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지영(사진=신현지 기자)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유태인의 속담 중에 이런 말이 있다.    God couldn’t be every where, so hecreated mothers

신이 어디에나 있을 수 없어서 엄마를 만들었다. 즉, 신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존재. 그가 바로 엄마다.

TV의 CF 출연, EBS의 FM 104,5 <시콘서트>의 금요일 코너 ‘스토리텔링 시를 만나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방송인 이지영 씨를 만났다. 1998년 CF모델을 시작해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배 PD 역으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알린 그녀는 요즘 송중기와 전기밥솥 TV광고 출연에 이어 EBS의 FM 104,5 <시콘서트>의 금요일 코너 ‘스토리텔링 시를 만나다’로 소설 낭독을 통해 청취자들을 만나고 있다.

22살의 결혼과 출산에도 당당히 연예계 진출한 만큼 당찬 성격과 활발한 CF 활동으로 시청자들에게 얼굴이 널리 알려진 그녀는 26살의 아들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풋풋한 소녀의 인상이었다. 특히 환하게 웃는 웃음은 구김살 하나 없어 그동안의 아픔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그녀는 엄마로서 차마 겪기 힘든 과정을, 또 그 아픔을 통해서 성숙해질 수밖에 없는 평범하지 않은 삶이었다. 그러니까 본지가 그녀와 만남을 청한 것은 연예인에 앞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슬기롭고 당차게 살아온 그녀의 삶을 소개하고자 하는 목적에서였다.

즉, 장애로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 그리고 용기를 주고자 하는 취지였다. 이지영 씨 역시 이러한 취지에 흔쾌히 솔직 담백하게 아이와의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아들 현승이와 함께

22살의 결혼과 출산, 아이의 악성 뇌종양

“저는 학교 졸업하자마자 직장생활을 했어요. 그리고 직장생활 얼마 안 있어 결혼을 했어요. 아이도 생각보다 일찍 생겼지요. 처음엔 몰랐어요. 아이가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BCG 접종하러 가서 알았어요. 아이가 악성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을요. 병원에서 뇌압이 높아 보인다고, 또 심장에서 물 흐르는 소리도 들린다고. 그래서 심장병인 줄 알았는데 뇌수종과 뇌종양이라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어요. 바로 큰 병원으로 옮겼는데, 병원에서 포기하라고, 엄마아빠가 젊은데 그냥 포기하라고 너무 쉽게 말을 했어요.

서울대 병원으로 옮겨 생후 45일 만에 뇌수종 수술을 먼저 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뇌종양과 동정맥기형이었어요. 혹이 한쪽 뇌를 누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는 그 때문에 고열에 시달렸고. 아이의 혈소판 수치가 너무 계속 떨어져 나중에는 우유조차도 먹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병원에서는 수술할 수 없다고 했어요. 어떻게든 아이를 살려야 하는데. 친정 부모님이 의사를 찾아가서 사정을 했어요.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니 그냥 수술만 해달라고. 그렇게 사정사정해서 아이가 16개월 되었을 때 동정맥 기형이라고 했던 큰 혹을 제거했어요. 그런데 진짜 전 그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수술받기로 한 날, 낮 12시에 수술이 잡혔는데 아이가 너무 울어 병실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복도를 서성이는데 어떤 분이 오셔서 기도를 해주고 싶다고. 그분이 비어있는 방을 찾아서 기도를 해주셨어요. 그런데 그렇게 울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수술실 들어가는 입구에서 빙그레 웃었어요. 그 모습이 마치 “엄마 걱정마세요”. 하는 것 같아서 기다리는 내내 울었어요. 낮 12시에 시작한 수술이 밤 12시에 끝났어요.

그 뒤 퇴원을 하고 두 달 후쯤부터 목도 가누지 못하던 아이가 기적처럼 걷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했어요. 종종 사람들은 연예인으로서 장애아들 공개가 어렵지 않았냐고 물어오는 데 전 절대 그렇지 않다고 했어요. 아이가 점점 나아지는 모습에 그저 감사하고 또 그것에서 감사할 이유가 생긴 것에 또 감사할 뿐이라고…”

문득 말을 끊고 호흡을 가다듬는 그녀의 얼굴에서 진한 고통의 흔적이 느껴졌다. 한참을 그렇게 숨을 삼키던 그녀가 붉어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고 다시 환한 웃음으로 말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자기에게는 다 소중한 일상이고 벅찬 행복이라고.

“아이가 5개월 되었을 무렵 까르르 웃더라고요. 전 그때의 감동은 평생 잊을 수가 없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이겠지만 전 한 발 한 발 발을 떼는 모습에도 눈물이 나올 만큼 감사했고 행복했어요.”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 올린 아이가 그렇게 나아지는 모습에 그녀는 벅찬 기쁨과 함께 문득 이 모든 게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문득 어쩌면 하나님께서 제게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런 시련을 주셨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전달하라는 뜻으로 생각이 되더라구요. 더구나 그분은 저희 현승이에게 음악적 달란트를 주셨어요. 그러니 하나님 기뻐하실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틈틈히 현승이랑 함께 기업체 강연이나 교회 간증을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요.”

아이의 음악적 재능 발견 후, 눈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음악을 들려줬다

“아이의 음악성을 처음 안 건 아이의 생후 6개월 즈음이었어요. 자장가를 불러주는데 아이가 제 노래에 맞춰 손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더라고요. 그 뒤로 아침에 눈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음악을 들려주었어요. 또 노래도 불러주고 교회며 음악회, 공연장, 음악이 있는 곳은 어디든 데리고 다녔어요. 음악치료도 함께 했고요. 그리고 초등학교 들어가서는 본격적으로 음악공부를 했어요.

같은 반의 여자아이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는데 현승이가 저도 다니겠다고 해서 보냈죠. 학원에 다닌 지 1달이 되었나? 아이가 어느 날 tv에서 들었던 음악을 그대로 치더라고요. 현승이는 악보 보는 건 그때까지는 좀 어려워했는데 대신 한 번 들었던 음악은 잘 잊어버리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현승이는 청음과 또 작곡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어요. 제가 그걸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어요. 비 오는 날이었는데, 비가 와 우울하다고 했더니, 현승이가 엄마 기운 내라며 피아노를 쳐주는데 깜짝 놀랐어요. 정말 듣기 좋은 음악이었어요.

그 뒤 음악 전공 교수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어요. 박영린 교수님인데 그 분이 저희 아이를 테스트 해보시고는 음악을 시켜보는 게 좋겠다고. 그 분의 도움으로 음악공부를 조금씩 시작했어요.”

친정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

나는 왜 친구들과 다르냐고 묻던 현승이, 실용음악과 건실한 청년으로 성장

아이가 지적장애 판정 3급을 받은 건 5살 때였는데 아이는 거의 정상적인 생활을 했어요. 그래서 일반학교를 보냈는데 6학년 때인가, 현승이가 나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르냐고 묻더라고요. 당황스럽더라고요. 뭐라고 말을 해줘야 할지. 그래서 그랬어요. 사람들은 다 똑같을 수 없다고, 그러니 네가 이상한 건 아니라고. 그리고 부족한 부분들은 노력하면 언젠가는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또 지금의 모든 상황들이 얼마나 감사한 순간들인지 모르니 감사하자고. 그 뒤로는 묻지 않았어요. 성격이 명랑해요. 자기주장이 강해서 좀 부딪치긴 하지만 그건 일반 아이들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요? 아이들도 각자 인격이 있으니. 친정엄마가 아이를 많이 봐주셨어요. 저 때문에 고생을 참 많이 하셨어요.

현승이가 고등학교는 통합교육학교에 다녔어요. 아이 대학 갈 무렵 현승이랑 채널A에서 다큐를 찍었는데 시청률이 상당했어요. 그 프로를 찍으면서 실용음악과 교수님을 알게 되었고요. 그분 소개로 1년 동안 하루 2시간씩 일주일에 3번 음악 레슨을 받았어요. 현승이가 많이 힘들어했어요. 그동안 안하던 공부를 하다보니.. 전 그때마다 넌 뭐든 할 수 있다고, 힘내라고, 넌 뭐든 할 수 있는 훌륭한 애라고 지속적인 격려를 해주었어요. 그런 과정들을 겪고 현승이는 나사렛대학교 실용음악과 작곡과에 단 한명 뽑는 수시에 합격이 되었죠.

하나님께서 그 아이를 가장 잘 키워줄 수 있는 사람에게 그 아이를 주신다.

“처음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께서 저 아이를 가장 잘 키워줄 수 있는 사람이 저인 걸 아시고 내게 보내시고 맡기셨구나 하는 생각요. 정말 아이와 열심히 살았어요. 덕분에 제 성격도 바뀌었고요. 전에는 좀 부정적이고 자신감이 부족했는데 지금은 매사 긍정적인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아이에게 매사 넌 할 수 있어 넌 할 수 있어 말하다 보니 저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기쁜 건 올해 초 신경정신 상담센터 테스트 결과 현승이가 거의 정상인에 가깝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음악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길...

활짝 웃는 얼굴인데도 눈시울이 붉어지는 그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녀는 주께서 현승이에게 음악이란 달란트를 주신만큼 앞으로 현승이가 음악으로써 많은 사람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는 일을 하도록 기도하며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특별히 장애 아이를 가진 부모들과 사회에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특별함보다는 마음의 배려가 더 중요

“보통 장애를 가진 부모들은 자신들의 잘못 때문에 아이가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심한 자책에 빠지는데 전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에게 아이를 맡기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서 그 아이를 가장 잘 보살펴 줄 수 있는 사람이 우리라는 걸 아시고 아이를 맡겨 주셨다는 생각요.

그러니 중압감에서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의 조력자로서 역할을 다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회도 마찬가지에요. 장애아를 특별하게 대해주려 말고 똑같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아이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거든요. 전 마음의 배려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실제로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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