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석산 엄마를 찾아서

바로 그날 아침이었다. 웬 낯선 남자 서너 명이 방으로 몰려들어와 소년을 빙 둘러섰다. 그리고 소년의 놀란 숨보다 더 세찬 숨으로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오매! 이 이것이 뭐다냐? 사 사람여, 귀신여? 이게 뭔 일이여?”

“시상에! 야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이여? 이 엄동설한에 어떻게 여기에 ……?”

“하이고, 시방 너거 할매 너 죽은 줄 알고 초주검이 돼야 버맀다. 시상에, 할매랑 나무를 하러 가던 놈이 이게 뭔 꼴이다냐?”

그렇게 떠들던 그들은 다짜고짜 소년을 둘러업고는 순식간에 자작나무숲을 내달려 그곳으로부터 멀어졌다. 난데없는 그 일에 소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엄마를 여기에 놔두고 다시 할머니 집이라니. 도대체 사람들이 왜 그러는 것인지. 파랗게 숨이 넘어가는 소년의 울음에도 남자들은 막무가내로 자작나무 숲을 달려 할머니의 집 감나무 아래에 소년을 내려놓고는 다시 제멋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야가 이마빼기가 깨진 건, 거짐 아물었는디 아무래도 머릿속을 다친 모양이어라, 자꾸 이상한 소리만 헝게로, 병원을 한번 데꼬 가보는 것이, 자꾸 거기서 저거 엄마를 봤다고 헝게로……”

“혹, 야가 거기서 헛것에 홀린 건 아닌지?”

그중에 소년을 업고 온 남자는 혀를 차며 소년의 눈꺼풀을 뒤집어보기까지 했다.

“시상에, 지 엄니가 얼매나 보고자펐으며 쯧쯧……”

그날 밤. 지쳐 잠든 소년의 귓가로 나직나직 들리는 소리였다. 소년은 그 나직한 소리에 한밤중 눈이 떠졌다. 불이 꺼진 어둠 속에 할머니와 이모였다. 그 밤에 이모가 할머니의 부름에 득달같이 내려온 모양이었다. 소년을 의식한 듯 그녀들은 잔뜩 소리를 낮춘 숨소리만으로 소곤거렸다.

“하이고, 지금 그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아서. 그렁게 그날 밤이었다. 자랑 나랑 이리 짜란히 누워 자는디 시상에, 지금도 그 말을 헐라고 헝게 가심이 벌렁 거리서. 긍게 그날은 뭔 일인지 내가 말캉에 전깃불을 끈다는 것을 깜박 잊어뻐맀지 뭐냐. 그리서 그것이 훤히 보였던 것이지. 시상에, 저 봉창 뒤에서 갈퀴같이 홱 꼬부라진 것이 저 문살을 툭 치고 들어오는디. 오매! 그럼서 대번에 저 팽팽한 문종이를 부우욱 찢어 놓는디, 머리끝이 꼿꼿하게 섬서 숨이 딱 멎더라.”

놀랍게도 할머니는 소년이 꾸었던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 소년에게는 그것이 분명 꿈이라고 했으면서. 꿈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소년은 일어나려던 자세를 버리고 그대로 자는 척 고른 숨소리를 냈다.

“그렁게 그것이 뭐겄냐. 삼거리 주막집에서 목을 매 죽은 그 첩년이지. 본가에 새끼 뺏기고 죽은 그 그것이 저승에도 못 들고 떠돌다 우리 용이를 넘보고 탐을 낸 것이지. 그게 아니면 내 앞에 멀쩡히 있던 저것이 왜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졌다 그 빈집서 발견될 것이냐?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이모도 마찬가진 모양이었다.

“엄마, 요즘 귀신이 어딨어? 엄마가 그날 밤 뭘 잘 못 보신 건 아니고? 그리고 귀신이 하필 우리 용이를 넘봐? 또 삼거리 첩은 뭐고?”

정색하며 묻는 이모의 말에 할머니는 손가락을 입술에 세웠다. 그리고 아까보다 더 낮은 소리로 소곤거렸다.

“쉬 잇, 용이 깰라. 그렁게 여기 신작로가 나기 전, 종석산을 넘어야만 정읍이고 태인이고 갈 수 있지 않았겄냐. 그 종석재를 넘기 전 삼거리에 한 젊은 여자가 돌도 안 된 머시매 허고 서너 살쯤 되는 가시내를 데꼬 들어와서는 한 삼 년을 넘게 살지 않었겄냐, 막걸리도 팔고 풀빵도 꿔 팔고 험서. 그 여자가 바로 정읍서 돈푼깨나 있다던 부잣집의 첩실이었어. 분꽃같이 허연 살결에 눈이 큼지막 허니 인물이 반반한 여자였는디. 거기에 헤실헤실 웃음까지 헤픈 통에 지 여편네 속 고쟁이 꺼정 갖다 바치겠다는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어. 그러다 봉게 동네 여편네들은 걸핏하면 그것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채곤 혔지. 어쨌거나 그 여자가 본마누라 몰래 거기서 한 삼 년을 넘게 숨어 살었다 이 말이여, 그런디 그해 봄인가, 정읍의 본마누라가 어찌 이 사실을 알었는지 득달같이 들이닥쳐서는 고것의 머시마를 소리개가 삥아리 채어가듯이 채 가 버맀지 뭐냐. 그 뒤로 이것이 실성을 헌 것인지, 수세미같이 산발한 머리로 동네를 쓸고 댕김서 그 또래 머시매들만 보면 환장을 혔는디. 심지어는 어린 것들을 살살 꼬셔 저 사는 오막살이로 데꼬 가는 통에 동네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아니었고. 그러니 결국 동네에서는 그것을 쫓아내기로 날을 잡었는디, 그런디 고것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고 그런 건지 어쩐 건지, 그해 시한에 저기 집 시렁에다 목을 매 죽어버맀지 뭐냐.”

“여자애도 하나 있었다며 그 애는?”

이모는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는 사실을 잊은 듯 깜짝 소리를 높였다.

“쉬익, 조용히 혀라, 자 깰라. 그렁게 그 일이 나기 전, 그것이 임실 재 넘어 소쿠리 장시한테 수양딸로 주었다는 소문이 돌기는 혔는디, 모르지, 그 뒤로 우리는 가를 못 봤응 게로. 가도 지 오매만큼이나 눈이 크고 이뻤으니 어디 가도 그 얼굴값은 허고 살았겄지. 어쩠든 그 뒤로 거기는 대낮에도 사람들이 나다니지 못하는 사나운 곳이 돼야 부렸어. 귀신을 봤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응게로. 그런디 우리 용이가 그곳에서 나흘간이나 혼절해 있었으니, 지금도 그 생각하면 가심이 벌렁 거리서. 그리서 말인디, 니가 우리 용이를 서울로 데꼬 가면 안 되겄냐? 암만 혀도 내가 맘이 안 놓여서 그렁게로. 언제 자가 또 거기를……”
자는 척 숨을 죽이고 있던 소년은 그대로 자는 척 할 순 없었다. 소년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싫어 엉! 안 간단 말이야! 엄마가 거기에 있는데, 왜 내가 이모를 따라가! 할머니랑 이모도 거기를 가보면 알 것인데 왜 내 말을 안 믿고 자꾸 그런 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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