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80년대 중반에 조선족의 대표적인 지식인인 연변대 전 총장 김병민 교수가 한국을 방문한 뒤에 한 말이 내 귀에 이따금 생각난다. 그는 “한국은 현수막 사회”라고 정의했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허황된 시대를 꼬집는 철학적 화두였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북한에 있는 김일성대학 조문학부, 우리 표현으로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셈인데 그는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두루 체험한 문화 평론가이기 때문에 그의 말은 더욱 실감나고 설득력 있게 들렸다. 그의 해석은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거품시대에 대한 지적이기도하다.

요즘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말로만 떠들고 철학적 기반이 없이 너도 나도 인문학을 주제로 한 세미나나 강의 등이 하루가 멀다할 정도로 펼쳐지고 있지만 철학적 빈곤을 드러내고 있어 안타깝다. 세미나나 학교 현장에서 현수막을 걸고 일회성 강연으로 인문학의 위기를 탈출한다면 이보다 더 쉬운 일이 없다.
 

요즘은 인문학과 관련하여 학교에서 어떠한 교육이 펼쳐지는지 모르겠다. 필자가 정년 6년차에 들어섰기에 대학 현상이 어떤지에 대해서 자신이 없다. 그러나 굳이 묻지 않아도 대학 교양과목에서 철학 역사 문학 과목이 사라지고 지금 흔적조차 없을 듯하다.

취업 우선이고 상업주의에 밀려 우리가 오래전부터 실시하던 교양과목은 송두리째 없애버렸다. 이를 조장한 사회도 문제이지만 학생 교육을 담당하는 교과부 자체가 더 문제이다. 본인 역시 한때 문교부에 근무한 경력이 있지만 제일 큰 문제는 교과부의 고급 두뇌들이 과연 철학적 사고를 가지고 있느냐다.

모든 학문과 문화의 토대가 바로 인문학임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학교 커리큘럼에 국어 역사 철학이 없는 같다. 정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를 독려하는 교과부나 교육청 자체가 철학없이 우왕좌왕하는데 요즘같이 국정이 마비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더 이상 말한다는게 40년 교직에 종사하던 나로서도 부끄럽고 불행한 일이다.

 
현수막 걸고 신문지면에 인문학 선전을 한다고 어린이 가슴에서 철학이 스며나고 역사가 샘솟는 일인지 엄중히 따져 볼일이다.


김병민 연변대 전 총장의 말대로 우리 교육이, 우리의 삶이 현수막처럼 가벼이 펄럭인다면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익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트럼프시대에 접어들었다. 국경 있고 장벽있는 시대를 헤치면서 살아갈 토양이 인문학이다.

이를 도외시하는 교육현장에서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고 문화를 번영으로 이끄는 과목이 바로 인문학이다. 스위스가 독일이 프랑스가 추구하는 과학기술의 저변에는 반드시 인문학이 튼튼히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걱정이다.

요즘처럼 현수막처럼 가벼운 존재의 교육현장은 학교의 책임도 일부 있지만 더 큰 책임은 정상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교과부 관계자들의 책임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필자는 작은 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다.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하나 얻어 학생 체험교육 하나 개설하고 있다. 여기에도 학교장들의 안전사고에 소심함으로 벌벌 떨고 학생들 보내는 것도 두려워하는 작태를 보면서 이 나라 교육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짚어본다.

 
이제 실속 없는 현수막도 걷어내고 새봄에 우리는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모양내기로 남의 눈을 속이는 작태는 반드시 사라져야한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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