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국내 대기업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돌아오면서 몇몇 기업의 '붙박이 사외이사' 재선임을 향한 비판의 눈초리가 매섭다. 동국제강도 '장수 사외이사' 재선임 움직임을 보여 논란의 중심에 섰다. 동국제강은 장세주 회장의 구속에 이어 지난해 장남의 술집난동 사건까지 발생해 곤욕을 치러야 했다. 오너일가의 그릇된 처신으로 회사가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견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사외의사의 재선임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동국제강이 적폐 청산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겠냐고 날을 세웠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DB)

사외이사 취지 무색

사외이사는 경영진, 특히 오너일가로 대변되는 대주주의 독단적인 의사결정과 업무집행을 감독‧견제하는 역학을 하도록 도입된 제도다. 경영진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주주와 회사가 피해를 입지 않도록 '회사로부터 독립적인(이해관계가 없는)자'가 견제하는 것.

그러나 사외이사제가 도입된 지 20년 가까이 지났지만 본연의 취지를 살리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여전히 재계에서는 10년 이상의 '직업이 사외이사'인 경우가 두드러져 본연의 취지를 해친다는 지적이다.

주요 대기업들의 정기 주주총회 안건을 분석·평가하는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CGCG)는 13일 동국제강 사외이사 후보 재선임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CGCG는 의안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승희, 오오키 데츠오 후보의 사외이사 재선임안에 대해 반대를 권고했다. 동국제강은 17일 정기주주총회를 열고 정관일부 사외이사 및 사내이사 선임의 건, 이사 보수 한도 승인의 건 등을 상정할 예정이다.

동국제강의 재선임을 추진 중인 한승희 후보는 현재 삼양인터내셔날 고문으로 재직 중이다. 한승희 후보는 2007년에 사외이사로 처음 선임됐다. 이번에 재선임 될 경우 12년이나 사외이사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일반적으로 사외이사의 재직기간은 9~10년을 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CGCG은 의결권 지침에 따르면 9년 이상 장기간 사외이사로 활동할 경우 지배주주 및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국민연금도 사내이사가 10년 재직하는 것을 반대하는 의결권 지침을 갖췄다.

CGCG는 오오키 데츠오 사외이사 선임의 건에 대해서도 반대 했다. 동국제강의 주주 기업의 임원으로서 사외이사로서의 독립성 및 충실성이 훼손될 수 있어서다.

오오키 테츠오 후보는 동국제강의 지분 14.13%의 지분을 보유한 2대 주주이자 전략적인 제휴관계를 맺고 있는 JFE Holdings의 임원이다. 2013년에 동국제강의 사외이사로 선임되었다.

CGCG는 JFE Holdings 및 특수관계인이 동국제강의 지분을 보유하게 된 이후부터 이들 회사의 임원이 한 명씩 사외이사로 선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략적 제휴관계에 있는 회사에서 파견된 인사들은 사외이사의 필수 요건인 경영진으로부터의 독립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더구나 오오키 테츠오 후보는 이사회 출석률은 2015년 15%, 2016년 14%에 불과하다. CGCG는 이사회 출석률이 75% 미만인 이사들에 대해서는 업무의 충실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고인 물은 썪는다'는 말이 있듯 한 기업에서 10년 넘게 붙박이 하다 보면 경영진과 유착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특히 동국제강처럼 오너리스크를 극복해 나가야할 기업의 경우 사외의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CGCG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지난 몇 년간 동국제강의 오너리스크 사태를 지켜보니 오너에 대한 이사회의 견제 감시 역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사외이사가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장기 재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와 관련 동국제강 관계자는 "주주총회는 주주들의 표결로 의결을 하는 것이라 회사에서 관여할 사안이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

 

오너리스크 악몽 잊었나...견제는 뒷전

동국제강은 창사 이래 60년이 넘도록 '철강 분야' 외길을 걸어온 기업이다. 그러나 2010년 철강경기 침체로 매출이 곤두박질치며 사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누적 적자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2014년 채권단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체결하고 구조조정 등에 나섰다.

이런 상황에서 동국제강은 더 큰 악재에 직면했다. 바로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의 개인비리 사건이다.

장 회장은 지난 2015년 5월 횡령·배임 및 상습도박 등 혐의로 구속돼 2016년 11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장 회장이 2005년 8월부터 빼돌린 비자금은 총 88억5644만원이다. 결과적으로 장 회장이 동국제강에게 약 100억원의 손해를 입혔다는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오너의 구속으로 생긴 경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장남 장선익 동국제강 이사가 등장했다. 본격적인 4세 경영 시대가 막을 올린 것이다.

장 이사는 동국제강의 해외지사에 근무하며 실무경험을 쌓던 도 중 2015년 10월, 한국 본사 발령을 받고 귀국했다. 부친 장 회장이 구속 기소된 지 불과 5개월여 만이다.

그러나 기대를 받았던 장 이사마저 동국제강을 수렁으로 내몬 '오너리스크'의 주인공에 됐다. 이사 직함을 단 지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술집 난동' 사건으로 주요 언론의 1면을 장식한 것이다.

지난해 12월 장 이사는 서울 용산구 한 술집에서 음주 중 물컵을 던져 양주병을 깨는 등 난동을 부려 경찰 조사를 받았다. 장 이사는 공식적인 사과문을 통해 "어떠한 변명을 해도 제 잘못이 분명하다"며 "심적·물리적으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분들께 깊이 사과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 이사는 회사 내에서 본인 거취와 관련된 언급은 없었으며, 현재 이전과 다름없이 회사로 출근해서 담당 업무를 보고있다.

일각에서는 조직 내에서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에 있는 만큼 이번 일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했다.

일예로 비슷한 혐의로 구속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김동선씨는 지난 10일  한화건설 명예를 실추한 것에 대해 사직 의사를 밝히며 '사내 책임'을 졌다.

이와 같이 동국제강은 오너리스크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던 곳이다. 이는 사외이사가 경영진의 전횡을 감시하는 본연의 역할 보다는 대주주에게 끌려가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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