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 기획-①] 주민 반대 불구 전면 공영개발 강행...박원순표 구룡마을 개발 '험로 예고'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저긴 북한이에요?” 지난 1995년, 초등학생이었던 아이가 구룡마을을 보고 내 뱉은 첫 마디다. 철조망 너머 판자촌의 낯선 모습을 난생 처음 접한 아이의 눈에는 그리 비쳤을만도 하다. 대한민국의 부를 상징하는 강남구 구석에 남아있는 마지막 판자촌 구룡마을. 아이의 말에는 빈부 격차의 현실을 너무도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지난달 29일 구룡마을을 직접 가보니 개발이 미치지 않은 모습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구룡마을 개발계획이 통과됐음에도 주민들의 깊은 한숨에 구룡마을은 무거운 공기마저 감돌았다. 주민들은 “북한보다 더한 생활을 하고 있다”며 답답한 현실을 호소했다. 불법건축물이란 이유로 서울시의 감시와 관리 하에 있기 때문이다. 비가와도 천장보수조차 할 수 없으며 외벽이 흔들려도 못조차 마음대로 박지 못하는 나날의 연속에 지칠만큼 지쳤다고 고백했다. 

그런데도 서울시의 개발 결정에 대해 거세게 반대하는 이유는 뭘까. 주민들은 “개발 결정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됐다”며 “탄원서는 물론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집회도 불사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시작부터 험로를 예고하고 있는 박원순표 구룡마을 개발이 ‘대박치적’이 될수 있을까. 구룡마을 개발을 둘러싼 쟁점들을 주민들의 입을 통해 짚어보았다.

 

‘판자촌’에서 ‘금싸라기땅’으로

“판자촌을 지어 30년 넘게 살아온 주민의 주거권을 보장해 달라. 어차피 누군가에게 분양해야 할 집이라면 특별공급을 통해 우선권을 달라는 것이다”
“공영개발로 임대주택을 주민에게 제공한다고 하지만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건가”
“박원순 서울시장이 주민의 주거환경 개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개발을 진행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구룡마을 입구에 “구룡마을 개발계획 결정 환영”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반응은 이렇듯 정반대라 의문을 자아냈다. 어찌 된 것인지 구룡마을 주민연합 김규철 본부장에게 물었다.

“구룡마을 입구의 현수막은 강남구청 도시선진화담당관과 강남구 22개동 협의회에서 붙인 것이다. 주민들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내용이다. 구룡마을 앞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현수막을 보고 ‘주민들이 개발을 환영하고 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주민들 95%가량은 이번 개발을 반대하고 있다. 서울시의 이번 결정에 대해 찬성하는 주민은 약 5%뿐이다. 극소수의 찬성을 등에 업고 주민들과 협상이 끝난 것인 마냥 여론을 매도하는 행태를 서울시가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구룡마을은 1100여가구 규모의 무허가 판자촌이다. 1970~80년대 각종 공공사업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을 위한 건설사업으로 생활터전을 잃은 철거민들이 몰려 집단촌락을 형성해 거주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구룡마을 도시개발 구역지정 및 개발계획’이 전면 공영개발 방식으로 통과됐다. 이번 결정으로 구룡마을은 대규모 아파트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2020년까지 주상복합 2개 블록과 아파트 4개 블록이 들어서며, 분양1585가구·임대 1107 총 2692가구 규모다. 결국 박원순 서울시장과 신현희 강남구청장은 강남구 대규모 판자촌을 청산했다는 치적을 남기게 됐다.

구룡마을 개발 문제는 역대 서울시장들 모두가 고민해 온 난제였다. 개발방식을 놓고 빚어지는 주민간의 갈등, 주민과 시와의 충돌, 시와 해당 자치구인 강남구 사이의 의견차 등 개발에 앞서 풀어야 할 문제가 많아 몇 년간 표류 돼 왔다.

앞서 서울시는 일부 토지를 토지주 뜻대로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일부 환지’ 방식을 고수했다. 개발 비용절감을 위해서다. 반면 강남구는 토지주 특혜 기능이 있다며 ‘전면수용방식’을 주장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그러던 2014년 12월 서울시와 강남구는 전면수용 방식의 공영개발을 추진하기로 극적 합의를 했다. 구룡마을에 대형화재가 발생하면서 개발방식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보다는 조속한 사업 추진이 우선이라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문제는 서울시와 강남구의 화해에 구룡마을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주민연합 관계자는 “구와 시는 구룡마을 특별 분양권을 주장해온 주민들의 의견이 철저히 무시된 결정을 했다”며 “수용방식 공영개발인 경우, 토지보상법, 도시개발법, 철거민 특별공급규칙 등 관련 규정 어디에도 철거민에게 분양주택을 공급할 근거는 없어진다”고 허탈해 했다.

 

투기꾼은 사라졌지만…‘닭 쫓던 개’ 신세

당초 서울시 조례에는 “공영개발 과정에서 퇴거하는 주민들을 위한 특별분양권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하지만 철거민 특별 분양권이 철거민의 주거안정이 아닌 투기꾼들을 대상으로 거래되는 부작용이 발생하면서 시는 2008년 특별분양을 자체를 폐지했다.

임대주택 분양권을 노리는 투기를 막기 위해 구룡마을은 2011년 5월까지 전입신고가 금지됐다. 그러나 대법원이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이 있다면 전입신고를 받아줘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투기꾼들의 전입신고가 줄을 이었다. 이에 구룡마을을 두고 개발을 앞두고 전입신고를 인정받아 개발 과정에서 한 몫을 챙기려는 투기꾼들이 몰려있는 땅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커지기 시작했다.

반면 주민들의 입장은 달랐다. 주민연합 김 본부장은 구룡마을의 투기꾼 문제는 해결된 지 오래라고 설명했다.

“과거 투기꾼이 마을에 많이 유입됐던 것은 사실이다. 부정하지 않는다. 타워팰리스에 거주하는 사람이 구룡마을에 12채를 집을 소유한 있었던 적도 있었다, 당시 집 한 채를 4000만원 매입했으니 12채면 4억8000만원이다. 이중 절반만 분양권 획득에 성공해도 로또가 된다. 구룡마을 개발로 이들 같은 투기꾼들 배만 불리게 된다는 비난 여론을 너무 잘 안다. 그래서 주민들과 개발 업자들이 힘을 모아 자정작업을 한 결과 과거 4000세대였던 세대가 현재 1000세대로 줄었다. 지금은 일각의 우려와 달리 구룡마을에서 투기꾼은 100%가까이 추방됐다고 확신 한다”

강남구는 주민등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투기꾼과 구룡마을 주민을 구분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구룡마을에 거주하며 주민 행세를 하는 투기꾼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에 주민연합 김 본부장은 우문현답을 내놓았다.

“새벽 6시에 나와 버스 종점에서 기다려봐라. 마을 안쪽에서 물도 안 마른 머리로 허겁지겁 걸어 나와 버스를 타면 그 사람은 주민이다. 그 후 주민이 다 빠져 나간 9시쯤 예쁘게 차려입고 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투기꾼이다”

주민들은 구룡마을이 ‘가짜 투기꾼’이 아닌 엄연한 주민들의 땅이 됐다고 확신했다. 구룡마을이 투기꾼들의 먹이감으로 덧씌워진 것에 대해 “오해를 풀어 달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건축법’ 해석 놓고 공방

한줄기 희망이었던 특별 분양을 제도가 폐지되자 주민들은 다른 법적 근거를 제시했다. 바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보상법’이다. 해당 법에 따르면 1989년 1월 이전 무허가 건축물의 소유자는 공영개발로 퇴거할 시 이주대책대상자에 포함된다. 공익사업의 시행자는 이주대상자에게 주택을 공급하거나 이주정착금을 지급하도록 규정돼 있다.

서울시는 해당 법 역시 구룡마을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구룡마을에 있는 판잣집은 건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건축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다. 시는 판잣집을 건축물이 아닌 ‘비닐간이공장물’로 규정했다. 또한 1989년 당시 구룡마을에 건축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만한 자료도 부족해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

주민연합 김 본부장은 법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주장했다. ‘서민시장’을 자처한 박원순 시장이 정말 서민의 편이라면 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한 법리해석을 내놓아 달라는 것이다.

“1989년 이전부터 주민등록을 이전해 살고계신 분들이 많다. 이분들만이라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보상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주민들 모두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법적인 보호를 받을 여지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사다리를 놓아달라는 거다. 법이란 것은 각각 서로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서울시는 ‘어떤 방법으로 상생할까’가 아닌 자신들의 생존만 생각한다 한다. 국책사업으로 인해 거주지를 박탈당한 뒤 이 땅에 모여 30년간 구룡마을을 지켜온 주민들이다. 조금만 해석을 달리해줄 수 있는 여지가 없는지 재차 묻고 싶다”

올 5월에는 구룡마을의 무허가 판잣집도 상속 대상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구룡마을 주민 홍씨는 합판과 보온솜으로 약 3평 남짓한 작은 집을 짓고 30년간 살았다. 홍씨가 죽자 강남구청은 곧바로 집에 ‘공가(空家) 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이에 홍씨의 자식이 “내가 이 건물을 상속받았다” 건물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했고 법원은 홍씨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홍씨의 부친이 2001과 2009년 실시한 실태조사에서도 거주자로 조사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홍씨 부친이 이 건물을 소유했으니 상속의 대상이 된다”고 판시했다. 주민들은 판잣집도 상속의 대상이 되는 건축물로 인정됐다고 풀이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들은 자신들도 서울의 시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현재 1000여개의 가구가 주민등록 이전을 완료해 주민세, 세금 등을 다 내고 있다. 한 거주민은 기자에게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며 “소송을 거쳐 힘들게 주민등록 이전을 완료했지만 허황된 꿈을 꾸는거 같다. 이제 우리도 세금을 내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강남구민이다. 우리의 생존권을 지켜줘야 한다”고 울먹였다.

 

구룡마을 주민연합 김규철 본부장

박원순표 소셜믹스, ‘역차별’로 시끌

가장 큰 문제는 서울시가 결정한 ‘공영개발 방식’이다. 주민연합 주장의 골자는 주민들의 성공적인 재정착을 위해 선택의 가짓수를 늘려달라는 것. 자격 대상이 되는 사람에게는 특별분양을, 재정착이 진짜 목적인 원주민에게는 임대 후 분양까지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주장이다.

“우리가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개발방식은 거주민들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서울시의 제안은 평생 구룡마을에서 살아야 하는 영구임대 아파트와 국민임대 아파트 두 가지다. 너희들의 위해 두 가지 길을 만들어 놨으니 이 길로만 가라는 뜻이다. 하지만 생각해봐라. 가난한 사람들이 평생 임대료를 내며 이곳에서 계속 지내는 것은 무리다. 사실상 임대로는 월세 개념이 아닌가. 또한 사람들은 누구나 평생에 한번쯤은 이사를 한다. 고향으로 내려가고 싶어하는 주민도 있고 직장이 먼 주민도 있다. 그런 주민들이 다른곳에서 재정착을 하기 위해 임대가 아닌 특별분양권을 제공해 달라는 거다.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보상법’에 해당되는 사람들만이더라도 이를 적용시켜서 특별 분양이나 공공임대까지 생각해 달라는거다”

마을 주민들이 우려하고 있는 부분이 또 있었다. 분양과 임대 가구를 한 건물에 섞어 배치하는 소셜믹스 방식이다. 소셜믹스란 임대아파트에는 구룡마을 주민들이 입주하고 나머지 물량은 분양으로 전환한다는 소린데, 그렇다면 한 아파트에 구룡마을 주민과 일반 분양주민들이 공생하며 살라는 소리가 된다. 과연 공생이 가능할지 주민연합 김 본부장은 의문을 제기했다.

“일반 분양 아파트도 국민임대 입주자들과의 접촉을 꺼려 울타리를 설치한다. 임대와 분양 주민 사이의 갈등은 각종 뉴스에 흔하디흔하게 등장하는 사회문제다. 더군다나 여기가 어딘가. 판자촌인 구룡마을이다. 분양동 주민들과 국민임대 입주자끼리 얼굴을 붉히는 정도가 더욱 심해질건 불보듯 뻔하다. 구룡마을 옆동네 사는 강남구 사람들이 집값 흐름 등 자존심이 굉장한 것은 누구나 안다. 대치동, 도곡동, 개포동 주민들만 하더라도 근처에 구룡마을이 있는 것 자체를 못마땅해 한다. 입구 아래로 1km만 내려 가면 타워팰리스가 있다. 바로 앞에는 래미안 블레스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이런 곳에서 임대와 분양을 섞어서 분양한다니 이건 도대체 어떤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논리냐. 국민임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아파트 밖에 나가지도 못할 거다. 장담하는데 서울시가 소셜믹스 방식을 고수하면 입주자간에 대형 사고가 날 것이다”

서울시가 향후 개발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높아 보인다. 소통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만큼 서울시와 강남구는 구룡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검토해가겠다고 공언했지만 현재로선 극적 협의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때문에 구룡마을 주민들의 불안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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