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유린’ 불명예 퇴진…탄핵 그 이후는?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DB)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파면됐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지 91일만의 일이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첫 여성 대통령이자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파면된 첫 대통령으로 남게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의 선고일인 10일 오전 헌법재판소 주위는 한껏 날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헌법재판관들은 지난해 12월9일 국회가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가결한 이후 92일간 준비기일을 포함 총 20차례 변론기일을 진행했으며, 지난달 27일 최종 변론 진행 이후 매일 평의를 진행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역사적 결정을 내릴 헌법재판관 8인은 평소보다 일찍 헌재 청사로 출근을 마쳤다. 탄핵심판 사건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을 비롯해 김이수, 안창호 재판관은 오전 7시30분께 헌재에 도착했다. 이는 평소보다 1시간30분정도 이른 시간이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도 7시50분께 출근했다.

헌재 주위로 탄핵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이들이 모여들면서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선고가 예고된 11시 재판관들이 재판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입을 열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헌재는 박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탄핵을 인용됐다. 반대의견은 없었다.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 결정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은 파면조치되고 자연인 신분이됐다.

우선 헌재는 탄핵심판과 관련해 박 전 대통령 대리인단 측 제기했던 절차적 문제점에 대해 흠결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며 정당성을 세웠다.

이정미 소장대행은 “국회의 탄핵소추가결 절차에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위법이 없으며, 다른 적법요건에 어떠한 흠결도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최순실로 대표되는 비선조직에 의한 국정농단과 이와 관련된 대통령의 권한남용이 박 전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 했다.

헌재는 박 전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했다고 판단했다. 박 대통령 이같은 위반 행위가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의 행위는 최순실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며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했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DB)

헌재는 그동안 사실관계를 들여다 봤던 ▲문서 유출 및 공무상 취득한 비밀 누설 ▲최순실 지인 업체 KD코퍼레이션 특혜 제공 강요 ▲롯데그룹 추가 출연금 요구 최순실 소유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 특혜 제공 강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모금 강제 혐의에 대해서 박 대통령 법률 위반 행위로 규정했다.

이 권한대행은 “재단법인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설립, 최순실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박 대통령의 행위는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했을 뿐만 아니라 기업경영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공직 후보자를 추천하기도 했는데, 그 중 일부는 최씨의 이권 추구를 도왔다”며 직업공무원제도도 위배했음을 지적했다. 헌재는 함께 탄핵사유로 제기된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의 자유 침해,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증거와 개념의 모호성 등을 이유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최씨와 관련된 대통령의 권력남용 법위반 행위는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릴 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권한대행은 “박 대통령은 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해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고 말했다.

또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했다”며 “이 사건 소추사유와 관련한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까지 평가했다.

탄핵심판 인용 결정에는 보수와 진보도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이 현직 시절 직접 지명한 2인의 헌법재판관들조차 탄핵 인용 의견에 동의했다. 이날 파면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관 중 박 전 대통령이 지명한 재판관은 서기석 재판관과 조용호 재판관 두명이다. 이들은 2013년 4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다. 서 재판관과 조 재판관 모두 보수적 성향을 가졌다고 평가됐던 인물이다.

이날 안창호 재판관은 “이 사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보충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대통령에서 피의자, 산적한 과제

 

이로써 박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서 파면돼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도 경호를 제외하고 대부분 박탈당한다. 전직 대통령에게는 재직 당시 연봉의 70% 수준, 박 대통령의 경우 1200만~1300만원 정도의 연금이 매달 지급되며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에 대한 임금과 국·공립 병원의 무료 의료, 사무실 유지비 혜택 등도 주어진다. 탄핵으로 파면되면서 이 같은 예우를 누릴 수 없게 됐다.

경호도 축소 적용된다. 대통령경호실의 전직 대통령 경호도 탄핵 등의 사유로 임기 만료 전에 퇴임한 경우는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된다. 이 기간이 끝나면 본인 의사에 따라 5년을 더 연장할 수 있으며 이후에는 경찰이 경비를 맡게 된다.

대통령을 파면에 이르게한 국정농단 사건과 이와 관련된 위법행위에 대한 수사와 처벌 문제도 시급히 해결해야할 사안이다.

특히 대통령 직에서 파면되면서 박 전 대통령은 불소추 특권을 잃게됐다. 따라서 박영수 특별검사팀으로부터 관련 기록을 넘겨받고 ‘끝장수사’ 의지를 내비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맨몸으로 직면해야하는 입장이다.

헌재의 인용 결정은 국회의 탄핵소추 사유를 인정했다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는 그 이전보다 훨씬 강도 높게 진행될 전망이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헌재 결정이 나온 직후 신속히 긴급 간부회의를 열고 “검찰은 법과 원칙에 따라 검찰 본연의 임무를 의연하고도 굳건하게 수행해야한다”며 수사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이제 오직 법에 따라 수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특히 대면조사를 끝까지 거부했던 박 전 대통령이 자연인으로 돌아오게 되면서 강제수사를 할 수 있게 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무작정 버티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정부 실세로 위세를 떨쳤던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함께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세월호 7시간의 진실과 ‘최순실-박근혜’ 공동재산론 실체가 밝혀질 수 있을지도 주목되고 있다.

다만 대통령의 구속수사와 관련해서는 시점이나 가능성 모두 여전히 조심스러운 대목이다. 파면된 대통령이지만 구속이라는 이미지가 가져올 정치적 부담을 무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됐지만 이후 국정 운영과 관련해 산적한 과제가 남아있다. 이와 함께 이른바 ‘박근혜표 정책 폐기’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역점사업이었던 국정역사교과서는 사실상 추진 동력을 상실하게 됐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 중에도 교육부가 현장검토본 공개를 시작으로 보급 계획까지 밝히며 강행 의지를 드러냈지만 국정 역사교과서 곳곳에서 오류가 확인돼 반대 여론이 더욱 거세진 가운데 박 대통령까지 파면이 결정되면서 교육부가 강행해온 국정교과서 추진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교육부는 대통령 탄핵 선고와 관계없이 교육정책을 흔들림없이 추진한다는 입장이지만 오는 5월 쯤으로 예상되는 대선을 통해 새 정부가 출범하게 되면 국정교과서가 다시 빛을 보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와 함께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에도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사드배치 문제는 박 전 대통령 임기 중반기를 넘으며 입장이 급변, 최근 탄핵이 임박하면서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결국 ‘박근혜표 정책’ 문제는 5월 예상되는 조기 대선국면에서 핵심 쟁점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5월 대선 전까지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계속 유지된다.

 

(사진=우승민 기자)

대선 직면, 국론 통합 화두

 

탄핵 이후 정국의 과제로 ‘국론통합’ 문제도 중요하게 거론되고 있다. 탄핵 정국 막판 매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 광장 일대는 탄핵 찬반을 주장하는 거대 장외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탄핵 반대 집회에서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탄핵 반대 집회를 취재하던 기자들이 폭행을 당했고, 일반 시민이 집단 폭행을 당하는 일도 발생했다. 탄핵 결정이 내려진 당일 반대 집회에 나왔던 참가자 2명이 사망하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다.

탄핵이 가까워 올수록 탄핵 반대를 주장한 친박 집회에서 극단적 발언과 행동으로 사회적 우려를 사기도 했다.

특히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이념 또는 신념의 대립이나 갈등이 더욱 커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 우려는 더욱 커지고 있다. 탄핵 국면이 마무리된 지금 극단으로 치닫은 세력을 품고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대선국면으로 빠르게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대선 후보자간 ‘국론 통합’ 이슈 경쟁 또한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덧붙이는 이야기: 탄핵의 역사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은 임시정부 시절까지 포함하면 첫 사례는 아니다. 일제 강점기 임시정부시절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국제연맹에 독립이 아닌 ‘위임통치’를 청원하고 재미동포의 세금·후원금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지난 1925년 3월 탄핵을 거쳐 파면된 사례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다시 대통령됐지만 부정선거로 촉발된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물러났다. 이후 우리 역사에 탄핵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때다. 당시 노 대통령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와 관련된 발언으로 선거법 위반 문제가 탄핵의 발단이 됐다. 하지만 당시 위법성에 대한 법리적 쟁점이 없었고 탄핵소추 의결 이후 64일만에 ‘기각’ 결정이 내려졌다.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은 이보다 28일이 더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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