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비정규직 지옥이 부른 '비극'인 한국지엠의 정규직 채용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되는 모양새다. 검찰은 한국지엠 임원과 노조 간부 간 공생 관계를 토대로 만든 합작품으로 판단하고 전·현직 임원 등 31명을 재판에 넘겼다. 이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가 장기화 되자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에 대한 압박을 느낀 노동자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노동자 자살까지 불거진 한국지엠 채용비리 사태의 관련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또한 열악한 처우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을 상대로 채용장사를 일삼은 한국지엠은 뼈를 깎는 쇄신작업을 통해 그동안 실추됐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지엠 전 부사장·노조간부 등 윗선 드러나

지난해 5월부터 인천지검 특수부(김형근 부장검사)는 한국지엠 부평공장 정규직 전환 채용비리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다. 한국지엠 노사 간부들이 2012년부터 하청업체 비정규직 생산직을 정규직으로 발탁 채용하면서 한 명당 수천만 원의 뒷돈을 챙겼다는 것이 핵심 혐의다.

검찰이 8개월간 대대적으로 수사한 결과 한국지엠의 정규직 채용비리는 회사 임원과 노조 핵심간부들이 공생 관계를 토대로 만든 합작품으로 판단했다.

인천지검 특수부(김형근 부장검사)는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전 부사장 A(58)씨 등 한국지엠 전·현직 임원과 간부 5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또 근로기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금속노조 현직 한국지엠 지부장 B(46)씨 등 전·현직 노조 간부 17명과 생산직 직원 4명 등 모두 26명(9명 구속기소)을 기소했다.

A씨 등 전·현직 임원 3명은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5월까지 한국지엠의 도급업체 소속 생산직 비정규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이른바 '발탁채용' 과정에서 각각 45∼123명의 서류전형·면접 점수를 조작해 합격시켜 회사의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나머지 노사협력팀 상무와 부장 등 간부 2명은 2015년 9월 정규직 전환 대가로 취업자로부터 2천만∼2천500만원을 각각 받아 챙긴 혐의다.

이들 외 B씨 등 전·현직 노조 핵심간부 17명과 생산직 직원 4명도 2012∼2015년 사내에서 채용 브로커로 활동하며 최소 400만원에서 최대 3억3천만원을 각각 채용자로부터 받고 정규직으로 전환해 준 것으로 확인됐다.

채용비리와 관련해 적발된 총 금품액수는 11억5천200만원인데, 노조 핵심간부 17명이 8억7천300만원(75.7%)을 받아 챙겼다.

한국지엠의 정규직 채용비리는 회사 임원과 노조 핵심간부들이 맺은 공생 관계를 토대로 각자 잇속을 챙기며 장기간 진행됐다.

노조지부장 등 사내 채용 브로커들이 취업자들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아 챙긴 후 인사담당 임원에게 청탁하며 불법 취업을 도왔다. 또한 사측 임원들은 노조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채용 성적까지 조작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총 6차례 진행된 한국지엠의 발탁채용에서 채용비리로 정규직 전환된 직원은 인천 부평공장 합격자 346명 가운데 123명(35.5%)에 이른다.

브로커들은 정규직이 되면 연봉이 2배 가까이 오르고 학자금 지원 등 각종 복지 혜택뿐 아니라 고용 안정성까지 얻을 수 있다고 설득했다. 실제로불법 취업자들이 정규직으로 몇 년 일하면 채용 브로커에게 준 돈보다 더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었다.

검찰은 채용비리 수사 전 파악한 한국지엠의 납품비리와 관련해서도 노사협력담당 상무 C(58)씨 등 임원 2명을 기소하는 등 모두 13명(6명 구속기소)을 재판에 넘겼다.

한편 <뉴스포스트>는 이와 관련 입장을 듣기 위해 한국지엠 측에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닿지 않았다.

 

(사진=한국지엠 홈페이지 캡처)

'채용비리' 환부 도려내야

정규직 채용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도중 한국지엠의 노조 간부가 숨진 채 발견되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인천지검은 지난해 11월 검찰은 470여 명에 달하는 채용비리 연루자들을 수사하기 버거워 한 달 정도 자수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지엠 제임스 김 사장 겸 CEO 또한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수자는 징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검찰이 자수자들을 대상으로 채용비리 관련자들을 색출하기 시작하자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 근로자들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급기야 지난달 5일 지부 대의원 노동자 D씨는 부평공장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검찰에게 "제발 이 시점에서 잘 마무리해 달라"며 "신입사원들이 너무 힘들어한다"고 짧막한 유서를 남겼다.

검찰은 "D씨는 인천지검에 자수한 적도 없고, 소환한 사실도 없으며, 수사대상자도 아니다"며 강압수사 의혹을 부정했지만 노조가 공개한 D씨의 유서에는 장기화된 검찰 수사로 인해 고통스러운 심경이 담겨 논란이 됐다.

유서를 통해 검찰이 2012년 이후 입사자 478명 전체를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것 때문에 상당한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검찰수사가 장기화 됨에 따라 조합원들에게 심리적으로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

한편 업계에서는 수년 전부터 거론되왔던 채용비리에 대해 한국지엠이 진작에 환부를 도려냈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정규직 채용 시험에 응시한 많은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공고한 비리 구조의 벽에 막혔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음성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는 지적이다.

한국지엠은 채용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 사측과 노조가 채용비리로 결탁하는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자정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과제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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