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성폭행 사각지대…구멍뚫린 안전

끊이지 않는 관광범죄, 대책없는 외교부

해외여행객 증가, 늘어나는 해외 범죄

“자는데 왜 전화하느냐” 안일한 반응

범죄 보호 시스템·인프라 턱없이 부족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 지난 15일 대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A씨 등 한국인 여성 3명이 지난 12일 저녁 6시쯤 관광용 택시운영사 제리(Jerry) 택시 투어의 택시를 이용해 타이베이시 스린 야시장으로 이동하던 중에 택시기사 39살 잔모 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택시 기사 잔모씨는 요구르트를 건넸고, 뒷좌석에 탔던 여성 2명은 요구르트를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 다음날 여성 2명은 성폭행을 당한 느낌이 들어 현지 교민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올려 도움을 받아 현지 경찰과 대만 주재 한국대표부에 신고했다. 하지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했을 때 타이베이 대표부(한국 대사관 및 총영사관 기능)는 “자는데 왜 이 시간에 전화를 하느냐”는 말이 돌아올 뿐이었다.

이처럼 최근 해외여행객들이 늘어나면서 해외 피해사례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해외에서는 소매치기를 비롯해 여성들의 성폭행 피해, 살인사건 등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동시에 대책 없이 손 놓고 있는 외교부의 태도가 반복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해당국가의 치안문제뿐만 아니라 한국 관광객을 보호해야할 외교부의 무능력한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해 8천 건 넘는 해외범죄 피해

이번 대만 택시 성폭행 사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해외 피해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6년 기준으로 2015년 한 해 동안 해외로 나간 한국인의 수가 22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는 2014년 1600만 명 수준에서 600만 명이나 크게 늘어난 것이다.

해외여행객 2000만 명 시대를 맞은 가운데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한 납치, 살인, 절도, 강도 등 강력범죄가 빈발하고 있다. 해외여행객들은 주로 중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절도나 사기, 폭행 등을 당하고 있으며, 필리핀과 동남아에서 피해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오고 있다.

특히 필리핀의 한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악명이 높다. 이른바 ‘필리핀 살인기업’으로 불릴 만큼 국내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납치 살해를 일삼았던 도피 범죄자 최세용과 김성곤 일당의 범죄는 충격을 준 바 있다.

필리핀 살인기업 사건은 지난해 10월 강도치사, 강도 상해 등의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5년을 선고 받은 최세용과 일당 중 1명인 A씨의 진술이 갑자기 상반되면서부터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다가 유골이 돼 3년 만에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던 ‘범인이 없었던 H씨 죽음’의 실체가 드러난 사건이다.

2007년 경기 안양의 한 환전소에서 여직원을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1억8000여만원을 빼앗아 필리핀으로 달아났던 최세용, 김성곤 일당은 이후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필리핀을 여행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납치·감금하고 권총 등으로 위협한 혐의로 검찰로부터 사형을 구형받았다.

당시 필리핀 수사당국의 협조로 극적으로 국내 소환이 이뤄지며 국내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됐다. 하지만 필리핀의 한국 관광객 범죄 피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필리핀에서 일어난 피해로 지난해 10월 필리핀 앙헬레스 지역에서 50대 한인 남성이 현직 경찰 4명에게 목 졸라 살해된 사건이 있었다.

또 지난해 11일 바콜로시에서 총격 피살 사건이 발생해 필리핀에서 한국인 3명이 총에 맞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40대 이상 한국인 남성 2명과 여성 1명이 사망했다. 또한 지난해 5월 20일에는 필리핀 수도 마닐라 주변 따이따이지역에서 한국인 선교사 심모(57·남)씨가 20대 필리핀인에게 목숨을 잃었고 같은 달 17일에는 장모(32·남)씨가 괴한의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처럼 해외 여행객이 늘어나면서 해외에서 범죄의 대상이 되는 한국인의 수도 함께 늘어나고 있다.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교민과 여행객 등이 해외에서 당한 범죄피해건수는 2006년 2930건에서 2015년 8298건으로 9년 동안 2.8배 증가했는데 소매치기를 비롯한 절도·강도 피해가 가장 많았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달 발표한 ‘국민의 국외 범죄유형별 피해 현황’(2014년 기준) 자료에 따르면 전체 피해자 5952명 중 ▲절도·강도(77.5%)▲사기(4.1%) ▲폭행·상해(3.8%) ▲납치·감금(1.1%) ▲살인(0.4%) 등 순으로 조사됐다.

또한 외교부에 따르면 재외국민 사건·사고 피해자 통계를 보면 지난 2011년엔 4458명이었다. 작년 상반기에도 4100여 명이 피해를 봤다. 작년에 발생한 피해 유형별로 살펴보면 절도 피해가 2941명으로 가장 많았고, ▲사기 176명 ▲교통사고 155명 ▲폭행·상해 135명 순으로 집계됐다.

(사진=뉴시스)

韓 관광객 못 지키는 외교당국 늑장대응

이번 대만 사건을 비롯해 필리핀의 빈번한 범죄 까지 한국 관광객에 대한 피해 범죄가 비단 해당 국가의 치안 문제나 관광객의 부주의 때문만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범죄 발생시 반복되는 우리 외교당국의 허술한 대응으로 한국 관광객이 충분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사건사고를 당했다면 영사콜센터(www.0404.go.kr, 02-3210-0404)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하지만 지난 15일 여학생 2명이 대만 택시투어 기사에게 성폭행 당한 뒤 여학생들이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해 논란이 됐다.

이에 성폭행 사건만 해도 진정이 어려운 일인데 피해자 신고를 받은 현지 한국 대표부 직원의 성의 없는 응대 논란이 또 붉어졌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사고를 당한 이튿날에야 겨우 정신을 차려 주 대만 한국대표부에 신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화를 받은 직원이 “자는 데 이 시간에 왜 전화를 하느냐”는 듯한 투로 답변을 했다는 게 신고한 피해 여성의 주장이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에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현지 한국 공관이다. 그게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외 공관의 최우선 임무다. 헌법에도 국가는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2조 2항)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 그런데도 그걸 귀찮게 여긴다면 재외 공관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부실한 재외국민 보호로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예는 차고 넘친다. 온두라스에서 살인혐의로 1년 넘도록 구금된 한지수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태국에서 졸지에 마약사범으로 몰렸지만 2년 가까이 우리 대사관 관계자와 면담 한 번 못한 경우다. 외교부를 믿고 해외여행을 할 수 있도록 공관원에 대한 재교육과 재외국민 안전 보호 시스템을 재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사진=연합뉴스 영상 캡쳐)

턱없이 부족한 인력, 구멍 난 안전대책

계속되는 해외여행 피해사건에도 외교부의 안전대책은 미흡하기만 하다. 현재 외교부는 재외국민 사건·사고 통계를 아시아·태평양, 미주, 유럽, 중동으로 크게 구분해 작성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에는 중국·일본·기타로만 표시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살인사건이 발생한 필리핀을 포함한 기타 지역의 사건·사고 피해자는 중국과 일본의 두 배에 가깝다. 유럽에서는 최근 5년간 1만여 명의 범죄 피해자가 발생했지만 세부 국가별로 통계가 나와 있지 않았다.

또한 영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 공관마다 사건·사고담당 영사는 고작 1명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여권이나 총무·외신·문화 등 다른 업무를 겸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시급을 요하는 사건에 대한 대응이나 신속성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이에 한국 관광객들에 대한 안전 대책 개선에 외교부가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우선 한국인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세분화된 통계 작성에서 시작한 다음 국가별 맞춤형 사고방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범죄 발생이 극심한 나라에서는 영사 인력의 충원, 현지 보조인력을 늘이는 방안도 대안으로 고려할 만하다.

이에 이주영 의원은 “재외국민 보호정책을 시행할 때는 지역별 특성을 고려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재외국민의 범죄피해 구제 및 보호를 위해서는 수사담당영사의 확충뿐만 아니라 외교부와 경찰청이 이러한 자료를 공유하여 범죄유형과 발생건수에 맞게 보호인력을 배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국 관광객들도 범죄에 대한 경각심과 주의를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 경찰관계자는 이런 범죄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지나친 호의와 관심을 베푸는 낯선 이들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모든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지만, 전혀 그럴 이유가 없는 사람의 과도한 호의는 의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대만 택시 성폭행 사건도 택시 기사가 건넨 수면제를 탄 요구르트를 마신 뒤 일어난 일이다. 이번 사건에서처럼 특히 친절을 가장해 건네는 음료를 주의해야 한다.

A씨는 지난해 10월 11일 인도 뉴델리 시내 유명 관광지인 인디아게이트에서 만난 외국인 B씨와 동행하다 강도를 당했다. B씨가 준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정신이 몽롱해진 A씨는 귀중품을 맡기라는 B씨의 말에 현금 1만2000루피(약 20만원)을 건넸지만, B씨는 이를 갖고 도주했다.

이처럼 해외여행 시 소지품만 훔쳐 가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큼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해외여행 시 반드시 유의해야 할 항목이다.

또한 심야 시간대 등 야간에 불필요한 외부 출입을 삼가고 심야 시간대가 아닌 경우에도 인적이 드문 곳은 출입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범죄 피해를 당한 경우 순간적으로 당황해 대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 미리 해당 국가의 영사 콜센터 등의 정보를 알아 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경찰은 “무엇보다 해외여행을 하는 우리 국민이 안전의식을 잘 갖추고 안전하게 여행을 마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를 위하여 꼼꼼한 여행준비 및 혹시 있을지 모를 범죄에 대해 자신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사고방지 예방법을 숙지”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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