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 넘어선 전통시장 생기, 경기부진이 발목

경기불황? 설 특수 제대로 누리는 ‘경동-청량리 시장’

AI 파동이 불러온 ‘생닭기피 현상’ 시장에선 틀린 말

내수경기 한파에 ‘경제적인 설마중’ 트랜드로 떠올라

유통가 ‘김영란법 주의보’ 전통시장도 피해가긴 어려워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차례용 배가 한 개에 삼천원! 세 개에 오천원!” 시장 안을 쩌렁쩌렁 울리는 상인들의 외침에 손님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내기라도 한 듯 너도나도 몰려드는 인파에 상인들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설 명절을 일주일여 앞둔 22일 찾아간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과 인근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경기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활기가 넘쳤다. 낮 최고기온이 영하 4도에 머무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 시장은 설을 준비하는 손님들과 상인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경동시장 입구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경동시장은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용두동, 전농동 일대에 위치한 약 10만㎡ 규모의 서울약령시, 광성시장, 경동신시장, 경동구시장 등을 통틀어 일컫는다. 특히 서울약령시에서 거래되는 한약재는 서울지역 거래량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경동시장 바로 옆에 인접한 청량리청과물시장 역시 70여개 점포가 4개 구역으로 나눠져 영업 중인 국내의 대표적 청과물 도매시장으로, 한때는 남대문 시장과 함께 서울 내 최대 상권을 자랑하던 곳이었다.

무엇보다 경동시장과 청량리청과물시장 모두 도매에 특화된 시장이라 알려져 있으나, 일반 소비자들이 평소에도 즐겨 찾는 서울 동부권의 대표 전통시장이다.

한파가 전국을 덮친 지난 주말 역시 이곳 두 시장에는 정유년 새해 설을 준비하기 위한 손님들의 발걸음이 줄지어 이어졌다.

 

분주한 시장, 마트 휴업도 한 몫

기자가 찾은 당일은 경동시장부터 청량리청과시장까지 인도는 손님들과 상인들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찬 모습이었다. 일각에서 외쳐온 ‘전통시장 부활’이 이곳에선 다른 세상 소리처럼 들릴 정도였다.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경동시장과 청량리청과물시장의 명성 탓인지 동대문구 지역 주민들은 물론 멀리 경기도에서 이곳을 찾은 시민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경기도 용인에 거주한다는 30대 가정주부 김모씨는 “원래 시댁이 제기동이라 이곳에서 장을 보던 습관도 있고, 여기만큼 설마중하기에 적절한 곳도 없어서 매년 명절이면 이곳을 찾는다”며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준비했는데 가격 역시 별반 오르지 않은 것 같다”며 전통시장 쇼핑에 상당한 만족감을 나타냈다.

더욱이 이날은 인근 대형마트가 월 정기 휴무에 들어가는 날이라 유독 더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도 했다. 주말을 맞아 고기와 생선 등을 미리 준비하려는 주부들이 마트 대신 시장을 찾아온 것이다.

경동시장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상인 박모씨는 “아무래도 우리집은 소, 돼지를 직접 가공해 저렴하게 판매하다보니 평소에도 손님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며 “오늘 같은 경우 대형마트까지 휴업하다 보니 명절용 갈비와 구이 종류 등을 많이 찾으신다”고 말했다.

시장을 둘러보니 간간히 외국어가 눈에 띄기도 했다. 상품 박스에 중국어와 일본어 등이 적힌 외국산 수산물이었다.

냉동수산 상인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생선가게 점원인 이모씨는 “설을 맞아 평소보다 많은 분들이 시장을 찾았다”며 “외국산 수산물에 대한 기피가 있다고 하지만 결국 손님들의 선택은 가격이다. 상에 올릴 생선은 그래도 국내산을 찾으시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국내산 외국산에 차별을 두지 않으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생닭 상인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최근 전국을 휩쓴 조류 인플라엔자(AI) 파동 이후 생닭 소비가 줄어들었다는 우려가 많았으나 설을 앞둔 경동시장에선 생닭 기피 현상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히려 생닭가게 앞에는 제사상에 올릴 닭을 사기 위한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닭 가게만 10여년 째 운영해 왔다는 최모씨는 “조류독감 파동 후 닭고기를 구입하러 오시는 분들이 많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래도 설 대목이라고 많이들 찾아주시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그동안 못했던 장사가 잘 될 것 같아서 기대 중”이라며 밝게 웃었다.

시장 한켠에선 노상에 더덕을 수북이 쌓아 판매 중인 할머니 상인도 만날 수 있었다.

더덕파는 상인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매서운 한파에 내의와 패딩을 겹겹이 입고 나온 강모 할머니는 “원래 우리 약령시장에서 더덕이 인기가 많아. 오히려 지금은 예년보다 손님이 줄었어. 그래도 오늘은 설 대목이라고 그나마 많이 온 것 같아. 날이 추운데도. 더덕은 설이라고 더 잘 팔리는 건 아냐. 그냥 평소랑 비슷한 것 같은데”라고 말하며 등 뒤쪽에 피워놓은 불쪽으로 손을 옮겼다.

 

경기불황에 ‘김영란법’ 이중타

경동시장과 청과물시장 모두 손님들로 북적이는 모습이었으나 일부 상인들은 예년 같지 않은 내수경기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법’ 시행에 대한 불만을 드려내기도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정부기대치를 한참 밑도는 2%대 경제성장률을 보였고 내수경기 역시 극도로 침체됐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아직까지 개선될 여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내수경기 여파가 전통시장마저 변화시키고 있는 것으로, 여유롭게 풍족한 명절을 준비한다기 보다는 경제적인 설마중이 트랜드로 자리 잡힌 모습이었다.

청과물 상인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청과물 판매상 한모씨는 “차례 상에 올라가는 배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가격이 떨어졌는데도 단품으로 사가는 손님들이 많다. 그래서 박스보다는 낱개 판매를 주로 하고 있는 편이다”라며 경기가 좋지 않아 손님들 지갑 역시 가벼워 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인근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박모씨 또한 “사실 최근에는 장사가 썩 잘 되지는 않았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와 불안정한 경기 등으로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졌기 때문인데, 뭐라도 좋으니 상인들이 살 수 있는 정책이 나왔으며 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법 시행 후 처음 맞이하는 설 명절을 앞두고 유통가 전체에 김영란법 주의보가 내린 가운데, 전통시장 역시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모습이었다.

과일 택배 (사진=뉴스포스트 선초롱 기자)

해당 법 시행령에 따라 5만원 이상 선물 제공 시 위법행위가 될 수 있다 보니 예년에 비해 고가 선물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고, 한우와 한약재 등 조금만 선물상자에 담아도 금새 5만원이 넘는 고가상품 가게가 그 직격탄을 맞은 형국이다.

대신 그 자리는 5만원 이하로 가격을 맞춘 과일가게 등이 대신하는 모습이었다.

인기 선물세트의 세대교체는 시장에서 바로 보내는 택배 품목에도 영향을 끼쳤다. 경동시장 내 한우와 한약재 선물세트 택배가 잘 보이지 않은 반면, 청량리청과물 시장 내 택배물량은 넘쳐나는 모습이었다.

 

 

청과물점을 운영 중인 정모씨 역시 “김영란법 영향 때문인지 저렴한 제품들이 많이 판매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윤적인 측면에서는 오히려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저렴한 상품을 택배를 통해 이용하는 분들은 늘어난 편이다”라고 덧붙였다.

김영란법의 직접적인 피해를 하소연 하는 상인도 만날 수 있었다. 20년째 경동시장에서 한약재 판매해 왔다는 최모씨는 “설이면 상황버섯이나 녹용 등 좋은 한약재를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올해는 그런 상품들이 거의 안 나간다. 경기불황에 김영란법까지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런가 하면 최근 대구 서문시장과 여수 수산시장 등의 화재 사고로 인해 전통시장 주변 안전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이 같은 경향은 경동시장 내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장 내 화재 예방을 당부하는 포스터 등을 시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것.

한편, 전통시장의 고질적 문제로 거론되는 주차난 역시 눈에 띄었다. 청과물시장 인근에 마련된 주차장이 너무 협소하다 보니 주차자리를 둘러싼 상인과 손님 간 실랑이도 몇 차례나 눈에 띄었다. 이와 관련 청량리청과시장을 찾은 정모씨는 “재래시장은 다 좋은데 주차가 문제”라며 혀를 쯧쯧 차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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