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최근 몇 년간 급성장하며 화장품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발돋움해 온 네이처리퍼블릭은 지난해부터 최근까지 오너 이슈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도박·폭행·로비 의혹으로 점철된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 여파로 기업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것. 외형을 불려 대형 화장품사로 거듭나겠다는 목표아래 추진해 온 IPO(기업공개) 역시 현 시점에선 추진이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 사업 부진 속 희망이었던 중국 시장 역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역풍에 어려움에 빠졌기 때문이다. 네이처리퍼블릭 측은 경영 정상화 이후 최적의 시기를 검토해 상장을 노린다는 계획이지만, 현 시점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란 사실만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

(사진=뉴스포스트DB)

지난해 네이처리퍼블릭은 정운호 전 대표의 ‘무덤’ 속에서 한해를 모두 날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간을 보냈다.

네이처리퍼블릭을 넘어 전 화장품 산업 전체를 둘러봐도 흔치 않은 ‘맨주먹 신화’의 주인공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가 각종 구설수에 발목 잡히며 처참히 무너졌고, 회사 역시 동반추락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운호 전 대표는 20대 젊은 나이에 남대문시장에서 과일 노점을 시작, 이후 화장품 대리점을 차리며 놀라운 사업수완을 보여줬다.

2003년에는 ‘더페이스샵’을 런칭하며 소위 ‘대박’을 터뜨렸고 이내 화장품업계 황태자로 뛰어올랐다. 더페이스샵코리아의 회장직에 오른 그는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급속한 성장 속에 승승장구했고, 2009년 더페이스샵을 LG생활건강에 수천억원의 시세차익을 남기면서 매각했다.

이후 화장품업계에서 잠시 자취를 감췄던 그는 2010년 신생 업체인 네이처리퍼블릭을 인수하며 화장품 업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정 전 대표의 재등장과 함께 네이처리퍼블릭은 국내 중저가 화장품업계의 신흥강자로 빠르게 그 사세를 넓혀왔다.

그러나 정 전 대표의 성공신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조직폭력배가 주도한 마카오 ‘정킷방’에서 수백억원대 원정도박을 한 사실이 2015년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진 것.

이른바 ‘정운호 게이트’의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회사돈 횡령 혐의, 변호사 폭행 혐의, 변호사법 위반 혐의 등이 드러났으며, 군납 비리 혐의와 면세점 로비 의혹까지 세상에 공개됐다.

정운호 게이트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를 시발로 해서 롯데 오너가 뇌물 혐의가 세상에 들어났으며,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관련의혹 속 비선실세 국정농단 사태로 번진 최순실 게이트의 단초가 이 사건에서 출발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동반 추락한 네이처리퍼블릭

현재 정운호 전 대표는 1심에서 5년 징역형을 받은 뒤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6월에는 검찰 기소를 앞두고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직에서 내려왔다. 그의 빈자리는 아모레퍼시픽 출신인 호종환 대표가 맡고 있다.

개인 비리 의혹 속 회사에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난 그지만 아직 정 전 대표는 네이처리퍼블릭의 대주주이며, 회사 역시 그에 따른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DB)

오너 리스크는 네이처리퍼블릭 사업 진행에 여러 장애 요인을 가져 왔는데, 일단 기업 이미지 실추가 상당하다. 중저가 화장품을 주로 찾는 20~30대 젊은 여성층 사이에서 회사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장기간 누적돼 쌓인 것.

오너의 장기간 부재로 인한 경영정책 수립의 혼선 발생 역시 무시 못 할 부분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크게 네이처리퍼블릭을 힘들게 하고 있는 건 장기간 준비해 온 IPO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주식시장 상장 및 대규모 투자 유치를 통해 화장품 전문기업으로 한단계 도약하려고 했던 회사의 장대한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악재 뒤 또 악재

네이처리퍼블릭의 IPO 추진이 어렵게 된 내막에는 정운호 전 대표의 과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내외적 경영여건의 악화가 더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일단 네이처리퍼블릭의 주요 매장이 위치한 지하철 상가의 수익성이 최근 들어 크게 떨어졌다. 중저가 브랜드 간 과당경쟁이 불러온 어쩔 수 없는 시장 점유율 하락 및 수익률 저하가 원인이었다.

최근 국내 유통업계 전반에 휘몰아친 사드발 중국 악재도 네이처리퍼블릭의 상장 걸림돌로 등장했다.

국내 화장품 업계에서 ‘노다지’로 여겨졌던 중국시장은 사드 배치 설치 결정 후 죽음의 땅으로 변해가고 있다. 중국 현지에서 한국 화장품 불매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 관광객 수 자체가 감소세를 보이며 국내 매출에도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네이처리퍼블릭 명동 매장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DB)

그렇다 보니 정운호 전 대표가 전량 매각 의사를 밝힌 네이처리퍼블릭 지분(73.88%)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매수자가 등장하지 않고 있다.

다만 네이처리퍼블릭 측은 현재 위기가 장기화 되진 않을 것이란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IPO 역시 적당한 시기가 오면 재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이 회사 관계자는 “상장 추진은 경영 정상화 이후 최적의 시기를 검토해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역내 매장 수익성 악화에 대해서도 “경기 침체 및 사드 여파로 화장품 시장 상황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다”며 “신제품 출시 및 프로모션 진행을 통해 수익성 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중국시장과 관련해선 “중국 현지 반응과 관련 정책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중국 현지 영업망과 유통망을 정비하며 현지화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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