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사색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훌륭한 시집"

오세영 시인 [사진=뉴스포스트]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의 비평지에 오세영 시인의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이 영문판으로 번역되어 선정되었다. 올해 초 미국 시카고에서 설립된 신생 비평지는 소설, 비소설, 시, 만화 등 장르에 구분 없이 영향력 있는 작가, 평론가들의 글을 실어 단시간에 많은 독자층을 확보해온 곳이다. 이 같은 리뷰 오브 북스가 지난 19일 '2016 올해의 시집(The Best Poetry Books of 2016)'이라는 이름으로 시집 12편을 발표하면서 오 시인의 작품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깊은 사색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훌륭한 시집"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뉴스포스트]는 오 세영 시인의 '밤하늘의 바둑판'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세계를 살펴보기로 했다.

시인이며 서울대 명예교수인 오세영 시인을 만나는 날은 간밤 설핏 내린 눈으로 도심은 모처럼 겨울다운 정취가 그윽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그 정취 좋은 날에 오 시인과의 약속 장소인 사당역을 서강대역으로 착각 했으니…… 허겁지겁 들어선 장소에 오 시인은 창으로 비쳐드는 겨울 햇살을 마주한 채 깊은 사색에 잠긴 모습이었다. 차마 방해할 수 없는 깊은 우수, 아니, 고뇌. 선뜻 다가서기엔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문득 그의 모습에서 『눈물에 어리는 하늘그림자』가 오버랩 되어 흘렀다.

어스름 깔리는 마당귀에는 감꽃만 수북이 떨어져 있었다.

사립밖엔 한나절 물 나는 소리.

윤사월 조금날 썰물이 길어 바다가 빈 개펄 드러내듯이

아, 나도 가진 것이라곤 시의 묘망한 하늘뿐, 너를 두고 한 세상 살아왔다.

애비 없이 태어난 나는 에미도 일찍 잃어 세 살에 든 열병을 아직도 고치지 못한 채

이마는 항상 뜨겁기만 하다. 내 시의 먼 하늘, 노을에 맺힌 그 이슬이

밤바다에 반짝이는 별이 될 수 없음을 나 너로 인해 비로소 알았으니

이제 더 이상 속지 않으리라. 네가 가고 또 그로 하여 시마저 버린다면

이 세상 슬퍼할 그 무엇이 아직 남아 있으리.

 

왜 이렇게 그의 시는 서러운 것일까. 다가선 인기척에 그제야 오 시인은 사색에서 깨어 희미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지만 미국의 비평지에 선정된 소감을 묻자 금세 표정을 굳혀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깟 미국의 비평지에 실렸기로 뭐가 그리 호들갑이냐 하는 표정. 역시나, 그는 나보다 더 훌륭한 시인들이 많은데, 외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해서 내가 선정 된 것이니 좀 미안한 일이라고 했다. 침체한 우리 사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문단의 파벌과 견제하는 것들이 사라지고 공정한 평가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노벨상을 받으려면 먼저 외국에서 인정이 필요한데 자신의 시가 그것의 장을 열었다는 것에 기쁘다고, 또 자신이 한국평단에 경종을 울린 것에 뿌듯하다는 쓴 소리도 잊지 않았다. 창밖 비쳐드는 겨울 햇살에 넌지시 시선을 못 박은 채.

오 시인이 비평가에 실린 <밤하늘의 바둑판>의 전문은 별을 얘기한 것이라고 했다. 별을 바둑판으로 두고 우주적 상상력을 가미한, 우주의 조화, 질서. 양 두 사람이 앉아 바둑을 두어 승부를 내는 그것처럼, 우리의 삶이 바둑판 위의 바둑돌과 같이 선과 악, 혹은 음양으로 나뉘는 그것을 묘사한 것이라고.

60편이 수록된 '밤하늘의 바둑판'시집을 두고 미국의 비평지는 철학적인 사색으로 우리의 삶의 현상들을 얘기하는 아름다운 시라고 했다. 하지만 아름다움보다는 그의 시에서 깊은 우수가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인의 시가 왠지 서럽다고 하자. 창밖으로 향해 있던 시선이 곧바로 나를 향했다. 그리곤 조금은 흐뭇한 미소. “내 시를 잘 읽었군요. ‘허무주의 염세주의 명상주의’가 내 시의 기본적인 바탕입니다. 그것의 계기는 운명적인 것이지요. 난 아버지 없이 태어난 유복자였고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뜨셨고……

물론 그렇다고 다 염세주의가 되는 건 아니지만. 성격이겠지요. 내가 타고난 성격. 인생은 덧없잖아요. 즐거움은 순간적인 것이고 결국은 이 세상 모든 것이 허망한 것, 영원불변의 것은 없어요. 생각해보세요. 영원한 것이 무엇이 있는지. 우리가 한 생애를 살면서 정말로 절대적인 진리라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영원불변의 것은 없어요. 학문적으로 얘기하면 실존주의 철학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시를 쓰는 것은 내 삶의 탐구라고 할 수 있어요. 아직 어떤 해답은 얻지 못했어요. 늘 같은자리. 그러다 보니 우수가 밑바탕에 깔린 나의 시의 자세가 되었어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도 비슷할 겁니다.”

그는 역대 훌륭한 예술작품은 근본적으로 비극적인 것을 바탕에 두고 이루어진다고 했다.

오 시인에게 미국의 새롭게 생긴 독자층에게 한마디를 청하자 그는 자신이 예전에 쓴 ‘아메리카 시편’을 읽어보면 안다고 했다. 그것이 번역됐다면 이것보다 더 관심을 모았을 거라면서. 그는 ‘아메리카 시편’에서 미국인들을 자본주의 사료를 먹는 자본주의 가축이라 비평했다고. 그렇게 꼬집어도 되는 거냐는 물음엔 그들은 우리와 달린 열린 시각이라 상관없다면서.

“보세요. 늘 인종차별이 문제시되면서도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미국 아닙니까. 좋은 나라죠. 그들은 받아들일 거는 받아들입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문단이 문제이지요. 끼리끼리, 파벌을 만들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은 문학계에서만큼은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문학이고 정치는 정치인데 문학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모습 보기 안 좋아요. 문학이 정치의 도구로 스스로 이용당하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지요. 그리고 그것은 결코 문학도 아닙니다. 이 역시 반복되는 말인데 모든 것이 인문학이 바탕이 되는 것을 자각해야 하는데 그런데 우리사회는 점점 인문경시풍조가 팽배해요. 국회에서 음악회가 열리고 대통령도 시 한편 읊을 수 있는 국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인문학을 경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요즘 정국을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아요. 다시는 박근혜 같은 인물을 뽑지 않도록 국민의 시민의식이 성숙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그는 좋은 시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문인이란 명칭이 이제 무의미한 사회가 되어 버린 현실에서 정말 훌륭한 글을 남기는 것이 진정한 문인이라면서.

문학계의 성폭력과 블랙리스트 대해서는 긴말을 피해 간단한 대답이었다.

“인간은 다 똑같은 것 같습니다. 문인은 일반 사람과는 달라야 하는데, 같은 문인으로서 변명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각 개인의 인격 품성이 문제지요. 구조적인 것도 문제이고요. 문학에도 권력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권력으로 약자에게 군림을 하고...... 블랙리스트는 과연 있는지 없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적인 힘은 창조인데 창조는 자유가 없으면 안 되고. 특히 어떤 힘에 의해 억압당하면 좋은 문화예술작품이 나올 수 없어요.”

“신년의 덕담요? 문학인은 자유롭게 어떤 제도나 억압에 영향 받지 않고 자기의 의지로 자유로운 창작 활동했으면 좋겠고 사회역시 인문정신이 중요시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국민 모두 닭이 어둠을 물리치고 새날을 얻는 것처럼 모두 밝고 건강한 정유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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