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나이가 들수록 일가친척들의 분쟁 조정자로 추대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사실 반갑잖은 일이다. 하지만 이는 나이 든 사람이 걸머지는 책무일 수도 있다. 각자의 이해득실 때문에 분쟁을 조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한 가지 묘안을 고안해 냈다. 좋은 묘안일 것 같아 분쟁 대상자들을 부모묘소로 모두 불렀다. 여기에서 당사자들이 대면하게 되자 그만 일이 쉽사리 풀렸다.
그간 거친 언행으로 서로를 헐뜯던 당사자들이 자기들 부모가 안장된 묘지 마당에서는 서로가 조심하고 양보하는 태도를 보였으며 상호 오해와 갈등을 풀었다. 한번 권장할만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나는 가족 간 유산문제로, 명분으로 갈등을 빚던 사안을 말끔하게 처리한 경험이 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도 해결해야만 하는 국민적 과제이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속히 찾아야 한다. 더구나 눈앞에 다가오는 선거를 두고 진보 보수가 화합하는 태도를 보여야한다.
그래야만 국가 에너지와 삶의 질도 향상된다.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여 여야지도자는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어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지난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를 그냥 대수롭지 않게 보고 넘기면 절대 안 된다.
 
필자는 이런 분위기를 해결할 또 하나의 대안을 제기해 보고자한다. 요즘 유행하는 광장문화로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심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이는 상대를 존중하거나 고려치 않는 일방통행식의 폭행이요 힘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자칫 숫자와 물리적인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인데 이제는 고차원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광장에 모여 진보 보수가 맞서기보다 서로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상대방의 고통과 삶을 되돌아보는 슬기가 우리에게 지금 필요하다.
그래서 보수 진보가 만나면 삿대질과 분신으로 얼룩지는 광장의 이름도 차제에 바꾸어 봄직하다. 현재 서울 광장으로 불리는 곳에 덕수궁 마당이나 경운궁 마당이란 이름을 붙여보면 어떨까한다. 원래 지금 서울 광장 자리가 경운궁 궁역이었다.
이 궁역이 1906년 고종황제의 대안문을 수리하면서 대한문으로 바뀌어 불렸다. 그리고 한·일 합방이 되면서 경운궁이 도로로 편입되면서 제국의 궁역은 자꾸 줄어들었다. 이로 인하여 경운궁은 지니고 있던 지세와 품격도 많이 훼손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게 바로 오늘의 덕수궁이면서 서울 광장이라 불리고 있다.
 
이제 이런 민족의 성스러운 궁역에서 진보 보수가 연일 시위로 갈등을 유발하는 마당으로 만들어서는 결코 안 된다. 정치인들은 자기 편한대로 그런 성스러운 광장을 안방처럼 처우하는 일은 이제 지양하는 태도를 보였으면 한다.
일제 강점기에 맞선 대한제국의 광무개혁 마당이 이제는 시위로 한주일도 편한 날이 없다. 이제 우리는 덕수궁마당이 거룩한 개혁의 마당이었으니 국가 개혁의 성역으로 아끼는 자세가 영글어 가길 기대해본다.

이제 필자가 몇 차례 조상이 남긴 유산 균할을 묘지 그 성역에서 해결한 경험을 되짚어 반추해본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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