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하룻밤’ 대상으로 여겨질까 무서운데 앞으로 그 사람 얼굴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하이투자증권 양모 전무를 향한 여직원들의 진심어린 절규다. 노조와 여론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하이투자증권은 양 전무에게 ‘경고와 공개사과’라는 최소한(?)의 징계를 내렸다. 양 전무는 현재 감봉이나 강등 없이 동일한 직급으로 버젓이 회사를 다니고 있다.

현대중공업 출신인 양 전무는 지난 5월 계열 증권사인 하이투자증권으로 옮겨왔다. 직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이투자증권의 조직개편을 위해 현대중공업에서 파견한 ‘구조조정 전문가’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조선업 장기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의 매각에 나섰다. 하지만 리테일부문의 부진한 실적이 하이투자증권 매각 불발의 원인으로 꼽히면서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이에 하이투자증권의 리테일 수익 개선을 위해 양 전무를 중심으로 한 TF를 출범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의 기대를 모았던 양 전무가 대형 사고를 쳤다.

양 전무는 지난달 열린 ‘리테일 쇄신 태스크포스(TF) 설명회’자리에서 “어떤 때는 마누라에게 당신밖에 없다고 하나, 지나가는 예쁜 여자 보면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설명회 주제와 전혀 무관한 데다 회식석상에서 취기로 인한 실언도 아니다. 명백한 업무시간에 이틀 연속 해당 발언을 했으니 일회성이 아닌 사전에 준비한 멘트가 자명하다.

양 전무는 사원들에 대한 인격모독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양 전무는 “적자내는 리테일 사업부 언제까지 회사가 지켜줘야 하나. 적자내는 ‘암 덩어리’일 뿐”이라며 직원들을 비하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양 전무가 리테일 TF를 이끌고 있었다는 점이다. 직원들은 자신들을 암적 존재로 여기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조직개편 방안을 어떻게 믿고 따를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현대중공업의 성희롱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현대중공업의 또 다른 계열사 임원은 여성 노동자를 상습적으로 껴안으려 했으며 ‘멜빵을 대신 매달라’고 부당한 요구도 했다. 일명 '멜빵 상무' 사건이다. 지난달 현대중공업의 임원은 여성 노동자에게 회식자리에서 ‘코로 소주 흡입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중공업 임원들은 ‘소주상무’ ‘멜빵상무’ 등의 치명적인 꼬리표가 붙었다. 해당 사건은 현대중공업의 임원들이 평소에 여성 노동자들을 어떤 존재로 인식하는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우리 사회에 성희롱 상사는 필요 없다. 공개 사과문을 게재했다 한들 다시 마주치는 거 자체가 피해 여성들에게는 고문이다. 가해자와 피해자 둘다 불편한 일이다. 게다가 언제 다른 누군가가 성희롱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

위기에 처한 현대중공업은 썩은 부분을 도려내고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직원들이 원하는 것 또한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것이다. 그 썩은 부분이 어디일지에 대한 현대중공업의 진지한 고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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