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후보" 문재인의 독주행진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설석용 기자]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의 신경전이 뜨거울 전망이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헌법재판소 심판에서 운용 결정을 받아 조기대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대권 주자들의 발빠른 움직임이 관심을 끌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여야를 막론하고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는 절대강자로 손꼽히고 있는 상황이다. 전 노무현 대통령과의 특수한 관계로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낸 그는 두 번째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문 전 대표와의 양강구도를 전망하고 있다. 여야를 대표하는 유력 대권 주자로서 이 둘의 경합을 위한 각 정당들의 물밑작업 역시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뉴스포스트>는 이들의 대선레이스의 볼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해 유력 대권 주자들의 집중 인물탐구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는 "준비된 후보" 문재인이다.

 

지독한 가난도 그를 막지 못했다
노무현과 문재인, 그들의 인연은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
초선에서 당 대표로, 대권도 目前

 

유신독재와 싸운 투쟁의 사법고시

지금은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유년시절은 그 시대를 살아간 어느 집안 못지않게 가난했다.

문 전 대표의 아버지 문용형 씨는 함경남도 흥남출신으로 흥남시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이후 가족들과 남쪽으로 피란해 내려왔고 이들의 가난이 시작됐다.

셋방살이를 전전긍긍하던 이들은 거제도를 거쳐 부산으로 터를 옮겨 잡았다. 부산 남항국민학교를 다니던 문 전 대표는 양동이를 들고 학교 위 ‘신선성당’을 찾아가 배급을 타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수녀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문 전 대표는 수녀들이 천사같이 보일 정도로 감화가 돼 천주교에 입교하게 됐다.

문 전 대표는 당시 명문학교였던 경남중고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문과는 문재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극심한 가난을 못이겨 술과 담배에 손을 대며 방황을 시작해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말았다.

1971년 고교 졸업 후 종로학원 진입시험에서 일등해 학원비를 면제받고 재수를 시작했지만 서울 유학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형편으로 중도하차 했다. 문 전 대표는 당시 경희대학교를 설립한 조영식 박사의 권유를 받고 경희대 법대 4년 장학생으로 수석입학을 하게 됐다.

대학에 진학한 문 전 대표는 그 시절을 겪은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수감이력도 빼놓지 않았다. 1975년 4월 11일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철창신세를 지게 됐고, 그 해 6월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대학에서 제적당했다.

이후 유신독재와 맞서 시위하다 신체검사도 받지 못하고 군대로 강제 징집됐다. 육군에 입대한 문 전 대표는 특수전사령부 예하 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복무해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에게 두 차례 최우수 특전사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제대 후 그는 전두환 군부독재와 싸우다 다시 투옥됐다. 수감 중 감옥 안에서 그는 사법고시 2차와 3차를 통과해 극적으로 석방된 인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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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정부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노 전 대통령이 문 전 대표를 소개할 때 쓰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배려와 존중으로 둘러싸인 이들의 관계를 짐작케 하는 표현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46년생으로 문 전 대표보다 7살 연상이었음에도 이들은 서로 존칭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표가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시작한 것은 사법연수원 연수를 마친 뒤다. 시위와 투옥 사실로 연수원 시절 일등상인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했음에도 판사와 검사 임용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뒤 문 전 대표는 김앤장같은 대형 로펌의 러브콜을 마다하고 부산으로 낙향했다.

문 전 대표는 사법연수원 동기 박정규 씨의 소개로 노무현 당시 변호사 사무실을 찾게 됐다. 첫 만남에 진한 교감을 느낀 이 둘은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 법률 사무소’를 열고 문 전 대표도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무현, 문재인, 김광일에게 정계 입문 제의를 했지만 문 전 대표만 거부해 나머지 둘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이후 문 전 대표는 변호사로 업무 복귀 의사를 수차례 밝혔지만 결국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내게 됐다. 그러나 1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청와대를 떠나 민중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을 하던 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외신으로 접하고 전격 귀국했다. 문 전 대표가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대표변호사로서 탄핵 운용결정을 막아내고 2005년 다시 청와대로 복귀했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노무현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문 전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모든 장례 절차 등 관련 업무를 도맡아했고, 이후 노무현재단 <사람사는 세상>의 이사장을 맡아 마지막까지 인연을 이어갔다.

 

정치인으로의 삶, 성공할 수 있을까?

문 전 대표는 노무현정부 이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으로 부산사상구에 출마해 첫 금배지를 가슴에 달고 정식적으로 정계 입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는 초선이었지만 당내 영향력은 넘버원이었다. MB정권에서 제1야당의 대표대행을 맡아 지도부로서 정치인생을 시작했다.

문 전 대표는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정치 보폭을 대폭 넓혀 나갔다. 국민참여경선에서 쟁쟁했던 경쟁자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의 13회 경합에서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로 우뚝 올라섰다.

그러나 정치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와 연대로 흥행몰이를 이어갔지만 단일화 과정에서 너무 긴 시간이 지체돼 결국 대선에서 실패하게 됐다.

그 뒤 문재인·안철수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해 야권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이들의 결별로 지금의 거야(巨野)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문 전 대표는 아직도 초선 밖에 되지 않는 의회경력이 신인급이지만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그의 비서실장이었다는 둘의 인연으로 막강한 기반세력을 확보하고 있다.

다가오는 19대 대선에서도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이며 꾸준히 야권의 대선주자로 자리를 잡고 있다. 한 차례 대선을 치른 그로서 이번 대선은 어쩌면 정치인생의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른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변수로 꼽히는 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국민의당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의 양자대결 구도로 좁혀지는 분위기로 흘러가면서 대선판은 야권통합 범위를 주목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출범시킨 개혁보수신당이 반 전 총장의정치적 텃밭을 만든 것이라는 저변의 분석과 국민의당과의 연대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이미 정치권 일대에 널리 퍼져있다.

유독 안 전 대표는 이런 가능성을 모두 부정하며 쓸쓸한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표와 안 전 대표의 재결합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정치판에서 속단은 금물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게다가 국민의당을 쥐고 있는 호남계와 개혁보수신당은 친박과 친문 세력을 배척하며 그들의 연대에 대한 물꼬를 터 놨다. 이에 따라 이번 대선 구도는 이들 제3지대와 야권 그리고 친박계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4일 경남 창원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변화에 대한 의지는 누구보다 절박하다"며 "검증이 끝난 후보다. 털어도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깨끗하고 청렴한 사람이라는 것은 검증을 받았다. 이는 부정부패 척결의 적임자라는 뜻도 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어 "준비된 후보"라며 "차기 대선은 당선과 동시에 대통령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책 문제나 인적 진용 구성 면에서 충분히 준비가 된 상태"라고 대권에 대한 포부를 밝혔다.

(사진=뉴시스)

文, 반기문·안철수 등 양자, 3자 대결서 우위

문 전 대표의 고공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유력 대권 주자들과의 다양한 경합구도에서도 여전히 높은 승률을 보이면서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산뜻하게 출발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대표 이택수)가 매일경제 ‘레이더P’ 의뢰로 2017년 1월 2일(월)부터 4일(수)까지 3일 동안 전국 1,520명(무선 90 : 유선 10 비율)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7년 1월 1주차 주중집계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를 보면, 문 전 대표는 전주 대비 5.5%p 오른 28.5%로 조사됐다.

이는 여야 대선주자들의 기존 최고치를 경신한 수치로 이제까지 가장 높았던 2015년 4월 3일 문 전 대표의 27.9%를 스스로 갈아 엎은 셈이다.

리얼미터는 이번 문 전 대표의 지지율 상승폭이 2015년 2·8전당대회 직후(▲6.7%p, 2월 1주차 18.5%→2주차 25.2%)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대폭 상승한 건 각종 신년 여론조사에서 1위를 기록했다는 보도가 급격하게 확산돼 이른바 ‘편승 효과(Bandwagon effect)’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앞서 조선일보가 신년을 맞아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여야 12명 주자의 대결을 가상한 여론조사(12월30~31일 19세 이상 1030명, 유선전화 및 휴대전화 RDD를 활용한 전화 면접,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1%p, 응답률 11.4%,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에 따르면 문 대표가 반 전 총장과 안 전 대표 등 유력 대권 주자들과의 양자, 3자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면서 레이스 독주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문 전 대표와 반 전 총장과 안 전 대표의 단일화로 반 전 총장을 후보로 내세웠을 경우 펼쳐지는 양자대결에서 문 전 대표는 42.2%, 반 전 총장은 35.5%로 문 전 대표가 역시 우위를 선점했다.

이들의 모두 출마한 3자 대결에서도 문 전 대표(39.3%)는 반 전 총장(28.7%)과 안 전 대표( 11.4%)를 제치고 선두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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