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최창섭 교수] 요즈음 우리나라는 한마디로 데모공화국이 되어버리다시피 했다. 주말 광화문에 으레 모였다 하면 1백만, 이젠 2백만이란다. 한편 경찰 추산은 26만 정도에, 미국 위성파악 수치는 11만 몇 천으로 집계하고 있다. 여기에서 과연 정답은 어느 것일까?
속칭 ‘입빨 세고 목소리 크고 입심 센 놈이’ 이긴다고 하듯 우리는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따질 여력도 없이 ‘백만’이라는 숫자에 압도되고 만다. 각급 언론도 몇 십만 보다 ‘백만’이라는 숫자가 던져주는 충격효과에 맛이 들린 듯하다. 알고도 모르는 듯 하는 것인지, 어디에선가 ‘백만’이라는 단추를 누르면 나머지 언론은 앵무새처럼 일사분란하게 따라가는 형국이다. 실제 참여자수는 얼마일까?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국민 5천만에 1,2백만이라는 숫자는 2-4%에 해당하는 적은 숫자에 불과하건만. 어떻든 한국 언론가에서 사실/진실게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랜 듯하다. 아니 별로 따질 생각도 없는 모양새이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 방송대담 때 등장한 ‘factcheck system'은 한낮 남의 잿밥인양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는 현실이다.
        
어느덧 안방의 터줏대감으로 자리하다시피 한 종편을 위시한 각종 언론이 현 상황의 정치/사회 의제(Agenda)설정에 주 역할을 하고 있다. 이에 시선을 맞출 수밖에 없는 일반 국민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웬만한 감각으로는 제대로 방향 잡아가기가 쉽지 않다. 한마디로 색깔이 다른 다양한 매체가 무수한 채널을 동원해 형형색색의 형태로 매일같이 쏟아내는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fact)이고 어떤 소설(fiction)을 쓰면서 국민을 어느 방향으로 몰아가고 기만(fake)하려는지 가늠하기가 결코 녹녹치 않다.
어느 것이 정통 뉴스이고 어디까지가 코미디이고 가십거리인지 식별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일반 길거리 사람들(people on the street)은 남을 씹어대는 가십 유형에 익숙해있고, 보통수준의 사람들도 일어난 사건 사고소식에 표피적인 관심을 보이는 수준이지, 보도된 내용을 깊은 생각으로 되새김질하며 소화시킬 여유가 있을까.
현 사태를 넘어 북한 핵미사일이라는 가공할 상황에서 곧 다가올 내일의 ‘박근혜 이후’ 시대를 어떻게 국민들이 현명하게 대처해 가야할지 불분명한 상태로 ‘3f(fact vs fiction vs fake)현상’에 마취된 채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더구나 겉으로 드러난 민심 뒤에 가려진, 아니 각급 언론의 입장으로서는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을 법한 ‘조용한 다수’(silent majority)의 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는지. 광화문에 나선 몇 백만이 있는가 하면 소리를 내지 않은 4천만 이상의 국민이 뒤에 있음을 외면하고 싶은 것인지. 더구나 탄핵반대 목소리를 내는 광화문의 소리도 만만치 않게 들리건만 언론은 외면하고 있으니. 들리지 않는 듯 한 국민의 소리를 듣는 청무성(聽無聲)의 비결은 없는 것일까.

다매체/다채널시대에 맞는 다양한 견해는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비근한 미국 Trump 현상에서 여실히 드러난 심각한 현실이 아니었던가.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외면한 채 무시해버린 다수의 펜실베니아를 중심으로 한 미 동북부 ‘Rust Belt’지역의 백인 Blue칼라가 보여준 이변을 체험하지 않았는가.
사실(팩트)이 은폐되어있을 법한 광화문에 몰려든 소위 ‘1백만’이라는 숫자에 마취되어 있는 상태는 아닌지. 정치인이든 일반 국민이든 청와대 당사자이든 모두가 정확한 사실 정보와 민심파악을 바탕으로 미래를 헤쳐가야 하건만.

왜곡보도의 주종인 오도, 호도, 과장, 편파, 일방적 질타 등으로 혹세무민하고 있는 듯한  yellow journalism수준에 blue joke로 장식된 black journalism에까지 다다른 언론 현실에서 추구해야 할 길은 한마디로 다양성의 회복이라 본다.
다양한 정보뿐 아니라 견해를 달리하는 다양한 시각(viewpoints)을 통해 국민 다수가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에서 언론의 정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언론이 자기들 나름대로의 편향된 잣대로 국민위에 군림하려는 비뚤어진 의제설정은 마땅히 사라져야한다.
국민을 올바로 받들어 모셔야 한다는 공복(public servant)의 자세에서 저널리즘 정신을 되새겨 봤으면 한다. 독자는 결코 군림의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현명하다. 그들은 단지 언론인보다 정보가 부족할 뿐이다. 판단도 절대적으로 그들 몫이어야 한다.
언론인의 교만이 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는 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자각하면서 다양한 정보 접근을 통한 올바른 정보제공이 언론인의 기본 바탕임을 새삼 촉구한다. 정치인의 교만과 군림의 자세를 교정시켜줘야 할 막중한 책임감도 함께 갖춰주길 촉구하면서…….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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