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계 “국정교과서 폐지로 끝이 아니다, 남의 과제 많아”...2015 교육과정 재검토 촉구

역사학계·역사교육계 30개 학회는 지난 4월 28일 더불어민주당과 채결한 '국정역사교과서 폐기와 역사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한 정책협약서'를 성실히 이행해 줄 것을 문재인 정부에 촉구했다. (사진=역사정의실천연대 제공)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국정교과서 폐지로 끝이 아니다. 이는 역사를 바로세우고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국정교과서가 폐지되면 정부가 교과서 검정을 안 하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다. 현재 학교에서 사용하고 있는 모든 교과서는 정부가 만든 ‘교육과정’에 의해 집필된다. 이 ‘교육과정’에 따라 정부가 직접 집필하는 것이 국정교과서, 민간이 집필하는 것이 검정교과서다. 즉, 집필기준이 되는 그 모체는 동일하다. 따라서 ‘교육과정’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교육과정’의 편성권 자체를 학계에 이관해야만 비로소 정권의 개입이 없는 올바른 교과서가 탄생할 것이다. 폭넓은 토론을 거쳐 논란이 많은 교육과정 편성권은 물론이고 검정절차까지 개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 2년여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좋은 검정 교과서를 개발하여 교육현장에 보급해야 한다. 역사학계·역사교육계 30개 학회는 지난 4월 더불어민주당과 이런 내용이 담긴 정책협약서를 체결한 바 있다. 국민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새정부가 성실히 이행해 줄 것을 촉구하는 바다” (한상권 역사정의실천연대 대표)

“국정교과서 폐기는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기뻐하기는 이르다. 국정교과서가 폐지됐다 해서 역사교육이 제자리를 찾았다고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일명 ‘건국절 사관’이라 불리는 뉴라이트 사관이 담긴 2015 교육과정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정권에 따라 내용 변화를 겪었던 교육과정 중 가장 최악인 내용이 2015 교육과정이다. 일제강점기 서술이 축소돼고 독재가 미화되는 등 정치에 휘둘린 흔적이 역력하다. 2015 교육과정에 대한 학계의 재검토를 통해 새롭게 수정하고, 미래의 검정 교과서는 수정된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김태오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시한부 운명이 예고됐던 국정교과서가 결국 역사속으로 사라진다. 문 대통령은 12일 국정 역사교과서를 폐지를 지시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인 국정교과서 폐지를 주문한 것은 전임 정부의 환부들을 하나씩 도려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촛불민심은 1700만 촛불 항쟁의 성과라며 환영했다. 하지만 국정교과서 폐지를 위해 앞장섰던 단체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이들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국정교과서 폐지는 시작일 뿐 2015 교육과정 자체를 손봐 역사교육이 제 자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文, 교육분야 첫 업무로 ‘국정교과서 폐기’ 지시

문 대통령은 12일 교육분야 첫 업무지시는 ‘국정교과서 폐기’였다. 국정교과서는 정부에서 직접 교과서 집필자로 나서서 교과서를 발간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이름을 붙이며 예산 44억 원을 투입해 국정교과서 채택을 밀어 부쳤다. 검정교과서에서 반공과 관련된 서술은 지나치게 삭제됐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근무하는 위민관 내 집무실에서 교육분야 제1호 업무지시로 ‘국정 교과서 정상화’를 하달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교육부에 국·검정 혼용 체제를 검정체제로 즉각 수정 고시 지시할 것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윤영찬 수석은 “국정교과서는 구시대적인 획일적 역사 교육과 국민을 분열시키는 편 가르기의 상징”이라며 “이를 폐지하는 것은 더 이상 역사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교육부가 2018년부터 적용예정인 국·검정 혼용체제를 검정체제로의 전환을 즉각 수정고시할 것을 지시했다. 또 검정교과서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제반 사항을 점검하여 조치할 것을 당부하며, 검정 교과서 집필기간 확보를 위해 현행 2015교육과정 적용시기 변경을 위한 수정고시 등을 지시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교과서 밀어붙이기’로 비난 여론에 휩싸였던 교육부는 역사왜곡 논란과 갈등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앞서 교육부는 정권교체가 이뤄진 9일 홈페이지에 게재했던 국정 역사 교과서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책임졌던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도 이달 말께 해체예정이다.

아울러 역사 교과서를 국정과 검정, 두 가지 체제로 구분한 ‘중고등학교 교과용 도서 구분 고시’에서도 ‘국정’이란 부분이 삭제된다.

내년부터 국정과 검정 교과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 사용하도록 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도 검정 역사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수정될 방침이다.

 

국정화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 (사진=선초롱 기자)

전국역사교사모임 “건국절 사관 수정하려면 교육과정 늦춰야”

전국역사교사모임은 문 대통령의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 결정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개정한 ‘2015 육과정’에 담긴 ‘건국절’ 사관의 수정을 위해 새 교육과정의 적용시점을 늦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태오 전국역사교사모임 대표는 “국정교과서 폐기는 시작이며 2015 교육과정 자체를 손봐 역사교육이 제 자리를 찾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 정책이자 역사 퇴행의 결정판인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적극 반대해왔던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새 정부의 첫 교육 정책이 국정 폐지라는 점에서 적극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절대 다수의 역사교사와 역사학자가 반대한 국정교과서 추진은 이미 실패가 예견된 일이었다는 것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년이라는 졸속 제작으로 천 여건이 넘는 오류와 부실함이 드러났고, 권력의 입맛에 맞는 편향성 우려는 결국 현실화되어 ‘효도교과서’라는 오명을 받을 만큼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기에 급급했다”며 “그리하여 국민 대다수도 국정교과서로는 결코 올바른 역사교육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국정 폐지를 주장한 후보를 대통령에 당선시켰던 것이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일명 ‘건국절 사관’이라 불리는 뉴라이트 사관이 담긴 2015 교육과정은 여전히 그대로인 점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호시탐탐 역사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른다”며 “그러하기에 역사교육이 더 이상 정치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2015 역사과 교육과정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새롭게 수정되는 교육과정에는 친일과 독재 미화를 극복하고 평화와 인권 그리고 정의가 살아있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 새로운 검정교과서가 충실하게 개발되기 위해서는 집필 기간이 충분히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2015 개정 역사과 교육과정을 내년부터 성급하게 적용하기 보다는 2020년까지 유예하자는 제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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