적재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

현대상선이 택한 '선복 교환'은 짐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을 해운사끼리 교환하는 것이고, '선복 매입'은 짐을 실을 공간을 타 해운사로부터 일정 기간 돈을 주고 빌리는 것이다.

결국 현대상선은 선박 신조 등으로 외형확대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선복을 매입하거나 맞교환하는 수준의 낮은 단계의 제휴를 택했다. 외형확대보다 우선 일감확보가 급한 현대상선의 처지가 반영된 것이다.

계약기간 또한 정식 회원사의 계약보다 짧은 3년이다. 다만 현대상선의 재무구조와 유동성이 개선되면 ‘협력기간 10년' 및 '선복공유 + 선복교환' 등을 골자로 한 '2M VSA 파트너스'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걸려있다.

현대상선 측은 실리를 취한 최선의 선택이라며 항변했지만 진정한 동맹으로 보기엔 무리라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선무당 정부, 해운업계 잡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해운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한 처지가 됐다. 정부가 실물경제의 특성을 무시한 채 금융논리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금융논리에 치중한 정부는 해운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밑그림도 그리지 못하고 '유동성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위기에 몰린 현대상선이 선제적으로 현대증권을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자 한진해운에게 형평성논리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결국 한진해운은 질서 있는 산업재편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대주주인 한진그룹과 채권단이 돈을 얼마나 더 내느냐는 문제로 잡음을 내다 법정관리로 갔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진해운 사태를 M&A나 사업권 양도 등 시장경제를 통한 구조조정 방식으로 해결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해운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던 정부은 금융당국과 채권단의 논리를 앞세워 한진해운을 법정관리로 내몰았다. 국정논단의 주인공인 최순실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됐다.

결국 정부의 섣부른 판단으로 해운산업의 위상이 무너졌다. 당초 2M은 아시아~북미 항로의 강자인 한진해운을 견제하기 위해 현대상선을 끌어들이려 했었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화주들은 한국 선사에 등을 돌렸고 그 반사이익은 현대상선이 아닌 외국 선사들에게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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