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업계는 ‘흔들’ 반도체업계는 ‘꼿꼿’

중국 정부, 한국 게임기업에 ‘판호’ 발급해주지 않겠다 ‘으름장’

韓 반도체 업계는 ‘무풍지대’…中 자체생산 불가한 IT부품 때문

판교로 게임사 밀집 지역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DB)

[뉴스포스트=선초롱 기자] 최근 한반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중국의 경제보복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산업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에서 국내 전자제품 불매 운동이 확대되고 게임 수입을 금지하는 등 국내 IT업계에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중 간의 외교적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 기업들도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한국 시장 진출을 늦추는 분위기다.

 

게임업계 ‘흔들’

지난 9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중국 최대 게임회사이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위챗 등으로 유명한 ‘텐센트’는 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 예정이었던 마케팅 상품 발표회 행사를 돌연 취소했다. 텐센트 측은 갑작스런 행사 취소 사태에 행사를 주재하는 자사 임원의 개인 사정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8일에는 한 중소 개발사가 중국 게임배급사로부터 중국 국가신문출판광전총국의 판호 발급 불가로 게임 출시가 무산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중국 게임매체 ‘게임독’은 중국 정부가 한국 게임에 대한 신규 ‘판호(인허가)’를 발급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게임업계 분위기가 잔뜩 얼어붙었다.

판호는 게임, 영상, 출판물 등에 대해 중국 정부가 유통 전 단계에 허가해 주는 제도로, 판호를 발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 게임 수입을 금지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얘기다.

물론 이미 판호를 받아 중국에 게임을 수출하는 경우는 문제가 없겠지만 신규로 출시되는 게임의 경우에는 타격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중국 판호 발급을 중단하지는 않아도 판호 심사 기준이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중국 게임사가 이를 악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한다. 판호 발급이 어려워졌다는 이유로 한국 회사에 있는 저작권을 중국 업체로 헐값에 넘기도록 유도하는 등 불리한 계약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판호가 발급되더라도 중국 업체가 이 과정을 비용에 포함시킬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함께 나오고 있다.

그동안 중국의 판호 제도는 중국 게임시장 진출의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로 꼽혀왔다. 심사 기준, 기간 등 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제도이기 때문. 그동안 중국의 판호 제도에 대해 과도한 심사 등의 방법으로 자국 게임사들을 배려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중국 대형 게임사 의존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대형 업체들로 국내 게임사들이 쏠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지 중소 업체들과 협력을 모색해온 국내 중소 게임사들은 판로 자체가 막힐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게임업계 매출 30%가 중국에서 나올 정도로 현재 중국 게임 시장 의존도가 상당한 만큼 사드 보복 조치가 길어지면 피해도 늘어날 수밖에 없어 게임 업체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액토즈소프트 구오 하이빈 대표이사는 “공식적으로 한국 게임을 제한한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서도 “판호(게임 인허가)에 대한 심사 기준이 엄격해진 것은 맞다. 심사 기간도 길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다만 ‘리니지 레드나이츠’, ‘리니지2 레볼루션’ 중국 출시를 각각 준비해온 엔씨소프트와 넷마블게임즈는 아직 별다른 이상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엔씨는 알파게임즈, 넷마블은 텐센트를 통해 판호 발급 절차를 진행 중에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중국의 경제 보복에 국제법적 절차에 따른 대응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우태희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최근 중국 내 일련의 조치는 상호 호혜적인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정신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부당한 조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업계와 긴밀히 공조해 세계무역기구(WTO) 및 한중 FTA 등 국제법적 절차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자업계도 예의주시

중국 환구시보는 지난 1일 “국가 안보는 모든 중국 국민과 연관돼 있고 자동차나 스마트폰 구매를 계획하고 있는 소비자들은 한국 브랜드를 제외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면서 “중국은 삼성과 현대에 가장 큰 시장이며 이들 기업에 대한 제재로 이들 기업은 조만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에 국내 전자업계는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가 스마트폰과 TV 등 전자제품까지 확대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다. 다만 한국산 스마트폰은 이미 중국 토종 기업들에 밀려 중국 시장 내 입지가 낮아져 사드 보복으로 인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중국 스마트폰 사업은 2013년 6250만대 이후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엔 2360만대에 그쳤다. 시장 점유율도 2013년 19.7%에서 지난해 5%로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LG전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LG전자 스마트폰의 2014년 중국 출하량은 60만대에서 매년 20%씩 감소했다. 현재는 중국 시장에서 0.1%의 점유율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LG전자는 중국 시장에 상반기 전략폰 ‘G6’를 출시하지 않을 계획이다. 다만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때문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는 중국의 한국산 의존도가 높아 당장 사드 보복조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세계 D램 시장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무역 보복을 감행할 경우, 중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없는 IT부품소재 등에 대한 수요를 메꾸지 못해 현지 기업이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