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혀지는 문-안 구도, 호남표심 향배는?

(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

[뉴스포스트=설석용 기자]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야대야’ 경합구도는 승기를 눈앞에 놓고 벌이고 있는 최대 접전으로 꼽히고 있다. 이 둘은 지난 18대 대선에 출마해 선거 직전 단일화를 이뤘던 정치적 동맹 사이에서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앙숙이 돼 버린 상태다.

5개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가 모두 선출된 이후 안 후보의 가파른 상승세로 ‘문-안 양강구도’가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사실상 이들이 전면전으로 맞붙었던 건 지난 20대 총선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을 탈당한 뒤 국민의당을 창당해 총선에 참가했던 안 후보는 진보텃밭인 호남진영을 석권하는 쾌거를 이뤘고, 문 후보는 수모를 겪은 바 있다.

당시 문 후보의 ‘호남 홀대론’이 불거지면서 호남민들은 국민의당을 선택했다. 그 후 이들은 다시 19대 대선정국 최대 라이벌전을 그리며 ‘호남 2차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치적 명운을 걸고 벌이는 이들의 마지막 승부, 호남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文과 安의 두 번째 ‘대권도전’
호남發 자존심 대결, 승자는
2030은 文을, 5060은 安으로
호남 수성이냐, 재탈환이냐?

 

공식일정 첫 날, 호남戰 불씨 지펴

19대 대통령선거 후보 등록이 지난 16일 마감됐다. 15명의 후보가 등록한 최대 규모의 선거장으로 이들은 17일부터 공식일정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호남을 찾은 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였다. 국민의당은 현역의원 39명 중 비례대표 13명를 제외한 지역구 26명 중 김성식(서울 관악구갑), 이언주(경기 광명시을), 이찬열(경기 수원시 갑) 의원 등을 제외한 23명이 호남출신이다.

지난 총선에 첫 깃발을 들어 올린 국민의당이 더불어민주당을 상대로 호남권역을 석권한 결과이고, 원내교섭단체를 완성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셈이다. 안 후보가 첫 공식행보로 호남을 방문한 건 당연한 선택이다.

18대 대선에서 호남은 당시 민주통합당으로 출마했던 문 후보에게 91%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진보의 텃밭이라는 지역특성을 떠나 문 후보에게도 각별할 수밖에 없다.

문 후보 부인 김정숙 여사가 지난 9일부터 호남에 상주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김 여사는 지난 총선에서 ‘호남 홀대론’으로 참패를 겪은 뒤, 지난 해 추석부터 8개월간 매주 1박2일 일정으로 호남을 방문해왔다.

김 여사는 ‘문재인의 호남 특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호남 맏며느리’를 자청하며 호남민을 만나고 있다. 후보들 공식일정 첫날도 문 후보는 보수텃밭인 대구를 찾아 영호남의 화합을 주장하는 통합형 행보를 보인 반면, 김 여사는 광주 서구 민주당 광주시당사에서 열린 시민캠프 발대식에 참석해 ‘내조정치’를 벌였다.

김 여사는 광주 북구 우산동 말바우시장에서 "문 후보 안사람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기호 1번 기억해주십시오"라며 문 후보의 지지를 호소했다.

첫 날부터 양 후보들의 신경전도 날카롭게 벌어졌다.

안 후보는 이날 전북대학교에 유세현장에서 "선거를 위해서 호남을 이용하는 후보는 절대 안 된다"고 문 후보를 정조준해 비판했다.

안 후보는 "계파패권주의 세력에게 또다시 나라를 맡길 수 없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공공연하게 하는 후보를 뽑아선 안 된다"고 호남의 지지를 호소했다.

그는 "제가 넘어졌을 때 손잡아 일으켜주신 것도 호남이다. 이제는 대통령을 만들 시간"이라며 "민주당이 국민의당을 호남당이라고 조롱할 때도 저는 국민의당 깃발을 들고 부산, 대구, 대전, 방방곡곡에서 당당하게 국민의당을 찍어달라고 했다. 대선 첫날도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문 후보는 이날 대구에서 "대구에서, 광주에서 이기면 통합이 저절로 될 것이고, 그러면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뻐하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웃으실 것"이라며 영호남의 통합을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 후보를 겨냥, "국회의원이 40명도 안되는 정당, 급조된 정당이 이 위기 상황에서 국정을 이끌 수 있겠느냐"며 "통합을 만들어낼 수 있겠느냐"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마지막 순회 경선에서 승리하며 제19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사진=뉴스포스트DB))

치열한 신경전 도 넘은 발언 비판도 제기돼

호남을 둔 양당의 치열한 신경전으로 수위 넘는 발언으로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17일 문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섰던 조응천 민주당 의원이 대구에서 "국민의당 지역구 의석 26개 중 23석이 전라도다. 저기가 전라도당이지, 왜 우리가 전라도당이냐"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국민의당은 논평을 통해 "문재인 후보의 대구 유세에서 조응천 의원은 호남을 비하하고 지역감정을 대놓고 조장했다"며 "참으로 귀를 의심할 만한 발언이고 기가 막힌 발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같은 날 전주대에서 열린 '전북 국민 승리 유세 및 전북 발대식'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대북 송금 특검에서 우리 김대중 전 대통령을 완전히 골로 보냈다"고 문 후보를 비난했다.

박 대표는 이어 "문 후보는 우리 전북 인사들에게 차별을 했다"면서 "문 후보는 거짓말과 변명을 하면서 우리 호남을 무시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이들과 호남의 삼각관계가 이번 대선의 중요한 열쇠가 될 거란 분석이 힘을 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지나친 지역감정 조장성 발언 등에 대해서는 따끔한 지적이 일고 있다.

전주에 살고 있는 대학생 최모군(27)은 이들의 발언에 대해 "부모님들이나 어른들은 안 그래도 호남이 차별받았다는 생각이 많은데 저런 말을 들으면 감정이 되살아날 것 같다"며 "아무래도 호남민들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일간지 <전남일보>는 21일 사설에서 "선거전이 과열되면서 망국적인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조 의원과 박 대표의 발언을 꾸짖었다.

이어 “각 당이 구태 중의 구태라고 할 수 있는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는 것은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유권자 의식이 높아진 지금은 역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얄팍한 네거티브로는 결코 호남 표를 얻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또 조정관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지역정서에 대해 "두 후보의 프레임 전쟁이 국민대통합이란 시대적 과제를 내걸고 정작 세대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두 번째, 호남대전...민심은 어디로?

문 후보가 넘어야할 과제는 '호남 홀대론'이다. 노무현정부 시절 호남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역정서는 지난 총선에서 안 후보의 손을 들어주며 평가를 대신했다.

이 때문에 호남지역 청장년층과 노년층으로 나뉘어 지지층이 구분되는 결과가 나왔다.

동아일보가 지난 18일부터 19일까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20~40대는 문 후보 쪽으로, 60대 이상은 안 후보를 더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령대 별로 20대(문 46.6%, 안 22.7%), 30대(문 58.7%, 안 19.5%), 40대(문 48.4%, 안 29.0%)까지는 문 후보가 확실히 안 후보를 앞서고 있고, 60대(문 19.2%, 안 41.5%)에서는 안 후보가 더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대(문 34.3%, 안 33.4%)는 비슷한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대선주자들의 다자간 구도에서 문 후보는 40.0를, 안 후보는 30.1%를 기록했는데, 문 후보는 호남에서 과반 이상인 53.6%의 높은 지지를 받아 호남 공략이 성공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안 후보는 호남에서 31.8%를 얻어 문 후보와 무려 21.8% 차이로 벌어졌다.

호남 중년층의 후보 선호도가 문 후보 쪽으로 기울면서 안 후보는 그야말로 호남골수인 노년층의 전폭적인 지지만 받고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 셈이다. 최근 사드 배치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등 우클릭으로 중도보수층을 겨냥했던 안 후보의 전략이 오히려 호남에서 역효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문 후보는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28.8%를 기록해 23.5%를 얻은 안 후보에 앞서고 있다. 안 후보는 대전·충청 지역에서만 35.8%기록해 문 후보(33.3%)를 제친 것으로 집계됐다.

한편, 이번 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9명을 대상으로 무작위 전화번호 생성기법(RDD)을 통해 유선(17.3%)·무선(82.7%) 전화면접 조사를 실시했으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15.6%다.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국민의당은 4일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대전충청세종 지역 순회 경선을 마치고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를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사진=뉴스포스트DB)

문재인-안철수의 마지막 도전, 승자는?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대권도전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 낙선함에 따라 '박근혜정부'의 농단사태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다. 그만큼 절실함을 연일 내비치며 총선도 불출마하고 일찌감치 대규모 군단을 구성해왔다.

문 후보의 대선캠프는 대선정국 초반부터 엄청난 인재영입과 지원군들의 결집으로 그야말로 '빅텐트'의 면모를 보여줬다. 그에 반해 안 후보는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알짜배기 군단으로 강행군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사회전반에 문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만큼 반문정서 또한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안 후보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는 분위기도 조성되고 있다.

안 후보 역시 19대 대선은 마지막 정치적 도전일 수 있다. 국민의당 창당과 원내교섭단체 구성까지는 성공했지만 본인의 과제는 대권이다. 지난 번 문 후보에게 양보해 '박근혜정부' 출범을 막지 못했다는 양심적 책임론은 안 후보에게도 있다.

게다가 지난 17일 의원직을 사퇴하며 대선에 전력을 쏟고 있는 안 후보는 안희정·이재명 전 예비후보와의 경쟁구도가 그려질 차기 대선은 오히려 부담이 더 크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 이번 대선은 주요 정당 5명의 후보의 독주 레이스가 유독 주목되고 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전략적 연대는 선거의 수순처럼 이루어져왔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정권교체'에 대한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야권의 연대는 불필요한데다가 보수진영의 연대는 정치적 자폭행위에 해당하는 명분 없는 작전이다.

따라서 유력한 대권주자인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경쟁구도에 온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호남에서도 안 후보가 승기를 잡지 못한다면 전국적 문풍(文風)을 이길 방도는 없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문 후보 역시 호남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이들의 치열한 각축전이 이번 대선의 최대 볼거리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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