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경배 국장] 동양의 대표적인 정치사상은 왕도정치(王道政治)이다. 덕망 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어두운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는 이 정치철학은 일찍이 맹자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조선조 정조대왕은 덕치, 예치에 의한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했으며 주자(朱子)는 오륜에 바탕을 둔 왕도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여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렇다면 덕망 없는 이가 왕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성혁명(逆成革命)은 이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임금이 부덕하여 민심을 잃으면 다른 유덕자가 천명을 받아 부덕한 왕조를 넘어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도 좋다고 하는 사상. 이 사상을 근거로 이성계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왕도정치 사상은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고려와 조선의 정치체계를 지탱시켜준 이념으로 자리 잡는다. 특히 고려말에 들어온 성리학(性理學)은 조선시대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철학이 된다.
인간에 의해 다스려지는 이 세상이 바로 하늘의 뜻이 펼쳐진 이상 세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성리학은 왕도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연산군이나 광해군을 제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핵심 논리이자 이론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 있어 제 정치세력간의 갈등과 기득권, 정권욕에 의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이론적 토대는 바로 이 성리학이었던 것이다.
역사학자가 아닌 필자가 구구절연한 서언을 역사적 이야기로 장식한 것은 조선조 도학정치를 주장하며 급진적 개혁정치를 펼친 조광조의 정치사상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조광조의 정치사상은 지치주의(至治主義)다.

지치주의란 인간에 의해 다스려지는 세상을 하늘의 뜻이 펼쳐진 이상 세계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지치란 ≪서경≫ 군진편(君陳篇)의 ‘지치형향 감우신명(至治馨香感于神明)’에서 따온 것이다.
잘 다스려진 인간 세계의 향기는 신명(神明)을 감명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지치가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의 뜻이 실현된 이상 사회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실천 운동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이상사회를 실천하는 이를 유학에서는 성인(聖人)이라 하는데 사회 구성원 개인이 각각 수양을 통해 성인이 되면 먼저 성인이 된 사람이 정치적 대표자인 왕이 되어 다른 사람을 깨우침으로써 다른 사람도 성인이 되는 방법을 택해 이상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발생한다. 왕조국가에서 이미 정치적 실천을 담당하고 있는 왕이 성인이 아닐 때 과연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문제다. 조광조는 여기에서 두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째는 현재의 왕이 수양을 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신하들이 왕을 수양하게 해 성인이 되게 하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왕이 수양을 하더라도 성인이 될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왕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조광조는 당시 왕인 중종이 수양을 하면 성인이 될 수 있고 따라서 이상정치의 실현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경연(經筵)등을 통해 중종에게 지성껏 학문을 가르쳤다. 하지만 중종은 끝내 조광조를 사사시키고 만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탄핵으로 대통령직을 상실하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검찰소환조사를 받고 있다. 조광조의 사상에 비유해본다면 성인이 될 자격이 없음을 국민과 헌재가 판단하여 그 자리에서 끌어내린 결과다.
고금을 통틀어도 제왕의 위치에서 강제로 퇴위된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짧지 않은 역사 속에 이승만 전 대통령이 4.19 혁명으로 인해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광화문 촛불시위로 그 지위를 상실하였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있다. ‘권력의 힘은 십년을 못가고, 붉은 꽃의 아름다움은 십일을 못간다’란 말을 명심하여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스스로 성인이 될 자격이 있는지, 국민의 소리를 더욱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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