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김경배 국장] 개인이나 조직, 또는 단체는 보통 행동거지에 앞서 이를 합리화하는 작업에 나선다. 이는 자신이 벌일 행동이나 움직임으로 인해 야기될 비판적 시선이나 여론을 사전에 봉쇄하거나 희석시키기 위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보통 명분(名分)이라 부르는데 사전적 의미로는 신분이나 이름에 걸맞게 지켜야하는 인간적 도리를 뜻한다. 때문에 명분은 바로 자기합리화의 과정이며 자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과거 고려말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인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한 명분은 4불가론(四不可論)이었다. 이 같은 결과로 인해 이성계는 실권을 잡고 역성혁명의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왕조국가에서 왕의 명을 무시하고 그에 반하는 행위를 하기에는 그 명분이 필요하다. 이성계는 그 명분을 바로 이 4불가론에서 찾은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굵직굵직한 사건 뒤에는 항상 대의명분이 존재했다. 수양대군은 단종으로부터 선위를 받아 왕에 올랐는데 그 명분은 단종의 어린 나이였다. 연산군과 광해군의 폐위에도 명분이 있다.

대한민국에도 중요한 사건에는 명분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일성은 “국민이 원한다면….”이다. 최근에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파면도 헌법재판소는 그 이유를 자세히 밝히고 있다. 명분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명분은 무슨 이유로 나오게 되는 것일까? 단순히 자기행동에 대한 합리화로만 받아들이기에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명분에는 따라오는 과실이 있다. 그 과실을 위해 명분을 쌓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보통 실리(實利)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과실. 그 열매를 얻기 위해 명분을 내세우게 된다. 열매는 달콤하기 때문이다. 위화도 회군을 통해 고려 실권을 장악하고 조선건국의 기틀을 닦았으며 중정반정을 통해 그동안 권련에서 밀려났던 박원종을 비롯한 훈구파가 정권을 잡게 된다.

마찬가지로 인조반정을 통해 국정에서 소외됐던 서인들이 정권을 장악한다. 때문에 명분이 있으면 실리가 있고 실리가 없으면 명분도 없다. 아무런 과실이 생기지 않는데 명분을 만들어 굳이 수고를 기울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반드시 명분과 실리가 같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항상 명분과 실리로 나뉘어 다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인조의 친명배금정책은 바로 중화사상을 중시한 명분론에 집착한 정책이다. 그 결과 바로 병자호란으로 이어지는 등 청나라의 침략을 받게 된다. 명분도 중요하지만 실리를 생각지 않은 무모한 정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의 행동에도 명분은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인에겐 명분은 아무리 강조해도 그 중요성이 작지 않다. 정치가 움직이는 생물이라면서 변화무쌍하게 행동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다. 수시로 바뀌는 정책이나 이념도 정치인들이 바로 실리를 쫒기 때문이다.

바른정당 소속 국회의원 13명이 2일, 집단 탈당과 함께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친북좌파-패권 세력의 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명분은 약하기 그지없다.

친박 패권주의 청산을 내세우면서 새로운 개혁적 보수의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것이 바른정당 창당 일성이었기 때문이다. 이들 중에는 국회 탄핵소추위원장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지휘했던 권성동 의원과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위원장을 맡았던 김성태 의원, 최순실 국정농단 국조특위 위원으로서 활동한 장제원, 황영철 의원 등도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결국 그들의 홍 후보 지지선언은 무엇인가 실리가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 실리는 무엇일까? 바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차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인 것이다.

과거의 선례에서 보면 잘못된 명분은 어떠한 실리도 안겨주지 않는다. 그들의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잉태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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