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기자가 결혼을 앞두고 있던 2007년 한 눈에 들어오는 CF가 있었다. 27살인 한 여자(수정 씨)가 남자친구를 부모님께 소개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하는 내용이다. 수정 씨가 “집에 데려가는 건 선배가 처음이야”라고 말하자 남자친구는 “근데 어디야”라고 묻는다. “저 집이야” 수정 씨의 손 끝 너머로 아파트가 보이고, 외벽에는 래미안의 로고가 밝게 빛나고 있다. 자랑스러움이 가득한 수정씨의 표정, 다음에 뜨는 문구가 가관이다 “수정 씨 집은 래미안입니다”

2008년 등장한 래미안의 ‘동창생 편’ CF는 더 씁쓸했다. 오랜만에 여고시절 동창생을 만난 한 여성(윤재 씨). 윤재 씨는 전업주부지만 동창생은 성공한 직장인이다. 차장이 된 동창생은 자신의 차로 윤지 씨와 딸을 집까지 바래다준다. 윤재씨는 “차장이 되어 좋은 차를 끌고 다니네”라며 부러워한다. 그러나 윤재씨의 집인 래미안 아파트에 도착하자 동창은 “니가 더 대단한데”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윤재씨는 뿌듯해 한다. 왜냐면 윤재씨의 집도 래미안이니까.

당시 이 광고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다. 집에 남자친구를 초대하려면,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최소한 래미안 정도에는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삼성물산 뿐 아니라 다른 건설사의 광고도 비슷했다. 8년간 이영애를 전속모델로 내세웠던 GS건설의 자이 광고는 ‘품격’을 , 대우건설의 푸르지오는 ‘프리미엄’ 카피를 전면 내새웠다.

사촌이 땅을 사는 배가 아픈 인간의 질투심을 제대로 자극하는 이런 광고가 결과적으로 대단히 성공했을지는 모르겠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 것을 부러움의 대상 혹은 성공의 기준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브랜드 아파트에 살지 못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만 했다. 가뜩이나 양극화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상황에서  ‘특별함’을 내세워 박탈감을 자극하는 광고까지 난무하자 절망감은 더해졌다. 못마땅한 광고라는 여론에 따라 건설사들도 ‘특별함’에서 ‘친황경’, ‘웰빙’, ‘가족’ 등의 이야기로 마케팅을 변경하고는 있으나 여전히 ‘남보다 더 특별한 곳에 사세요’ 라는 홍보 문구는 기본으로 걸려있다.

더욱 문제는 양극화를 자극하는 건설사의 이런 마케팅이 집값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명 ‘이름값’이다.

실제로 같은 지역의 아파트라도 브랜드에 따라 시세 차이가 수억씩 난다. 최근 컨소시엄 형태로 공급된 단지들이 늘어남에 따라 아파트 브랜드 결정을 두고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입주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참여 건설사의 브랜드 중 가장 고급진 이미지의 브랜드를 원하지만 건설사들은 그에 따른 합당한 비용을 요구한다. 건축자재나 땅값 보다도 브랜드 가치가 아파트 가격을 좌지우지 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프리미엄 브랜드 이름이 들어가면 분양가가 치솟는 이러한 현상은 특히 강남에서 더욱 심하다. 강남 브랜드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 된 것은 건설사들의 프미리엄 마케팅이 나은 한국사회의 그늘인 셈이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의 건설사들은 “우리가 지은 건물이니 특별하다”고 우쭐대며 아파트 외벽에 브랜드 이름을 박아 박탈감을 조장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나라 아파트 외벽에는 건설회사의 브랜드가 버젓이 걸려있다. 건설사의 브랜드를 국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아파트값과 브랜드 가치를 올려 그들의 이익만을 부추기기 위함이다.

결국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치솟는 집값에 올해도 브랜드 아파트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이름값 하는 아파트들은 공실로 덩그라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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