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 무죄 전략, 사면 노린 정치적 대응?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서울중앙지법원에 들어서는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최병춘 기자)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헌정사상 첫 대통령 파면에 이어 법정 구속까지 이어진 비극에 대해 줄곧 이어져온 물음이다. 하지만 법정구속되 앞으로 유무죄를 가르고 형량을 따져야할 시점에서 부인으로 일관한 박 전 대통령의 대응이 적절했느냐가 화두가 되고 있다.

검찰단계에서의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마무리됐다. 재판대에서 치열한 법리싸움만 남았다. 재판과정에서 유무죄 뿐 아니라 형량까지 고려된 접전이 예상된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지검장)는 지난 12일 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12시간에 걸쳐 기소 전 마지막 옥중 조사를 마쳤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모두 5차례가 진행됐다. 수사를 마친 검찰은 오는 19일 구속기간이 만료하는 박 전 대통령 기소 시점을 오는 17일께로 점치고 있다.

檢 5차례 옥중조사, 뇌물죄 수사 주력

검찰은 경호 문제 등을 고려해 서울구치소를 방문하는 이른바 ‘옥중조사’ 방식으로 하루걸러 하루 조사를 실시하는 등 빠르게 수사를 진행했다.

검찰의 조사는 가장 무거운 형량인 ‘뇌물죄’ 입증에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삼성과 관련된 433억원(실수수액 298억원) 상당 뇌물수수,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 작성 및 집행 주도 과정서 직권남용,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 모두 13가지 혐의를 받고 있다. 4차를 제외한 모든 조사를 담당했던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한웅재 부장검사(47·사법연수원 28기)는 박 전 대통령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운영 과정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집중 조사했다.

4차 조사에 나섰던 특수1부 이원석 부장검사(48·27기)는 ‘최순실-박 전 대통령-삼성’으로 이어지는 뇌물죄 연결 고리,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은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해 최순실씨의 테블릿PC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첫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연설이나 홍보 등 일부 최씨의 도움을 받았다’고 인정한 것을 제외하면 특검이나 검찰이 제기한 혐의를 단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다.

안종법 전 수석의 수첩에 적힌 내용을 두고 “다른 사람에게 듣고 적은 내용 같다”는 입장을 보이는 등 정호성 전 비서관의 통화녹취, 관련자들의 진술 등에 대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입을 모아 평가한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중 강 판사가 말한 ‘주요혐의’는 뇌물죄를 일컫는 것으로 풀이된다. 뇌물죄가 소명됐다는 것이 유죄를 확정하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를 의심해 볼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인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안종범 수첩 등 객관적인 증거 앞에서도 부인 전략을 일관하는 태도가 앞으로 법정싸움에서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일부 범행사실을 인정하고 차라리 법리적으로 다투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구속 이후에도 거듭되는 부인 전략이 무죄로 이어지기보다는 박 전 대통령의 형량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朴, 일관된 혐의 부인...좌충수 되나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입장에는 크게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4차 조사를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은 유영하, 채명성 변호사를 제외한 본인의 변호인단을 전격 해임하고 새로 변호인단을 꾸리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법리다툼을 주장한 일부 변호인이 해임된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이 형량을 다투는 치열한 법리싸움 대신 무죄를 주장하는 정치적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자신의 지지층에 명분을 공고히 하는 동시에 차기 정권에서의 사면까지 고려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통합’이 주요한 운영 이슈로 제기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차기 정권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면은 외면하기 힘든 주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또한 상황이 녹록치 않다. 대권 주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데다 박 전 대통령이 죄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형이 확정될 경우 차기 정권에서 사면의 명분이 될 ‘국민의 동의’를 얻기가 더욱 쉽지 않을 수 있다.

여기에 무죄 주장으로 재판이 길어지게 되면 사면을 꺼내들 시점도 동시에 길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이제 와서 일부라도 인정하게 되면 지금까지 펼쳐온 논리가 모조리 무너질 수 있어 이제와 돌이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같은 딜레마는 박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이번 국정농단 핵심 인물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첫 재판을 치룬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검찰 재소환 조사를 받은 우병우 전 민정수석까지 혐의를 부인하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들 또한 검찰과 특검이 확보한 진술, 증거와 정황에 맞서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뇌물죄 등 혐의를 입증하기 어려운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은 변수가 될 수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최씨와의 경제공동체론이 입증되지 않으면 중형은 면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지금까지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진술과 증거, 정황이 절대 이들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치열한 법리싸움으로 진입한 현 상황에서 이들의 지닌 딜레마가 승리로 이끌지 파국으로 이끌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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