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시험 준비생들로 북적...공시생, 공딩 등 신조어도 등장

해고없는 공무원, 지원자 역대최다

차별 없는 공평한 시험 결과

공시생 3명 중 2명은 ‘20대’

직장인도 공시생으로 진로유턴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 A공무원 학원에 다니는 최모씨(25·여)의 한숨은 깊었다. 4월 8일 국가직 시험을 앞두고 있는 최씨는 학원 계단 한편에 앉아 편의점에서 사온 음식을 먹으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최씨는 “취업이 되지 않아서 공무원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취업을 했더니 월급은 턱없이 적고 10시간이 넘도록 일을 했지만 심각한 남초현상으로 그만두게 됐다”며 “삶의 질을 최소한으로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무원이라 생각해서 노량진으로 오게 됐다”고 털어놨다.


# 이번이 두 번째 시험인 이모씨(28·남)씨는 졸업을 한 뒤 공무원 공부를 바로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지낸지 2년째다. “1년이면 합격할 줄 알았다” 그는 첫 시험에서 생각보다 높은 점수가 나왔고, 1년이면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고 1점 차이로 희비가 엇갈렸다. 이씨는 “가끔 합격에 대해서 불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취업준비를 무작정 하는 것 보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공무원 공부가 공평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은 학원 자습실에서 얼마 남지 않은 국가직 시험 공부를 하고 있다. (사진=우승민기자)

경기 불황에 기업의 채용규모는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이다. 이 좁은 취업문을 뚫기보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으로 발걸음을 돌리는 취업 준비생들이 늘고 있다. 늘어나는 지원자들로 노량진에 위치한 공무원 학원들의 매출은 매년 상승하고 있다. 심해지는 취업난으로 인해 공무원 수업을 듣고자 수강등록을 하는 학생들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청년들이 ‘꿈의 직장인’ 공직에 인생을 거는 주원인은 취업난이다. 공무원은 해고 걱정 없이 정년을 채울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반면 민간 기업은 언제든지 내보낼 수 있는 인턴이나 비정규직 비중을 늘리고 있고, 장기 불황으로 기업 생존이 불투명해져 정규직도 불안한 상황이다. 정규직도 불안한 사회에서 공무원만큼 안정적인 직업이 없기 때문에 매년 지원자는 늘어나고 있다. 오는 4월 8일에 치르게 될 국가직 9급 공채 역시 역대 최다 지원자가 몰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이번 주에 치를 국가직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공시생들의 현장, 노량진을 찾았다.

노량진역을 나오면 바로 볼 수 있는 고시학원과 백팩을 매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육교를 올라가는 학생들의 모습 (사진=우승민기자)

“이대로는 큰일 나겠다” 퇴사 후 노량진 입성

한국고용정보원의 ‘청년층 취업준비자 현황과 특성’ 보고서에 따르면 20~24세의 47.9%, 25~29세의 53.9%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취준생 절반은 공시족이라는 것이다.

또한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와 대학내일20대연구소, 청년유니온의 공동 연구보고서 ‘공시 준비 청년층 현황 및 특성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들이 ‘공시행(行)’을 선택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기회로서 거의 유일하다. ▲차별, 성희롱, 경직된 분위기, 불필요한 야근 및 노동강도 등 불합리한 기업문화를 피할 수 있다. ▲일정한 삶의 질 유지와 최소한의 사회적 인정이 가능한 신분이라는 점이다. 이에 따라 취준생에 이어 직장인, 고등학생 등이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간다.

노량진 거리 가운데 공무원 학원들과 고시텔, pc방, 음식점 등이 한 건물에 밀집해있다. (사진=우승민기자)

노량진은 지하철역 입구부터 공시행을 택한 학생들로 가득 했고, 건물들은 공무원 학원 간판을 달고 있었다. 공무원학원 안에서는 상담을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학생들,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모습, 자습실에서 공부에 매진하는 수 백 명의 책장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길에는 대부분 학생들이 몸보다 큰 가방과 손에는 책을 2~3권씩 들고 걸음을 재촉했다. 공부를 하느라 앞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인채 걸어가는 이들도 보였다.

공시생 황모씨(33·남)는 “퇴사를 결심하고 공무원 공부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빨리 합격을 하려면 길을 걸을 때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항상 길을 걸어 다닐 때면 단어를 외웠다. 하지만 오토바이와 접촉사고가 난 이후에는 길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황씨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공무원 준비를 한 지 2년이 되어간다. 대학 졸업 전 대기업에서 인턴을 한 뒤 정규직으로 채용 돼 3년이 넘도록 일을 했다. 하지만 매일 야근과 어려운 승진 등으로 대기업은 안정된 삶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퇴사를 결심했다. 황씨는 “대부분 직장을 퇴사하거나 이직을 하는 이유는 월급이 올라가는 경우와 조금 더 큰 회사를 가거나, 뒤늦게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이다”라며 “하지만 요즘 대기업도 일찍부터 명예퇴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주위에서 공무원 준비하는 동료들도 볼 수 있다. 그 모습을 보고 뒤늦게 공무원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B학원에서 만난 문모씨(31·남)가 공시생이 된 이유도 비슷했다. 문씨는 “토익, 학점, 자격증, 공모전, 인턴 등 해보지 않은 것이 없다”며 “하지만 결국 소기업을 갔고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 퇴사를 결심하고 노량진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수업을 들으러 가기 위해 바쁘게 강의실로 향하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 (사진=우승민기자)

역대 최다 지원자, 취업난에 ‘공딩’까지···

이미 취업을 했다가 퇴사하고 다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2016년 9급 공무원 합격자 중 30세 이상 합격자는 29.6%로, 이들 중 상당수가 ‘진로유턴족’이다. 이처럼 취업준비생 뿐 아니라 적은 임금과 고용불안은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도 불안에 떨다가 퇴사 후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 학원으로 들어가는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2017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의 접수 인원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인사혁신처는 “2017년도 국가공무원 9급 공채 시험 응시원서 접수를 마감한 결과, 4910명 선발에 역대 최대치인 22만 8036명이 지원해 46.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올해 선발 예정 인원은 지난해 4120명보다 790명 증가했고, 접수 인원은 지난해보다 6515명 증가했다.

증가한 지원자에 대해 A공무원 학원에 다니는 최씨는 “올해 공무원 시험이 역대 최다 지원자들이 몰렸다는 기사를 봤다. 기사를 보면서 너무 속상했다”며 “아마 공무원이 꿈이라서 시작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각자 꿈이 있는데 여건이 되지 않아서 취업이 힘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내몰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너무 속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점심을 먹기 위해 고시식당 앞에서 책을 들고 한줄로 서 있는 공시생들의 모습 (사진=우승민기자)

이렇듯 취업이 힘든 현실을 일찍 깨닫고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공무원을 준비하는 고등학생들도 늘고 있다. 공무원 시험은 학력이나 경력 제한이 없기 때문에 일찍부터 공무원에 눈을 돌리는 학생들이 있는 것이다. 또한 고등학생들이 꼽은 인기 직업 1위는 공무원인데다 공무원 준비를 하는 고등학생을 가리켜 ‘공딩’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9급 공채 필기에 합격한 18∼20세는 26명, 21∼22세는 201명이었다. ‘공딩’이 전체 합격자의 4.1%를 차지했다.

‘공딩’ 김모씨(18·여)는 고등학교 생활과 공무원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김씨는 “원래 꿈은 PD이다. 하지만 누구나 학비만 있으면 다 가는 대학교에서 돈을 낭비하면서 대학교 졸업 후 취업준비에 전전긍긍하고 싶지 않았다”며 “친구들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만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수업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기 때문에 이 시기가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저처럼 요즘은 고등학생일 때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보면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친구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A 공무원 학원 관계자는 “예전에는 취업준비를 하다가 오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요즘 고등학생들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고등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기 바빠서 취업은 크게 신경 쓸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을 직시라고 어린나이에 안정적인 공무원으로 선택해 사회로 나가려는 학생들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다”고 전했다.

또다른 공무원 학원 관계자는 “노량진은 수험생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항상 긴장상태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만큼 옆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여유를 가질 상황이 주어지지 않는 게 사실이다”며 “취업이 워낙 어렵다 보니 공무원 합격만 하면 되는 수험생들은 원하는 직군보다 많이 뽑는 9급 일반행정직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올 4월 8일 필기시험을 시행하는 국가공무원 9급 공채엔 총 22만8368명이 접수했고, 응시생들 3명 중 2명(64%)은 20대다. 14만6095명의 청년이 9급 공무원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주원 경제연구실장은 “공시생이 증가하게 된 근본 원인은 경제 내 ‘질 좋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규제 완화, 신규 일자리에 대한 세제 혜택 등을 통해 경제의 일자리 창출력 회복에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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