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이번 역은 선릉, 선릉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오늘도 직장인 최모씨는 무심코 선릉역을 지나친다. 강남 빌딩숲에 이런 대규모 왕릉이 남아있다니 신기할 따름이다. 땅값이 얼마나 될지 셈도 해보고, 묻혀 있는 왕이 누구인지 학창시절에 배운 기억도 더듬어 본다. 회사에서 멀지 않으니 한번 가봐야겠다 결심하지만 뒤돌아서면 금방 또 까마귀 고기를 먹는다. 바쁜 일상 속 대부분 사람들의 무관심에 방치된 선릉은 강남 위 외딴섬이 된 듯 오늘도 고요하다.

 

선릉은 능역에 정자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형태로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성종, 오른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사진=박은미 기자)

유동인구 11만명 중 99% 그냥 지나쳐

선릉(선정릉)역 주변을 스쳐 가는 사람은 하루 50만 여명에 이른다. 서울 인구(2016년 현재 1020만4057명) 20명 중 1명은 매일 이곳을 지나가는 셈이다.

최근 발표된 ‘2016 서울 대중교통 이용 현황’ 조사에 따르면 하루 11만여 명이 선릉역을 이용했다. 선릉역은 서울시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 10위권 내로 꼽힌다. 그러나 이들 중 선릉이 누구의 묘인지 알고 있거나, 직접 능을 둘러본 이가 얼마나 될까.

교통의 요지에 자리 잡고 있는데도 선릉의 관람객은 일평균 1500여명 수준이다. 철책으로 담이 처져있어 안이 잘 들여다보이지 않고 평지가 아닌 구릉 지대라 효용 극대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다. 싸이의 ‘말춤’ 덕분에 유명해진 강남 한복판에 위치해 접근성은 좋지만 강남을 찾는 수많은 청춘들과 외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을지는 의문이다.

지난 30일 기자는 선릉을 찾았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 10번 출구로 나와 200m 가량 직진 후 우회전해 100m 가량 들어가면 매표소가 보인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만 거리에 안내 푯말이 없어 외국인 관광객이 찾아오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빌딩에 둘러 쌓인 길을 걷다보면 ‘유적지가 있긴 있나’는 의구심이 자꾸 생긴다.

 

빌딩숲을 가로질러 도착한 선릉 매표소의 이국적인 풍광이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탄 듯 한 묘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사진=박은미 기자)

빌딩숲을 가로질러 도착한 이국적인 풍광이 조선시대로 타임머신을 탄 듯 한 묘한 감정을 끄집어낸다. 고층 빌딩과 주변을 오가는 외제차로 둘러쌓인 유적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관람 요금은 1000원이며 매월 마지막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날」은 무료관람이다. “카드, 현금 다 괜찮아요”라며 웃는 매표소 직원의 친절함에 즐거운 마음으로 ‘1000원의 관광’을 시작했다.

매표소 직원은 “하루에 약 1500명 정도 방문하는데 대부분 주민과 직장인이에요”며 “요즘은 미세 먼지가 심해 관람객이 줄었지만 날씨가 좋아지는 4-5월이 되면 일평균 3천명 정도로 증가합니다”라고 설명했다.

관람객의 피크 타임은 점심시간이다. 12시가 지나면 직장인들이 도심속 작은 힐링 공간을 찾아 선릉으로 물밑듯이 들어온다고. 기자가 도착한 시간은 느즈막한 오후 3시께라 한산한 분위기였다. 대부분 관광객들은 운동복 차림의 인근 주민들이었다. 벤치에 않아 도심 속 자연을 즐기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주를 이뤘다.

선릉을 자주 찾는다는 주민은 최모씨는 “강남의 땅에 숲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다는 것이 기적이에요”며 “미세먼지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지만 적어도 이곳 만큼은 공기가 좋은거 같아요”고 말했다.

 

선릉을 둘러보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들. (사진=박은미 기자)

선릉이 인근 주민과 직장인들의 힐링 공간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하다. 다만 한시간 가량 선릉을 둘러보는 동안 한무리의 외국인 관광객을 보기는 했으나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아쉬운 수준이었다.

출입문의 위치와 동선도 불편했다. 석촌호수에 버금가는 면적이지만 입구는 하나기 때문에 관람 시간이 한시간 정도 걸린다. 중간에 급할 일이 생겨도 매표소까지 돌아 나와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한다.

선릉 관리소 관계자도 이러한 불편함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다.

관계자는 “저희들도 불편해요”라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이어 “비상시를 대비한 소방문은 있지만 관람객에게 늘 개방되는 입구는 정문 하나에요“라며 “후문이나 다른 입구 신설은 관리 비용이 만만치 않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라고 말했다. 문화유산 관리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이익창출 보다는 공공성에 역점을 두고 있지만 금전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정릉은 1506년 연산군이 폐위되고 왕으로 추대된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능이다. (사진=박은미 기자)

아픈 역사를 간직한 빈 무덤

선릉은 성종과 성종의 계비 정현왕후의 능, 정릉은 중종의 능이다.

주민들은 선릉·정릉을 ‘삼릉공원’ 이라고도 부른다. 엄연히 말하면 선릉과 정릉 두개의 능뿐인데 왜 삼릉공원으로 불릴까? 그것은 선릉이 ‘동원이강릉’ 이라는 특이한 형식의 왕릉이기 때문이다. 선능은 능역에 정자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형태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이 성종, 오른쪽 언덕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즉, 거리가 약간 떨어진 언덕 위에 왕과 왕비의 봉분이 따로 있는 것이다.

선능의 주인인 성종은 조선왕조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체제를 완성한 군주다. 모든 제도와 문물을 완성했기에 이룰 ‘성’자를 써서 성종(成宗)이라고 불린다.

성종의 첫 번째 왕비는 공혜왕후로 1474년 아들 없이 죽고 1476년 숙의 윤씨를 왕비로 삼았으나 투기가 심하다는 이유로 1479년 폐위된다. 숙의 윤씨가 바로 연산군의 생모다. 이어 1480년 왕비로 책봉된 정현왕후가 바로 중종의 모친이다.

정릉의 주인은 중종(中宗)은 조선 제11대 왕이다. 1506년 연산군이 폐위된 뒤 왕으로 추대되었다. 중종은 연산군의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고 새로운 개혁정치를 표방한 조광조를 내세워 왕도정치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소격서 폐지, 위훈삭제 등 급진적인 정책이 기존 훈구세력의 큰 반발을 불러와 기묘사화(훈구파로 인해 조광조·김정·김식 등 사림이 숙청당한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선릉과 정릉은 역사의 아픈 흔적이 새겨져 있다. 1952년 왜란의 소용독이 속에서 왜군에 의해 왕릉이 파헤쳐졌다. 이 과정에서 재궁(왕과 왕비의 관)이 불탔고 정자각에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를 지켜본 신하들 또한 차마 말할 수 없이 애통해했다고.

선릉 관리소 관계자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들에 의해 도굴 당했습니다”며 “선조 26년인 1593년 경기좌도 관찰사 성영의 보고를 보면 ‘옷은 없어지고 옥체(玉體)가 구덩이에 놓여 있었다’고 적혀있죠“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금과 왕비의 시신이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시신 한 구를 발견했는데, 선대 임금의 것이라 확신을 할 수는 없습니다”고 애석함을 드러냈다.

일제 강점기에도 수난이 이어졌다. 왕릉은 일반인이 개간을 할 수 없는 지역임에도 조선총독부가 식량증산이라는 명목으로 두 무덤 사이 구릉 지대까지 개간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한때 능의 영역 안에 사유농지가 생기기도 했다. 주택에 비유하자면 담장과 마당까지 남의 땅이 되어버리고 안채 일부만 남아있는 셈이다. 박정희 정권도 능역의 외곽 부분을 민간인에게 팔기도 했다.

관계자는 “왜란과 일제 강점기, 그리고 도심 개발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나마 보존되어 남아 있는 것이 다행입니다”며 “그런 측면에서 500년 세월의 풍상을 잘 버티고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문화재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 후손에게 물려줘야 한지 않을까요“고 당부했다.

우여곡절을을 겪으며 빈 무덤으로 남게 된 왕릉. 전쟁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서울 선릉과 정릉의 기구한 사연이다.

 

선릉과 정릉은 2009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지하철 2호선 선릉역의 역사 명칭은 선릉에서 유래하였다. (사진=박은미 기자)

세계문화유산 타이틀, 활용책 모색을

선릉을 두고 너무 아까운 땅과 유적을 보존만 하고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선릉의 면적은 석촌호수와 버금가는 198,813㎡이다. 모든 기업들이 희망하는 테헤란로 중심부에 위치해 있다. 유동인구가 보장되는 곳인 만큼 주변 지역과 연계 개발해 서울을 대표하는 파크형 유적지로 개발하는 등 활용도 제고가 시급하다.

관람객을 대상으로 정기해설 프로그램을 매일 운영하고는 있으나 역사교육관이나 인공호수, 문화시설 등 다양한 탐방 콘텐츠 조성도 필요해 보인다. 예산이 부족하다면 민간이 짓고 정부가 이를 임대해서 쓰는 BTL(완공 후 임대조건)방법 등으로 운영할 수도 있다.

2009년 6월 선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우리 문화사의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선릉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많은 외국인이 찾을 수 있도록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서울에 위치한 세계문화유산들을 한데 묶어 교통편의성을 높이고 패키지 형태로 관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란 인류 전체를 위해 보호되어야 할 현저한 보편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다.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중국의 진시황릉과 만리장성, 인도의 아잔타 석굴, 이탈리아의 피사의 사탑, 바티칸시티 등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돼 있다. 선릉은 이런 유적지와 견줘 동일한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가까운 곳에 보물을 두고도 놓치고 있었다. 공기나 물처럼 당연하듯 생각하며 그것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고마운 것인지 모르고 지냈다.

전 세계가 함께 가꾸고 보존해야할 찬란한 문화유산인 선릉. 자랑스런 민족문화의 보존과 전승이라는 큰 틀에서 선릉의 활용책을 모색해야 한다. 선릉의 연관 검색어로 ‘맛집’이나 ‘병원’이 아닌 ‘세계문화유산’이 뜨는 날을 누워계신 임금님도 바라고 계실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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