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직 감정 노동자들의 설움, 도넘은 '성희롱'발언

서비스직 감정 노동자들의 설움

신체적인 폭력보다 더한 ‘언어폭력’

‘성희롱 발언’ 남녀불문 가장 많아

업무보단 ‘컴플레인’ 스트레스 多

개인 아닌 사회문제, '인식전환 요구돼'

[뉴스포스트=우승민 기자] 커피숍, 미용실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서는 ‘손님은 왕’이라는 통념을 거들먹거리며 ‘갑질’을 하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백화점 주차요원을 폭행하거나 귀금속 매장에서 폭언을 내뱉는 등 ‘손님’이라는 이름으로 심각한 ‘무례’를 저지르고 있는 것. 이 같은 잘못된 사회적 인식 탓에 서비스업계 종사자들은 무조건적인 사과를 하는 등 업무 외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자살 등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것으로도 조사돼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5년 10월 인천소재 모백화점에서 직원2명이 고객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TV조선 화면 캡처)

 

신체적 폭력보다 언어폭력이 더···

서비스직에서 6년 째 종사하고 있는 김지훈(34·가명)씨는 손님들의 언어폭력이 정신적 스트레스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학생 때부터 취업까지 서비스직에서 일하면서 손님들의 언어폭력은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질 만큼 충격적이다. 작은 실수에도 욕설을 하는 손님들을 대응하다보면 생각보다 체력소모가 많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어 “생각보다 신체적인 폭력보다 언어폭력으로 ‘갑질’을 하는 손님들이 정말 많다. 때리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손님들이 서비스 종사자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응대하면서 작은 실수에도, 무표정이라는 이유 등으로 언어폭력·신체적 폭력·정신적 폭력 등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에게만 당하는 문제도 아니었다.

G편의점에서 8개월 째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고 있는 이시영(20·가명)씨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첫 아르바이트이다. 그녀는 처음 서비스직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회사 측에서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한참 어린 학생들이 욕설은 기본이다. 술을 먹고 성희롱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수도 없이 많다. 초반엔 사장님께 다 알렸지만 돌아오는 말은 ‘그 정도는 괜찮다’ ‘표정 관리해라’ 라는 말이었다”며 “폭력을 당해도 수가 없다는 생각뿐이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씨뿐만 아니라 서비스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토로했다.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우승민 기자)

백화점 안내데스크에서 일하고 있는 김지인(23·가명)씨는 “남성 고객들이 ‘언제 마쳐?’ ‘오빠가 맛있는 거 사줄게. 오늘 시간 좀 내 줘’ 등의 말로 성희롱을 하는 남성들이 정말 많다”고 전했다.

또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황수현(22·가명)씨는 “가슴에 반짝이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데 남자 고객들은 항상 가슴에 손을 얹히거나, 가리키며 신기하다고 한마디씩 던지고 간다”며 “그러고 나면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웃지만 성희롱을 당해 그날은 기분이 썩 좋지 않다”고 말했다.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했다고 응답한 대상자 중 56%가 특정 신체 부위에 대한 지나친 농담을 들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적극적인 대처도 하지 못하고 있다. 성희롱을 당했을 때 ‘참고 일했다’고 답한 비율이 7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손님이라는 이유로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욕설은 물론 성희롱까지 감수하며 일을 하고 있다.

 

일보다 컴플레인이 더 스트레스

산업이 발달하고 서비스업이 증가하면서 감정노동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1770만여 명의 국내 임금 근로자 가운데 최소 560만 명이 감정노동 종사자로 파악된다. 전체 근로자 열 명 중 세 명꼴이다. 많게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쯤 차지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런데도 이들의 스트레스 강도는 극심하다. 서비스 종사자라는 이유로 감정적 학대를 견뎌야 한다는 호소가 심각한 수준이다. 2013년 노동환경연구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히 여성 감정노동자의 약 절반이 우울증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의 약 30%는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했다.

이러한 우울증은 고객들의 컴플레인도 한 몫 했다.

지난해 12월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발생한 기내 난동 장면. (사진=리차드 막스 트위터 캡처)

고객만족도와 회사 이미지를 위해 서비스는 필요하지만, 과도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바로 컴플레인을 해버리는 고객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백화점에서 신발을 판매하고 있는 김재영(35·가명)씨는 “새 상품을 드렸는데 신발을 몇 번 신으신 뒤 가져와서 새것이 아니라며 환불을 요청하며 진심으로 사과를 하라고 한 고객이 있다. 죄송하다고 말을 했지만 1시간 넘게 매장에서 화를 내고 이후 컴플레인을 걸고 가셨다”라며 “그 이후로 컴플레인에 대해서 노이로제가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안전보건공단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임금 근로자 1700만 명 중 약 740만 명(43.5%)이 고객 상대 업무를 하루 절반 이상 수행하는 감정노동자다.

이처럼 고객들이 돈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에게 과도한 친절 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어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이들의 정신건강에 큰 위협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이 없음. (사진=우승민 기자)

한국고용정보원에서 국내 730여 개 직업별 경력 1년 이상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자료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직업으로 텔레마케터가 1위를 차지했다. 그 외 호텔 관리자, 요즘 많이 성행하고 있는 네일 아티스트, 그리고 중독 치료사, 주유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최근 전주의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여고생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월 한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고(故) 홍수연 양이 전주저수지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수연 양은 현장실습의 일환으로 지역 콜센터에서 상담사로 5개월째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즐겁게 일하던 수연 양은 콜 수를 채우지 못하면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해 힘들다는 사실을 종종 친구에게 토로한 것으로 드러났다.

콜센터는 서비스업 중 스트레스 강도가 가장 심각하다고 한다. 또한 콜센터 관계자는 “다른 서비스직에 비해 컴플레인 강도와 스트레스가 가장 큰 직업”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우울증에서 자살까지 이어지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고객의 불평·불만으로 불이익을 당한 감정노동자의 비율은 15%가 넘는다. 이 중 41%가 넘는 불이익 내용이 ‘남들 앞에서 모욕 주기’다. 감정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당하고, 가장 힘들어 하는 행위다.

그 밖에도 임금·성과급 등을 줄이는 등의 불이익을 주거나 상급자가 괴롭히는 경우, 고객 집으로 찾아가 사과하라고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악성 고객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할 때 ‘피할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고 답한 감정노동자가 96.5%, 악성 고객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답한 비율이 95%에 이르는 것을 보더라도 악성 고객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감정노동자들은 개선 대책을 절실하게 원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피해를 줄이겠다’며 2015년부터 각종 기업과 지자체가 폭언이나 성희롱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한 기업은 성희롱을 당했을 경우 회사 차원에서 경찰에 신고를 하기로 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놓았고, 한 지방자치단체는 콜센터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에 즉시 법적 조치를 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감정노동 피해는 건성으로 넘어갈 수 없는 사회문제다. 지난달 감정노동자의 적응장애와 우울증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이 개정됐다. 이런 법적 장치도 필요하지만 고통받는 감정노동자가 늘지 않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 언어폭력이나 일방적인 갑질을 거절하거나 법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감정노동자보호법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덮어놓고 고객이 최고라는 인식은 후진사회에서나 통한다. 사업주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무조건 고객이 왕일 수는 없다. 기업 스스로 직원들의 감정을 소중한 노동자원으로 인식하고 몰지각한 고객의 횡포에는 선을 긋도록 노력해야 한다. 제도적 보상보다 예방 노력이 몇 배 절실하다.

김준연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 관련 문제는 이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이슈로 통념화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는 국민 모두의 노력으로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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