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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환칼럼] 망건쓰다 장파할라
  • 구월환
  • 승인 2017.05.1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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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환 전 관훈클럽 총무/칼럼니스트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구월환] 망건을 쓰고 의관을 갖춘 다음 수염을 쓰다듬으며 근엄하게 외출하던 시절의 얘기지만 장에 가려고 망건을 쓰다가 시간이 다 갔다면 얼마나 허망했을까. 일에는 때가 있다. 타이밍이라고도 말한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타이밍을 놓치면 실패하기 쉽다.
비슷한 속담으로는 소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이 있다. 뿔이 식으면 굳어져서 뽑기 어렵다는 이치다. 서양 속담에도 햇볕이 날 때 건초를 말려라(Make hay while sun shines)는 말이 있다. 날씨는 항상 좋은 게 아니다. 비가 올 때도 있다.

 요즘 대선 후에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런 속담들이 떠오른다. 지금 국민들은 배가 고프다. 문재인대통령이 그동안 수없이 외쳤던 구호와 공약들을 상기하면서 목을 길게 늘여 빼고 무슨 좋은 메뉴가 나올까를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상차림은 고사하고 요리사도 안 보인다. 정부 구성이 언제 끝날지 대통령 자신도 알 수 없다. 청와대 구성은 그런대로 되어가고 있지만 총리와 장관은 아직 아무도 자리 잡지 못했다.
이런 사이에 북한은 보란 듯이 2천km나 솟아오른 신형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런 긴급사태를 맞아서 열린 청와대 국가안보회의에는 박근혜정부의 핵심들이 모였다. 어디로 보나 문재인 신정부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마음은 이미 떠나 있는 사람들이다.

 문재인호는 출발했지만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박근혜 사람들이다. 이런 황당한 사태는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것이다. 선장만 타고 나머지 승무원들은 한참 기다려야 한다. 내각제라면 이런 일이 없다. 이건 현행 대통령제 헌법의 한계다.
총리가 정해지려면 국회청문회와 본회의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 장관도 총리의 제청을 받아 지명한 후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정식으로 하자면 이낙연 총리후보자가 국회동의를 받은 후 장관제청을 하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래서 이낙연 후보자와 상의해서 장관을 지명하여 국회 청문회에 넘긴다는 애기인데 사실은 이것도 헌법규정에는 어긋나는 것이다. 헌법에는 엄연히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도록 되어 있지 후보자의 제청절차는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를 사그리 무시하고 장관을 지명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총리는 없었다. 이런 편법이 거듭되다 보니 이것이 관행이 되어버렸다. 위법이 합법처럼, 합법이 위법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현행 헌법을 곧이곧대로 따른다면 이미 한국의 권력구조는 이원집정부제에 가까운 분권적 구조다. 현행 헌법대로 총리가 장관을 인선해서 대통령에게 제청하게 되면 그런 총리는 그야말로 실세총리고 대통령과 권력을 나눠 갖는 분권총리다.
그러나 역대 총리는 그의 직속상관인 대통령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헌법상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 반납해왔다. 그러다보니 장관보다 못한 주사(主事)총리가 나왔고 바지저고리 총리로 전락했다. 총리의 장관제청권은 그저 정부문서의 결재란에만 존재했을 뿐이다.

 1948년 제헌국회의 구상은 원래 내각제였다. 그러나 이승만의 위력은 대단했다. 이미 대통령이 된 거나 마찬가지였던 그는 이런 헌법이라면 대통령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결국 이승만과 국회의 타협으로 대통령 밑에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총리를 두기로 한 것이다. 즉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혼합형 헌법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헌법규정에도 불구하고 역대 총리들이 알아서 기는 바람에 제왕적 대통령들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기는 한, 어떤 헌법도 제왕적 대통령제를 극복할 수 없다. 박근혜정부에서 총리와 장관들이 하던 행태를 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일국의 장관이라는 사람들이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말을 토씨 하나라도 놓칠세라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면서 받아 적던 모습, 그것이 오늘날 공무원의 현주소다. 헌법상 장관의 권력도 크지만 국무위원의 권력도 크다. 얼마든지 반대의사를 표명할 수 있고 토론하고 다툴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제 밥그릇을 챙긴 국무위원은 없었다. 수천수만의 부하 직원을 거느린 부처의 수장들이 그렇게 하는 모습을 본 하급자들 또한, 똑같이 받아 적기 행태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박근혜대통령의 입을 빌린 최순실의 말도 열심히 받아적어서 그대로 실천했을 것이다.

똑같은 폐단이 되풀이되서는 안된다.

구월환(丘月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전 연합통신 정치부장, 영국특파원, 논설위원, 상무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 주필
전 관훈클럽 총무
전 한국 신문방송 편집인협회 이사
전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전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구월환  kwh20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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