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아트센터 갤러리 구루지 『낮고 높고 좁은 방』기획전

구로아트센터 갤러리 구루지 『낮고 높고 좁은 방』기획전(사진=신현지 기자)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우리는 구로공단의 전성시대와 함께 경제성장의 궤를 같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굳이 그 어떠한 설명은 필요치 않다. 수출산업공단으로 조성되었던 구로공단과 가리봉 벌집은 우리가 잊고 있던 70년대 한국의 자화상이다.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뀐 것은 불과 약 30년. 제조업에서 첨단산업으로 제법 IT강국다운 현재의 변화된 모습은 어린 여공들의 애환이 서린 가리봉 벌집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화려하게 변신했다.

그 화려함에 60만평으로 무려 10만 여명의 근로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가리봉오거리의 옛 모습을 우리는 잊었다. 어린 그녀들의 가리봉벌집 역시도 우리는 잊었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리봉벌집을 작품으로 기억을 더듬어 올리는 작가들이 있다.

구로아트센터 갤러리 구루지에『낮고 높고 좁은 방』의 기획전시회다. 전시회의 참가 작가 김덕희, 김미라, 김보경, 김정은, 유한이, 이마로, 이민하, 정희우. 그들은 70년대의 구로공단과 한국 근대화를 상징하는 가리봉 벌집에서 출발하여 오늘날 청년 세대가 겪는 불안정 주거공간의 고리를 작품으로 펼쳐내고 있다.

그들은 구로공단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가리봉 지역을 답사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방'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따라서 구로동 벌집방은 고시원, 하꼬방, 옥탑방, 반지하방, 루핑집, 쪽방촌 등등 불안정한 주거공간의 공통점의 연결고리로 각각의 색채를 가지면서 주제는 동일하다.

실제 가리봉 벌집을 탁본 한 정희우 작품(사진=신현지 기자)

기존 작업의 매체가 적극적으로 발현되고, 각자가 경험하고 생각해 온 사회문제에 대한 의식들로 자연스럽게 관람객들을 유도하는 전시장의 첫 번째 방은 작가 정희우다. 작가는 작은 기호들을 탁본으로 시각화를 모티브로 가졌다.

 이곳에서 작가 정희우는 가리봉의 실제 벌집방을 탁본으로 가져왔다. 작은 규모의 방은 3개의 창문 위치로 벌집방의 특수한 구조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낮고 좁은 방은 고개를 숙여야만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구조이며 정면 왼쪽의 낮은 문과 수도가 있는 다용도실은 쪽다락방으로 연결모습이다. 아마도 쪽다락방엔 그 시절 어린 여공의 쉼터였을 것이다. 이렇게 탁본을 통해 방의 실제 구조적 특성을 보여주는 정희우의 작품은 사회학자인 정민우의『자기만의 방』의 청년세대의 주거 문제와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작가 김정은 역시도 가리봉동의 모습이다. 작가는 가리봉에서 우연히 조우한 여객기를 통해 가리봉으로 향하는 여정을 표현했다. 'self mapping 가리봉 벌집 비행'은 2~30분에 한 대씩 등장하는 여객기와 마주친 곳의 풍경, 위치 등을 기록한 것으로, 주관적이면서 개인적인 시선은 가리봉의 현재의 모습이다.

김보경의 방은 기억과 재현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과 사건의 이야기다. 'The dim landscape of Sune'의 주인공은 도시의 부푼 꿈을 안고 시골에서 상경한 인물의 내면 표현이다. 따라서 작가의 노동적 행위로 생겨난 작품 표면의 깊고 불규칙한 주름들은 주인공이 감내했어야 했던 삶의 고단함과 치열함이다.

동경예술학교에서 첨단예술표현과 석사를 마친 김덕희의 작품은 열과 빛을 소재로 불안정한 주거공간을 표현했다. 작가는 한국 근대화의 상징인 구로 공단의 쪽방촌을 한국이라는 모태의 자궁이라 해석한다.

구로공단의 쪽방촌을 한국이라는 모태의 자궁으로 표현한 김덕희 작가와 그의 작품(사진=신현지 기자)

즉, 고속성장 과정에서 겪은 급속한 근대화를 불안정 주거공간인 쪽방촌과 근대화의 그늘에서 태어난 2014년 여객선 참사를 자궁이라는 공간으로 연결을 지었다. 이렇게 두 공간에서 존재했던 이들이 보았을 꿈들을 작가는 오브제와 그림자로 표현해냈다. 암실 속의 태아는 깊고 아늑하다. 따라서 관람객들은 작가의 암실을 통해 근대화의 불안정 주거공간을 엿보거나 태내의 회귀로 귀착한다. 특별히 작가 김덕희는 이번 전시회가 국내에서는 처음이라며 <뉴스포스트>의 사진촬영에도 많이 쑥스러워했다. 그 모습이 수줍은 소녀같은 인상이었다.

이렇게 가리봉벌집을 시작으로 불안정 주거공간으로까지 주제를 확장한 8명의 작가들은 한국사회의 압축성장의 혜택을 본 30대 후반~40대 중반의 작가들이다. 그들은 지금의 청년 세대의 주거 문제와 '방'에 대한 생각들을 가리봉이라는 필터를 통해 관람객들에게 깊은 사유를 유도해내고 있다. 높은 빌딩과 첨단의 조형물거리 이전의 구로공단의 어린 여근로자의 애환을 환기해볼 수 있는『낮고 높고 좁은 방』기획전은 28일까지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이번 기획전시회를 통해 구로공단의 산업수출역군들의 노고를 돌아보는 가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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