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충남 지역에 최근 10여개의 테마 문학관이 개관하였다. 이는 문화 융성 차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국가에서 마땅히 해야 할 큰 문화적인 사업을 개인이 희생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은 현대판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일이다.

지금은 무력이나 권위주의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아니다. 작고 소솔한 문화로 상대방을 향한 접근과 이해가 바로 경제와 유관된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필자가 얼마전 중국에서 한국어를 현지인들을 상대로 가르친 경험이 있다.

그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필자는 응시자를 선발하는데 있어 시험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지원자는 많고 장소와 강사가 모자랐기에 배우고자 하는 청년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한국어를 배우고자 한 그들은 한류드라마의 영향이라 대답했다.

이렇게 문화는 국경과 장벽도 없다. 즉 이것이 문화의 파급 효과이다. 총칼보다 더 위력을 발휘하는 특성이 문화의 특수성이다. 프랑스의 작가이며 철학자 사르트르는 문화만이 소리없이 적지에 스며들게 되어 결국은 이데올로기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철학자다운 발상이다.
 
우리나라에 작은 문학관이 여기저기 개관하는 것도 이제 선진국다운 내공의 발로이다. 우리 시와 소설 그리고 영화 연극 드라마가 세계화 속에서 중심을 잡게 되므로 발생하는 파급의 효과이다.
 
유럽에 가면 작고 아담한 문학관이나 작가의 집이 아주 많다. 그리고 이를 찾는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우리나라 국민들처럼 문학관의 크기나 위용에 평가 기준을 두지 않는다.

우리나라 소위 문화재위원이란 사람들은 견문이 적은 탓인지 전시관 즉 뮤지엄이라 하면 크고 높고 넓어야만 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내용 즉, 콘텐츠가 매우 중요한데도 외양만 강조한다. 이는 속빈 강정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 뮤지엄이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곳이 대략 1000관에 이른다고 한다. 이제 관수로 보나 역사로 보아도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였다는 게 문화 기획자들의 평가다. 이런 문화의 시대 읽고 쓰고 보고 즐기고 누리는 우리사회가 이제는 경제도 정치도 문화로 감싸안는 그런 포용력이 필요하다.

사이즈나 크기 돈으로만 위세를 떨치던 시대는 이제 멀리 떠나보내야 함은 나만의 주장이 아닐 것이다. 충남지역에 생긴 문학관들을 살펴보면 문인들이 사용하던 머그컵이 전시된 공간, 국가보훈을 전문으로 하는 도서를 전시한 문학관, 필기구를 전문으로 수집 전시한 곳, 시집 한적을 전문으로 하는 전시관, 중고교 교지를 전시한 곳 등 다양하다.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군내 향토자료만 전시한 문학관뿐만 아니라 다양한 여러 문학관이 생겨나니 지역문화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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