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인 충남문학관 관장 / 작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글씨를 쓰는 서도인 이라면 누구나 자기가 아끼는 붓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인의 취향이고 색깔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시인이나 작가에게도 그만이 고집하는 펜이나 만년필이 있다.

상록수의 저자 심훈 선생은 일제치하에서 독립을 부르짖는 시를 썼는데 시를 쓰는 펜이 일제였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A25 젤압메보 제펜’이 바로 심훈 선생이 썼던 펜이다.

필자는 언론인으로서, 편집인으로서 작가로서의 꿈을 지닌 소년시대부터 좋은 만년필 하나 갖는게 염원이었다.

그런 꿈이 50대 나이가 되어 이루어졌는데 그 만년필이 ‘몽블랑’이다. 이 몽블랑 만년필은 가격도 만만치 않아 서민들이 소지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건축설계를 하는 고향 선배가 거금을 투자해서 선물했으니 필자에게는 귀물이다.

요즘은 몽블랑이 제작한 ‘마이스터스튁 149’가 유명해졌다. 이 만년필은 1990년 서독의 콜총리와 동독의 디메제이 수상이 만나 통일 서약서에 사인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만년필로 서명한 것은 정치적 의미가 컸다. 펜이 즉, 통일의 상징이 된 것이다.

만년필이라는 개념은 잉크가 샘처럼 마르지 않고 솟아나 펜촉처럼 찍어 쓰지 않으므로 차별화 했던 상품이었다. 만년필의 핵심은 펜촉에 무슨 도금을 했느냐에 따라 다른데 대체로 리듐으로 만들며 금으로 된 것이 값이 나가고 내구성도 뛰어나다.

펜촉은 대체로 F. M. B 등으로 각각 구분된다. 글씨를 가늘게 쓰는 사람은 F촉을 선호하고 글씨가 크고 알파벳을 주로 쓰는 이는 M이나 B처럼 굵은 펜촉을 선호한다. 옛날처럼 원고지에 큰 글씨를 쓰는 작가들은 M이나 B촉을 선호했다.

독자에게 사인을 직접하는 경우도 역시 펜촉이 굵어야만 한다. 그런데 요즘은 스마트폰 시대로써 펜이나 만년필이 없어도 그다지 불편한 일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만년필이  가방이나 구두처럼 명품이미지 속에 수요가 늘어난다 하니 필자처럼 직접 육필 원고를 쓰는 사람에게는 좋은 만년필이야 말로 든든한 벗이다.

좋은 펜이나 만년필로 우리가 가진 맑고 깨끗한 기개로 글을 쓴다는 것도 축복이다.

필자가 청년시절에 만난 난계 오영수 선생은 평생 만년필로 숱한 소설을 써내셨다. 오영수 선생의 작품에는 바로 이 만년필의 노고도 무시 할 수 없다. 일필휘지로 갈겨쓴 저자 서명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연필이나 펜, 혹은 만년필도 세계 수준의 몽블랑처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하다.

작은 만년필로 이 땅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엮어가는 필자이고 싶다.

세계의 만년필을 만드는 작은 공장에서부터 우리는 선진한국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
 

이재인
소설가
전 경기대교수
충남문학관 관장
한국문인인장박물관장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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