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ㆍ젊은층 갈등은 여전

세대와 지역, 이념을 초월한 촛불집회

60대 이상이 모여있는 태극기집회

‘극복엔 오래 걸릴 것’…“시간이 답”

지난 17일 다소 쌀쌀한 날씨속에 탑골공원에 모여있는 어르신들 모습.(사진=우승민 기자)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매주 태극기 집회에 참가하는 서모(56)씨는 “집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면 거의 자동으로 20대 딸과 싸우게 된다”며 “정치적인 입장 차이를 떠나 딸의 생각을 듣고 싶은 건데, 탄핵에 반대하면 무조건 ‘수구 꼴통’이라고 매도해 서운하다”고 했다. 대학생 권모(26)씨는 “주말마다 태극기 집회에 함께 나가자는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예 엄마랑 대화를 안 하고 산다”고 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지난해 12월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던 ‘탄핵 정국’이 마무리됐다.

탄핵정국은 마무리 됐지만 국론분열과 세대 간 갈등 양상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서 시작된 의견 대립은 세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현재 대두되고 있는 세대갈등은 단순 견해차를 넘어 특정 연령층 간 서로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세대갈등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촛불집회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로 나눌 수 있다. 촛불집회의 경우 10~50대가 주를 이루고 있고, 태극기 집회 참가자의 경우 60~80대 고령층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처럼 ‘탄핵 불화’는 세대 갈등의 새로운 주제로 떠오르고 있다. 세대별로 탄핵에 대한 시각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뉴스포스트>는 60대 이상의 고령층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서울 종로구 종로에 있는 탑골 공원을 찾았다.

탑골공원 한편에서 두 어르신이 박 전대통령 탄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우승민 기자)

 

태극기 세대의 오해와 진실

지난 11~12일 이틀간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19세 이상 전국 성인 1013명을 대상으로 탄핵 인용 관련 여론조사를 한 결과 20대는 99.4%, 30대는 95%, 40대는 93%가 탄핵 인용이 적절했다고 응답하는 등 대다수가 박 전 대통령 파면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에 비해 50대는 78.7%, 60대는 65.5%만이 박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나 세대 간 인식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줬다.

각종 설문조사 결과 역시 이 같은 세대갈등 현상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60대 이상의 노인들에 대한 인식이 태극기 집회에 대한 편견된 시선으로 굳어지고 있다. 조사결과에 따라 태극기 집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굳어져있는지 지난 17일 오후 4시 60대 이상의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어르신들이 많이 찾는 탑골공원을 방문했다.

탑골공원으로 가기 위해 종로3가역 1번 출구로 나오니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눈에 띄였다. 이들은 매일 탑골공원을 방문하는 듯 지나다니는 노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내일을 기약하기도 했다.

탑골공원 입구로 들어서자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이 먼저 보였다. 탑골공원 안은 할아버지들의 비율이 90%이상 차치하고 있었고, 할머니들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간간히 젊은 학생들의 모습도 보였다. 기자는 대통령이 탄핵 된 시기에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 들어보니 그들은 정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야기일거라 짐작했지만 오히려 젊은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탑골공원 할아버지들은 관심을 보였다. “무슨 사진을 찍느냐?”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느냐?” “내 얼굴은 나오게 하지 말아 달라” 등의 이야기를 하시면서 관심을 보였다.

"젊은이들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있다"면서 흔쾌히 사진촬영에 임해준 어르신. (사진=우승민 기자)

탑골공원 중심에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할아버지께 먼저 다가갔다. 기자의 질문에 이덕용(78)씨는 “내가 70살이 넘었지만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입장으로 촛불집회를 다녀왔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당연히 태극기 측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는 하더라”며 “나는 촛불 집회를 가서 태극기가 아닌 촛불을 들다가 왔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들 모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요즘 젊은이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탑골공원에서 만난 황모(87) 할아버지가 답했다. 황씨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아쉽게 촛불집회를 가보지는 못했지만 뉴스를 통해서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흐뭇했다”며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분명하게 말해야한다”고 답했다.

이어 “대통령은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다.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가면서 했던 ‘진실은 밝혀진다’라는 말은 절대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취재를 하는 동안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고령층도 있었다. 탑골공원 할아버지들과 인터뷰를 하는 중 ‘탄핵인용’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소리를 치고 화를 내며 “나는 젊은 세대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발언을 하기도 했다.

 

세대를 초월한 촛불집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을 이끈 것은 광장의 촛불 민심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쓴 촛불시민들의 승리였다. ‘이게 나라냐’며 국정농단과 각종 부정부패로 망가진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추운 겨울에도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항쟁은 지난해 10월 29일부터 133일간 지속되며 연인원 1600만 명에 달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촛불시민들은 주춤거리던 국회의원들을 움직여 압도적인 표차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촛불시민들은 평화롭고 민주적이었다. 분노를 풍자로 승화시켰고 시민들 스스로 국민주권을 선언하며 희망찬 대한민국 건설에 나섰다.

대통령 탄핵을 위해 추운 겨울에도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들은 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초월해 집회에 참여했다. 광장에 나온 촛불 시민들은 세대와 지역, 이념을 초월했다.

촛불집회를 위해 직장인은 물론 가정주부, 대학생, 청소년, 50~60대 중장년층들도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념과 연령, 종교, 직업 등을 초월해 다양한 계층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심지어 오랫동안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 성향의 시민들도 함께했다.

이처럼 대통령 탄핵문제로 세대갈등이 극명하게 표출된 가운데 60대 이상의 고령층도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모습을 통해 탄핵 반대 구성원이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고만 지칭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3개월간 이어져 온 탄핵 정국은 이념 대립 뿐 아니라 세대 갈등을 드러냈다. 촛불집회엔 ‘2040’이 주축을 이뤘고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태극기집회엔 60대 이상이 모여 탄핵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파면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대립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지난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는 당일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 측은 자택 주변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모여 “탄핵 불복”과 “탄핵 무효”등을 외쳤다.

서울 중앙지검 앞에서 박 전대통령 옹호 시위를 벌이고 있는 지지자들. (사진=우승민 기자)

이날의 풍경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세대 갈등’의 대표적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앞에는 “박 전 대통령 구속하라”를 외치는 ‘촛불 집회’ 참가자들과 “탄핵 무효”를 외치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은 서로 다른 구호를 외쳤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지지자 측은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취재를 하고 있는 취재진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서슴치 않았다. “젊은이들이 어렵게 살아봤어야지 세상을 알지” “기자들은 물러나라” 고 말하며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대 차는 당연히 있다. 차이가 있어야 사회에 활력이 생긴다”며 “갈등은 경계하되 세대 간 차이를 인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성균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과거 50대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했다가 최근 이들이 경기 불황을 겪으면서 경제적 지위가 불안정해지고 교육과 자녀의 결혼 및 취업, 재취업 부분에서 위기를 겪다보니 사회비판적 의식으로 돌아서면서 상대적으로 60대가 고립되는 분위기”라고 부연했다.

50대의 경우 경제적 문제 등 이익적 측면에서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다가 이를 철회했지만 60대 이상의 경우 한국전쟁과 박정희 대통령 시기 산업화를 겪은 자신의 생애 경험을 박근혜 정권에 투영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감정적 애착은 자신과 의견이 다른 이들에 대해 ‘좌파’나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레드 콤플렉스로 발현됐다.

이어 “이번에 드러난 세대갈등을 극복하는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양쪽의 극단적인 집단 사이에 있는 50~60%의 중도적 시민들이 사회 중심을 잡으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고 이들의 노력이 통합 속도를 달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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