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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간절함이 이룬 '문재인 대통령'이 걸어온 길대세론 굳힌 ‘어대문’, 정권교체 성공했다
9일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국회 의원회관 개표상황실을 찾아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사진=설석용 기자)

[뉴스포스트/대선특별취재팀=설석용 기자] "오늘의 승리는 간절함의 승리다." 문재인 대통령이 출구조사 발표 이후 전한 소감 발표다. 문 대통령은 "국민들이 염원하는 개혁과 통합 그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이루겠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정부가 탄생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19대 대선후보로서 선거초반부터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수식어를 등장시키면서 마지막까지 대세론을 입증시켰다.

문 대통령은 또 대선정국이 본격적으로 펼쳐지자 대규모 인재 영입작전을 펼치는 등 주요 정당 대선후보들 가운데 최대 면적의 선거캠프를 자랑하며 정권교체 포부를 드러냈다.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궐위 상태로 치러진 대선인 만큼 대통령인수위원회 절차가 생략돼 이날 오전 중앙선관위가 확정 발표한 이후 즉각 임기에 돌입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과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면서 국정 경험을 다져온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남다른 인연이 역사적 관심을 받기도 한다. 선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정의구현에 대한 남다른 용기가 있었던 대한민국 19대 문재인 대통령. 그가 시대적 사명을 받들어 정권교체를 이뤄내기까지 문 대통령이 걸어온 길을 조명해봤다.

 

유신과 싸운 투쟁의 사법고시

노무현과 문재인, 역사가 본 인연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 문재인

재수한 대선, 압도적 승리로 성공

문재인 대통령 가족사진.(사진=더문캠 제공)

군부독재 철창 이겨낸 불굴의 투지

'어대문'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만큼 국민적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제19대 대통령이 된 문재인 대통령의 유년시절은 어느 평범한 집안 못지않게 가난과의 전쟁이었다.

문 대통령의 아버지 문용형 씨는 함경남도 흥남출신으로 흥남시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다. 이들의 가난이 시작된 건 한국전쟁 발발 이후 가족들이 남쪽으로 피란해 내려오면서 부터다.

셋방살이를 전전긍긍하던 이들은 거제도를 거쳐 부산으로 터를 옮겨 잡았다. 부산 남항국민학교를 다니던 문 대통령은 양동이를 들고 학교 위 ‘신선성당’을 찾아가 배급을 타먹으며 끼니를 해결하곤 했다. 수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문 대통령은 천사 같아 보이던 수녀들을 따라 천주교에 입교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명문학교였던 경남중고교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초기에는 ‘문과는 문재인’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뛰어난 학업성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수재였다. 그러나 극심한 가난을 못 이겨 술과 담배에 손을 대며 방황을 시작해 서울대 진학에는 실패했다.

이듬해인 1971년 고교 졸업 후 종로학원 진입시험에서 일등을 해 수업료 면제 혜택을 받고 재수를 시작했지만 서울 유학 생활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당시 경희대학교를 설립한 조영식 박사의 권유를 받고 경희대 법대 4년 장학생으로 수석입학을 하면서 대학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의 대학생활 역시 여느 운동권 학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75년 4월 11일 집회를 주도하다 구속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철창신세를 지게 됐고, 그 해 6월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아 대학에서 제적까지 당했다.

이후 유신독재와 맞서 시위하다 신체검사도 받지 못하고 군대로 강제 징집됐다. 육군에 입대한 문 대통령은 특수전사령부 예하 1공수 특전여단 제3대대에서 복무해 당시 특전사 사령관 정병주와 여단장 전두환에게 두 차례 최우수 특전사 표창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제대 후 전두환 군부독재와 싸우다 다시 투옥되는 악연이 되기도 했다.

수감 중 감옥 안에서 그는 사법고시 2차와 3차를 통과해 극적으로 석방된 인물로 유명하다. 사법연수원에서 차석을 하고,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최고의 실력을 인정받았음에도 학생운동의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려 아무 곳에도 임용되지 않았다.

로펌의 제의도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이 돼 인권변호사로서 삶을 시작했고, 지금의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초석이 됐다.

19대 문재인(좌) 대통령과 16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사진=더문캠 제공)

노무현과 문재인, 운명적 만남

문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 노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소개할 때 쓰는 말로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이 배려와 존중으로 둘러싸인 관계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46년생으로 문 대통령보다 7살 연상이었음에도 이들은 서로 존칭어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과 인연을 시작한 것은 사법연수원 연수를 마친 뒤다. 시위와 투옥 사실로 연수원 시절 일등상인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했음에도 판사와 검사 임용에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뒤 문 대통령은 김앤장같은 대형 로펌의 제안을 거절하고 부산행을 선택했다.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 동기 박정규 씨의 소개로 노무현 당시 변호사 사무실을 찾게 됐고, 첫 만남에 진한 교감을 느낀 이 둘은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 법률 사무소’를 열었다.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노무현, 문재인, 김광일에게 정계 진출을 제의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고 나머지 둘은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치계 입문했다. 문 대통령은 당초 정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게다가 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이후 문 대통령은 변호사로 업무 복귀 의사를 수차례 밝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참모들의 설득 끝에 참여정부 초대 청와대 민정수석을 맡게 됐다. 문 대통령은 1년 만에 건강상의 이유로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청와대를 떠나 네팔 산행을 하던 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외신으로 접하고 전격 귀국했다. 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정치권에 뛰어든 시점이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단 대표변호사로서 탄핵 운용결정을 막아내고 2005년 다시 청와대로 복귀했다. 그는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노무현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모든 장례 절차 등 관련 업무를 도맡아했고, 이후 노무현재단 <사람사는 세상>의 이사장을 맡아 마지막까지 인연을 이어갔다.

 

정치인 문재인과 정치적 동지 안철수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이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부산사상구에 출마해 첫 금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초선이었지만 당내 영향력은 가장 막강했다. 문 대통령은 제1야당의 대표대행을 맡아 지도부로서 정치인생을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정치인으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문 대통령에게는 인생의 라이벌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치판의 모든 관심을 집중시켰던 이 둘은 한때는 세상을 개혁할 정치적 동지였지만 절대 다시 손을 잡을 수 없는 악연으로 정치행보를 걸어야 하는 관계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2012년 6월 17일 서대문 독립공원에서 "보통사람이 중심 된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라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단숨에 대선주자로서 우뚝 올라섰다. 순식간에 거물급 정치인으로 등급을 올린 것이다.

문 대통령은 당시 쟁쟁했던 경쟁자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과의 13회 경합에서 전승을 거두며 민주통합당 대선후보로 18대 대선에 출장했다. 그러나 정치계 혜성처럼 등장한 안 전 대표와의 연대하며 흥행몰이를 이어갔지만 두 후보의 순탄치 못했던 단일화 연대과정을 겪으며 정권창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 문재인·안철수의 새정치민주연합이 출범해 야권의 개혁을 추진했지만 안 전 대표가 탈당과 신당 창당을 선택하며 문 대통령과 정치적 결별을 선언하며 막을 내렸다.

20대 총선 과정에서 이들은 끝내 야권통합을 하지 않고 독자행보를 추진해 제3당 시대를 초래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는 호남권 의석을 모두 석패하며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해 승기를 들어 올렸고, 문 대통령은 호남 사수라는 큰 과제를 떠앉게 됐다.

문 대통령과 안 전 대표는 19대 대선에서 또 다시 빅게임을 치러야 했다. 당내 경선에서 모두 압도적인 지지율을 확보하며 주요 야권 정당의 대선후보가 된 이 둘은 선거 직전까지 쉼없이 경쟁의 열을 올려야 했다.

관계 회복이 불가했던 이 둘의 팽팽한 양강구도는 이번 대선에서 유권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가장 큰 화제거리로 손꼽히기도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압도적 승리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의 선전해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안 전 대표는 3위에 그쳐 본게임에서 처참히 패배했다. 중도 보수표심 몰이에 실패해 이탈현상이 가속됐다는 분석이 패인으로 언급된다.

이에 따라 문재인정부에서 국민의당과 얼마나 협치를 하는지, 의원직까지 내던지며 대선에 출마했던 안 전 대표가 향후 거취를 어디로 정할지 국민적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9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 개표상황실을 찾아 "이번 승리는 간절함의 승리다"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사진=설석용 기자)

19대 대통령 문재인, 역사적 과제가 기다린다

2017년 5월 10일 19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시작됐다. ‘어대문’ 공식은 깨지지 않았고 최종 41.08%를 득표하며 끝내 대세론을 입증해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출구조사에서도 41.1%로 다른 후보들보다 두 배 가량 앞선 표심을 예상했다.

대세 대통령이 된 문 대통령은 최단기간 내각 구성,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매듭, 한·중·미 외교관계, 협치 등 난제해결이 급선무인 상황이다.

먼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이 없이 시작된 이번 정부는 우선적으로 내각 구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 지난 이명박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총 59일, 박근혜정부는 총 48일이 소요됐다. 문재인정부는 국정공백 사태를 최소화하기 위해 인선 시간이 1~2개월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매듭을 어떻게 지어야 하느냐가 문재인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구속됐고, 대통령이 탄핵돼 7개월이나 앞당겨 대선이 치러진 만큼 이번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정부의 방침이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사드 배치 문제와 북핵문제로 인한 외교문제는 가장 민감한 사안 중 하나다. 대선후보 초청 TV토론 동안 민심은 각 후보들의 대북관을 놓고 크게 요동친 바 있다. 문 대통령이 남북회담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만큼 사드, 북핵, 개성공단, 금강산 등의 안건에 대한 정부 방침에 이목이 집중될 전망이다.

또 동북아 정서를 움켜쥐고 있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입장정리가 주목된다. 미국이 중국의 대북제재에 대해 일정부분 동의 의사를 표하고 있으면서도 사드배치 문제에 대해서는 여전히 갈등을 드러내고 있어 정부의 대응전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이번 대선은 60일 동안 초박빙으로 치러진 만큼 주요 정당 5명의 대선후보들의 치열한 신경전이 유권자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특히 각 후보들이 소신을 지키며 끝까지 연대없는 독주를 완성하면서 그 의미는 더욱 깊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중 바른정당 소속 12명의 의원들이 탈당해 유승민 후보 곁을 떠났지만 오히려 유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했던 결과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진보정당 역사상 최대 득표율을 기록한 사실은 이번 대선의 진기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는 문 대통령에게도 과제로 남는다. 5개 주요 정당의 협치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예고하기 때문이다. 또 이들이 확실한 표심을 확보하고 있어 더 날카롭게 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설석용 기자  ssyas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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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석용 기자 | ssyasd@naver.com
담당업무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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