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사회 연중기획
[역사 톺아보기⑦] 소녀상 작가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 앞에 행동하는 우리 국민"한·일 협상 테이블 위에 선 맨발의 소녀상, 역사 주권 찾는 모멘텀 되다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세계 2위 경제대국인 일본이 우리나라가 가진 것 중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의 반도체 기술일까? 아사다 마오를 영원한 2인자로 만든 김연아 선수일까? 둘 다 아니다. 그 대상은 바로 열서너 살쯤 되 보이는 앳된 소녀다. 홑겹의 저고리와 치마 차림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곳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 소녀. 두 주먹을 꼭 움켜진 채 펴지 않는 소녀. 우리에게 소녀는 그저 평범한 소녀가 아니다. 이 소녀는 어릴 적 일본군에 끌려가 전쟁시대에 자신의 어린 날을 희생당해야만 했던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전범 진실을 은폐해 왔던 일본 정부로서는 일제의 잔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어린 소녀가 눈엣 가시다. 소녀에서 나오는 당당함 울림이 두렵기만 하다. 소녀를 막기 위해 협박도 해보고 을러보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소녀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이 더욱 늘어난다. 이제 소녀는 우리 스스로 아픔의 역사를 인정하고 바로세우기 위한 국민적 자존심이 돼버렸다. <뉴스포스트>는 소녀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 준 부부 조각가 김운성·김서경 작가를 통해 소녀가 가진 슬픔과 분노를 되새기고 올바른 역사 주권을 되찾기 위한 방안 등을 들어봤다. 

 

소녀상을 만든 김서경(좌)·김운성(우) 작가 부부 (사진=박은미 기자)

“우리는 이미 일본에 ‘면죄부’를 준 정부를 탄핵했다”

지난 26일 ‘평화의 소녀상’을 만든 작가 김운성 김서경 부부의 인터뷰를 위해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았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라는 딱딱한 어감 탓일까? 고리타분한 자줏빛 벽돌색 박물관일 것이라는 기자의 예상이 빗나갔다. 노란색 나비들에 둘러싸인 짙은 회색빛 박물관은 경건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올해로 설립 5주년을 맞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일본군위안부 생존자들의 아픈 역사를 잊지 않고 전쟁과 여성폭력에 반대하는 국제적 연대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담벼락을 수놓은 노란 나비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상징하며, 할머니들이 아픔을 극복하고 희망의 날개짓을 하길 바라는 염원이 녹아있다.

이날 관람객 중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김서경 작가는“수요 집회에 참여했던 학생들이 집회 종료 후 들리는 코스가 이곳이다”며 “특히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인 ‘문화가 있는 수요일’의 경우 학생들이 특별활동 수업으로 박물관 견학을 많이 온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합의 문제,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 독도 영토 문제 등 역사적 현안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학생들이 올바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입시위주의 교육에 쫓겨 혹은 배가 불러서 우리 학생들이 처참했던 망국의 역사를 잊을까 걱정했지만 박물관을 찾는 많은 학생들을 보니 괜한 노파심이었나 보다.

김서경 작가는 “정부가 잘못됐다고 모든 국민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게 촛불혁명을 통해 증명됐다”며 “잘못을 저지른 정권을 바로잡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위안부 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한번 발휘해야 한다”고 힘주어 당부했다.

 

노란색 나비들에 둘러싸인 짙은 회색빛 건물인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경건하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사진=박은미 기자)

다음은 김운성·김서경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에워 싼 노랑색 나비 메모지에 다양한 나라의 관람객 메세지가 적혀있다니 사실 좀 의외다.

내국민뿐 아니라 외국인도 박물관에 많이 온다. 덴마크, 미국, 호주, 아립인 등 세계 각국의 관람객들이 역사의식을 갖고 방문한다. 이들 관람객들은 수요 집회 참석 후 전쟁피해 역사를 직접 보고 교육 받기 위해 이쪽 박물관으로 이동한다. 일본인도 많이 온다. 무릎 꿇고 사죄하고 가는 일본인들은 오래전부터 많았다. 전범진실을 은폐하는 아베정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역사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정권이 문제지 국민들이 문제가 아니다. 박근혜 정권의 한일합의 찬성이 우리 국민의 의사가 아닌 것과 동일한 이치다. 일본과 국내 언론에 다뤄지지 않을 뿐이지 위안부 문제에 대해 꾸준히 의식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이 일본에도 많다. 평화의 기원이란 ‘너희나라 우리나라’ 구분 없이 국경을 초월하는 문제다. 일본인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원망을 가지기 앞서 일본과 우리 정권부터 바로 서야 한다.

 

- 소녀상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2011년 3월 우연히 수요집회 장소를 지나가다 할머니들이 집회하는 것을 보게 됐다.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년간 수요집회를 이끌어 오셨다는 것을 우리는 전혀 몰랐다.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간의 정리가 안 된 끝나지 문제인데 이렇게 늦게 알아서 죄송했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을까 해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를 찾아 문의한 것이 시작이었다. 때마침 정대협이 수요집회 1000회를 앞두고 ‘평화비’를 자그맣게 제작 준비 중이라고 해서 함께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탄생했다. 다만 원래 ‘평화비’는 사람형태가 아닌 평화의 의미가 담긴 비석이었다. 그런데 일본정부가 우리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것을 뉴스를 통해 접하며 불합리한 부분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우리가 조각을 하니까 아예 더 세게 ‘사람’의 형태로 가자고 결정했다.

 

- 앳된 소녀의 모습을 결정하기까지, 사연이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투쟁하는 모습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할머니들도 징집 당시 소녀였기 때문에 당시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소녀로 결정했다.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눌수록 전쟁 때문에 젊은 시절을 잃어버린 소녀이자 한 여인으로 보였다. 이런 아픔을 미래의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징집 당시의 모습과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야했다. 하지만 일본대사관 앞에 앉은 소녀가 여리게만 보여서는 안됐다. 그들한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당당한 소녀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정말 많이 고민했다. 아시다시피 조국에 돌아오신 할머니는 몇 안 되며 대부분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의 편견과 외면으로 인해 조국에서조차 고통을 받으며 살아오시던 할머니들은 1991년 ‘우리는 일본군 피해자였다’고 당당히 증언했다. 앞으로 자신과 같은 전쟁피해여성들이 또 생기면 안 된다는 마음에서다. 할머니들은 이제는 시선을 돌려 전쟁으로 인해 피해 받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 평화운동을 하는 ‘인권운동가’가 되셨다. 전 세계 집회에서 일본의 만행을 증언하고 나아가 인권탄압을 반대하는 할머니의 활동은 우리들의 역사가 되는 것뿐만 아니라 희망이자 평화의 상징이 됐다. 이런 의미가 오롯이 다 소녀를 통해 뿜어져 나와 소녀가 일본 앞에 당당하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했다.

 

(사진=김진웅 작가)

- 왜 맨발로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녀여야만 했나. 단발머리 소녀의 그림자가 할머니 형상이란 점도 특이하다. 소녀상의 요소 하나하나에 담겨진 의미는 무엇인가.

소녀의 모습으로 조각을 만들기로 결정한 후 일제시대의 사진과 기록들을 끊임없이 관찰했다. 열서너 살쯤 된 조선의 평범한 소녀지만 내면 깊이 전쟁에 대한 메시지를 외치고 있는 모습으로 최종 결정했다. 고통과 착취의 역사를 거칠게 뜯긴 머리카락과 맨발로 표현했다. 또 조국에 돌아와서도 편견과 외면으로 고통스럽게 사신 할머니들의 삶을 땅에 채 닿지 못한 밤귀꿈치로 표현했다. 두손을 꼭 쥐고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눈은 사죄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굳은 의지를 담았다. 이밖에 소녀 어깨 위의 작은 새는 자유의 상징이자 돌아가신 할머님과 우리들을 연결해주는 영매를 의미하며, 머리에 쪽을 지고 등이 굽은 할머니를 형상화한 그림자는 치유되지 않은 할머니의 아픔을 상징한다. 무엇보다 소녀상 옆 빈의자가 가장 중요하다. 이 자리는 조국에 돌아오지 못한 많은 소녀들, 명예회복을 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많은 할머님들을 위한 공간이다. 누구든지 빈 의자에 앉아 소녀상를 바라보며 위안부 합의를 위해, 나아가 우리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빈 의자는 평화와 치유의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이게 하는 약속과 연대의 자리이기도 하다.  

 

- 이렇게 고심해 만든 소녀상을 처음으로 세울 당시를 회상한다면.

2011년 12월 14일  1000회 수요집회를 맞춰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첫 소녀상을 세웠다. 솔직히 당시는 설치가 가능할지도 불확실했다. 건립 허가 절차가 완벽히 정리 되지 않아 새벽에 기습설치를 감행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일본 기자들이 잔뜩 와있더라. 한국 기자는 한명도 없고 일본 기자만 정말 쫙 서 있었었다. 그날이 수요집회 1000회 날이라 일본기자들이 대사관 앞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차에서 소녀상을 내리지 마자 어둠 속에 카메라 후레쉬가 일제히 터졌다. 당시에 일본은 소녀상 건립을 생중계 할 정도로 관심을 가졌다. 일본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너희들 지금 티비에 나온다'며 실시간으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소녀상의 중요성을 몰랐는데, 일본에서는 어떤 의미가 될지 안거다. 

 

- 소녀상 덕에 대한민국의 가장 유명한 부부작가가 된듯하다. 유명세로 인해 힘든점이 있다면.

CC(캠퍼스커플)이었던 저희는 눈빛만 봐도 통한다. 서로의 작품 활동스타일에 대해 잘 알기에 불편함은 없다. 흔한 서열싸움, 기싸움 같은 것도 없었다. 김서경 작가가 정한 서열이 명확하니까(웃음). 유명세로 인한 단점도 없다. 요즘은 소녀상덕분에 할 일도 많고 먹는 걱정은 안한다. 소명감이 생기고 스스로 더 채찍질 하게 된다. 여러모로 고맙다.

 

- 상업예술 보다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 활동을 추구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흔한 말로 예술가는 ‘배고픈 직업’이라고들 하는데 금전적인 부담은 없는가.

결혼 후 미술학원을 3년 동안 운영했다. 틀어 갇힌 미술 입시제도에 ‘이건 미술이 아니다’라는 회의감을 느껴 그만뒀다. 그때부터 미술을 통해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에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는데 진심이 느껴졌는지 나름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작품을 통해 늘 추구하는 가치는 작품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돈이 많고 적음이 중요치 않다. 그때그때 맞춰 부족함 없이 살아가면 된다.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업이 저희 작품의 중심이지 돈을 위해 사람과 시대를 외면하고 싶지 않다. 열사와 노동자를 기리는 ‘동학농민역사탑’과 ‘효순이·미순이 추모비’등 소통을 담은 작업 위주로 꾸준히 해왔다. 사회의 한 일원이자 부모로서 우리 사회문제를 당연히 외면할 수 없다. 사회 문제를 외면하다보면 남의 일이 ‘나의 일’이 된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세월호 사고가 더욱 마음이 아프고 14살 어린나이에 일본에 끌려간 위안부 문제가 가슴이 찢어진다.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앞 평화의 소녀상 손에 시민들이 건넨 작은 사탕이 쥐어져 있다. (사진=우승민 기자)

- 소녀상 작가로 불리며 이제껏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아무래도 첫 소녀상을 세웠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민들이 소녀상을 보자마자 추울 것 같다며 목도리를 빼 맨발에 감겨주더라. 조건없이 소녀상을 보살펴주는 시민들의 모습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조각을 하면서 내 작품이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더 많은 작업과 울림으로 확산되고 있어 정말 뿌듯하다. 역사의 이 시점에 저희가 함께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 소녀상이 일본 정부의 눈엣가시가 될만큼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가운데 ‘12·28 한일 위안부 합의’가 소녀상 철거의 시발점이 됐다. 한일합의에 대한 견해를 밝혀달라.

한일합의는 당연히 무효다. 국민들이 인정하지 않은 정부에서 피해자와의 합의 없이 이루어진 졸속 합의다. 이미 우리는 탄핵을 통해 정부의 정당성을 부정했다. 정대협과 할머니들은 합의에 대해 전혀 몰랐다. 우리 정부가 정성을 다해 할머니들과 소통할 창구를 만들어야 했지만 목소리를 들으러 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정부가 할머니들 몰래 돈 받고 합의한 것인데 이런 굴욕적인 제안을 정부가 찬성했다 데 화가 난다. 합의에서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것에 두번 화가 났다. 한편으론 그만큼 소녀상의 존재나 상징성이 묵직하다는 것도 함께 느낀다. 그래서 더욱 사명감을 들었다. 바람이 있다면 할머니들이 살아계실 때 더 늦지 않게 사과를 받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본의 국제적 위상도 더 높아질 것이다.

 

- 그렇다면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 정부의 논리를 무엇인가.

아베가 현재 상황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땅에 우리나라 작가가 우리나라 피해자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을 세우는 거다. 옆나라, 그것도 가해자인 정부가 철거하라 마라 얘기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다. 일본은 ‘빈 협약’을 내세워 자국 대사관 앞에 자리 잡고 있는 소녀상의 철거와 이전을 우리 정부에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1961년 체결된 ‘외교 관계에 관한 빈 협약’에 따르면 외국의 공간에 외국의 품위와 안전 등을 해할수 있는 물건을 설치하면 안된다. 빈 협약이 법적 효력이 없음이 밝혀졌음에도 일본은 계속 들쳐내고 있다. 칼을 든것도 아니고 앉아 있는 소녀상인데 이것이 일본을 해치는 내용인가. 소녀상은 온전히 우리의 아픔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이며 일본대사관 앞은 할머니께서 20년간 수요집회를 통해 지킨 장소다. 소녀상은 그 어떤 합의의 조건이나 수단이 될 수 없는 수요시위의 정신을 기리는 역사의 상징물이자 우리 공공의 재산이다. 얼마전 부산 소녀상 설치에 반발한 주한 일본 대사가 자국으로 돌아가는 헤프닝도 있었다. 국제적 외교를 하는 사람들이 조각상을 핑계로 업무를 안 보는게 말이 되는가. 예전의 일본은 굉장히 예의 바르고 철학이 있는 나라였는데 아베정권이 들어오고 나서는 그 대국이 작은 나라가 되어버렸다. 정권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느낀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일본의 쓰쓰이 작가가 최근 소녀상을 향해 “소녀는 귀여우니까 모두 사정해 정액투성이로 만들자”라는 망언을 퍼붓기도 했다. 소녀상을 만든 작가로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

우선 여자로서 불쾌한 감정이 앞선다. 일본으로 돌아갔던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으로 복귀한 불만을 왜 소녀상에 표출하는가. 이는 애시당초 소녀상 철거를 운운할 수 없는 입장인 일본의 과욕이 부른 결과다. 해당 발언에 대한 논란이 커지며 관심을 받기 위해 댓글을 달았다고 해명했던데, 더욱 한심해 보일 뿐이다.

 

지난 3월 29일 서울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열린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길원옥 상 제막식에서 김 할머니와 길 할머니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진웅 작가)

- 최근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는 ‘베트남 피에타’ 동상 제막식을 가진 것으로 알고있다. 이는 대한민국이 가해자의 입장으로 선 자리다. 가해자의 역사를 마주한다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시선도 있었을텐데.

베트남에는 ‘증오비’가 있다. 증오비에는 ‘한국군들이 우리를 이렇게 죽였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묘비에는 한 살도 안 돼 이름도 없이 죽어간 아이들과, 많은 여성들이 묻혀있다. 우리도 다른 나라의 역사 속 에선 가해자였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 과오가 있었다면 이와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 피해자의 국가가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은 평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많은 일본인들이 사죄를 하기 위해 수요집회에 참석한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정부에서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한 언급을 꺼리지만 민간으로라도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런 바람을 담아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희생된 민간과 이름도 없이 죽어간 아기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추모비를 제작했다. 베트남전 종전 42주년을 맞아 지난달 26일 ‘베트남 피에타’(베트남어 이름 ‘마지막 자장가’) 동상을 평화의 섬 제주에 세웠다. 참고로 지난 3월 29일에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상 제막식을 열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에 내전과 전쟁으로 인해 피해 받은 여성들을 지원하고 계시는 두 분 할머니의 삶을 깊이 존경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제작, 헌정했다. 베트남 피에타 또한 할머니들의 평화나비 기금을 통해 만들어졌다. 전쟁의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다른 사람들의 아픔을 보듬는 노력인 베트남 피에타는 한국 사회의 반성과 성찰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어 저희는 정말 여한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있다.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 오래전에 청산되지 못한 역사가 지금 이 순간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잘못된 정권을 바로 잡은 충분히 위대한 국민이다. 잘못된 역사 의식을 청산하고 비정상적인 구조를 정상적으로 만들기 위해 위부터 아래까지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개인, 단체 등 각각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다르다. 또한 피해의 역사뿐 아니라 가해의 역사도 생각을 하며 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우리 아이들의 평화는 약속을 통해 연대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

박은미 기자  vfocus@daum.net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은미 기자 | vfocus@daum.net
담당업무 : 경제팀장 / 금융 건설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