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 전 관훈클럽 총무/칼럼니스트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구월환] 19대 대선이 뜨거워지고 있다. 누가 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여론조사는 민심의 실상과는 거리가 있다. 지나고 보면 많이 틀린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궁금증과 조바심을 덜어주는 효과는 있다.
또 선거가 경마장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오늘은 누가 1등인가, 나의 말(후보)는 몇 등인가 지켜보는 것도 재미는 있다. 언론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경마저널리즘이라고 부른다. 재미는 있지만 언론의 대선보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여기에 몰두하게 되면 유권자는 주권자로서의 정치 참여자가 아니라 한낱 구경꾼으로 밀려나기 쉽다는 것이다.
요즘 신문 방송에서도 매번 달라지는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하기에 바쁘다. 호남민심 TK민심 충청민심, 수도권표심 운운하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고 보수와 진보의 표심이 어디로 쏠린다는 등 흡사 스포츠 경기를 중계방송 하듯이 읊어대기에 바쁘다.

유권자들의 시선이 경마식 선거중계에 꽂혀있는 사이에 정작 중요한 문제는 수박겉핥기로 스쳐 지나간다. 저 후보가 되면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도대체 국민소득은 얼마나 높아질 것인지, 세금은 얼마나 더 내게 될 것인지, 수천 조에 달하는 나라빚 가계빚은 어떻게 할 것인지, 교육은? 보건은? 환경은? 범죄는?..... 산적한 현안들이 가득한데 천금같은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번 선거는 사상 유례 없는 단기선거라서 후보자 토론이 매우 중요하다. 대선토론은 사실 후보자들의 자질과 정책 등 모든 것을 파악하는 데 가장 좋은 수단이다. 또 대중동원과 돈 선거를 피할 수 있어 깨끗한 선거풍토 조성에도 기여도가 크다. 문제는 얼마나 깊이 있는 토론이 되느냐에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선거토론은 문제가 많다. 대선 토론하면 떠오르는 나라가 미국이다. 두 명의 유력후보가 나와 자웅을 겨룬다. 흥미도 진진하고 후보선택에도 결정적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번 한국대선처럼 5명이나 나와 난타전을 벌이는 토론은 효과가 현저히 떨어진다. 한마디로 ‘될 후보’끼리 붙어야 하는데 ‘안 될 후보’들 까지 나오게 되면 후보선택에 혼란을 준다.

첫 번째 5자토론에서는 지지율 꼴찌들이 제일 잘했다는 평을 들었다. 대개의 유권자들은 지지율 1,2등인 양강(兩强)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싶은데 4등 5등짜리가 토론에서는 우등을 하니 헷갈린다. 선거판세가 양강구도라면 양강이 나와서 붙는 게 순리다. 같은 대선후보라는 점에서 다 같이 취급해야 한다는 공정성 문제도 제기할 수 있지만 현실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0년 케네디-닉슨 TV토론때 방송이용에 관한 동등시간 동등기회의 원칙을 중지시켰다. 모든 후보에게 같은 시간을 허용하면 TV토론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고 토론의 실익도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대선에 출마했던 14명의 다른 후보들은 제외시켰다.
동등기회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번 대선도 15명의 등록후보들이 토론에 나와야 한다. 이들이 모두 나온다면 토론 운영 자체가 어려울 것이고 소득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신 군소후보들만의 자리를 만드는 것은 고려해야 할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선토론 때도 토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다. 당시에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양강구도로 접전을 벌였는데 지지율이 몇%밖에 안 되는 제3의 후보가 끼어들어 3자 토론이 됐다.
미국에서는 공화-민주 양당 후보 외에 지지율 15% 이상의 후보가 있으면 토론에 참여시키는 것이 관례다. 이러 기준에 따라 무소속의 로스 페로가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부시후보 토론에 낀 일이 있다.
따라서 미국식으로 한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의 맞장토론이 이뤄져야 한다.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TV토론을 주관하는 방송사들이 밝혀야 한다. 그들의 침묵, 그 이유가 알고 싶다.

구월환(丘月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전 연합통신 정치부장, 영국특파원, 논설위원, 상무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 주필
전 관훈클럽 총무
전 한국 신문방송 편집인협회 이사
전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전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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