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에 재하청'...대한민국 고질병 '불평등 노동환경' 드러낸 인재
119 아닌 사내구조대 연락...유족 "초기 대응만 잘했어도 살았을 것"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삼성중공업의 크레인 사고는 사회 문제로 떠오른 노동 현실에 경종을 울렸다.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향상하기 위해 제정된’ 근로자의 날, 정규직 직원들은 휴무였고 비정규직인 하청업체 직원들만 근무를 하다 사고를 당했다. 크레인 사고가 난지 16일 만에 또 다시 화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고용노동부의 작업재개 조치 이틀만의 일로, 제대로 된 점검 없이 졸속적으로 작업 중지를 해지했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한국 경제의 최대 난제가 된 산재사고의 그늘. <뉴스포스트>는 근로자 6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를 통해 한국 사회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짚어봤다. <편집자 주>

 

(사진=뉴스포스트DB)

지난 1일 거제조선소에서 크레인 충돌사고로 30여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데 이어 17일에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거제조선소는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안전 관리를 실시했다.

지난 15일 안전현장 실현을 약속하며 작업을 재개했지만 불과 이틀 만에 또 다시 불미스러운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는 총체적 안전 부실을 떠안은 안전불감증의 온상으로 전락했다.

특히 이번 크레인 사고의 경우 사고 원인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골리앗 크레인과 타워 크레인의 충돌을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골리앗 크레인은 수백∼수천t이 나가는 컨테이너를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항만용 대형 크레인이다. 문틀 모양으로 되어 있어 아래쪽으로 차량 등이 지나갈 수 있으며 레일을 따라 직선으로 주행 가능하다.

타워 크레인은 골리앗 크레인 근처에서 생산 설비를 나르거나 자재, 파이프 등을 옮기는 역할을 한다. 타워 크레인 자체는 바닥에 고정돼 있으며 수평으로 길게 뻗은 붐대가 360도 회전하면서 중량물을 옮기는 방식이다.

조선소마다 세부적인 크레인 안전수칙을 세워 운영하고 있지만 통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수칙이 ‘타워크레인과 골리앗크레인 동시 작동 금지’다.

골리앗 크레인이 움직인다는 무전이 들리면 충돌을 피하기 위해 타워 크레인의 작동을 멈추거나, 골리앗 크레인 작동범위 밖으로 타워 크레인 붐대를 빼내야 한다.

때문에 업계에서는 이번 사고가 타워 크레인과 골리앗 크레인 충돌로 인해 발생했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시했다.

 

추위를 막기위헤 비닐 천막을 설치한 한국지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작업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상관없음 (사진=한국지엠지부 제공)

사고의 진짜 원인 - 위험의 외주화

사고는 두 크레인이 동시에 이동 할때 운전자 및 신호수가 의사소통이 적절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의사소통이 제대로 안 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에서는 안전업무의 외주화, 즉 하청화로 인한 사고라고 보고있다.

골리앗 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는 삼성중공업 정규직 노동자인 반면 타원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는 하청 노동자였다. 만약 두 크레인 작업자가 모두 정규직노동자였다면 작업을 위한 의사소통과 조정이 더 원활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안전사회시민연대 논평을 통해 “사고 날 타워크레인 운전자와 신호수 업무를 정규직 노동자가 수행했다면 좀더 철저한 현장관리와 일사 분란한 체계 확립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형 안전사고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안전업무 담당자를 정규직화 하고 이에 대한 합당한 대우와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공장은 다단계 하청 구조로 이뤄져 있다. 한 작업 공간 안에 여러 소속의 하청 노동자들이 일을 섞여 있다 보니 의사소통의 한계가 존재한다. 소속이 다른 노동자들이 작업 시간에 쫓기며 서로 다른 일을 진행하다 보니 소통이 안 되는 일도 부기지수며 피해는 온전히 노동자의 몫이다.

지난 4월 안전보건공단이 발표한 <원·하청 산업재해 통합통계 산출 실태조사>에 따르면 하청노동자의 사망사고 만인율은 0.39로 정규직 사망사고 만인율 0.05의 8배에 가깝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장의 생산직은 90% 이상이 하청 노동자들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열에 아홉 하청 노동자가 죽는 것이다.

민주노총 건설노동조합 크레인지부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공장의 생산직은 90% 이상이 하청, 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라며 “때문에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대부분 하청노동자가 다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장에서 하는 일들은 대부분 위험이 동반된다”며 “그럼에도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며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시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몇단계로 이어지는 다단계 재하청으로 소위 물량팀이라 부르는 최말단의 노동자들이 공사현장에서 죽어나가고 있다”며 “4대보험에도 미가입된 노동자가 많다보니 실업대책, 실업급여의 대상자체도 아니고, 원청 입장에서는 더욱 편하게 노동착취를 하는 셈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근속이 3개월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정규직이라 원청의 책임이 아니라는 법적 근거를 들어 안전 대책을 개선하려는 의지도 없다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피해를 키운 원인 - 산재 은폐 논란

한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은 OECD 국가 중 부동의 1위다.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에 가깝고 일본의 3배, 덴마크의 6배, 스웨덴의 9배, 영국의 14배 높은 수준이다. 요즘도 하루 평균 5명 정도가 산재로 사망하고 있으며 실제로 산재 사망자는 보고된 숫자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의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죽는 셈이다.

경제는 발전하는데 후진국형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의 고통이 왜 줄어들지 않고 있는가. 산업재해 건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기업들은 대책을 마련하기 보다는 은폐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삼성중공업 거제도 사건을 통해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삼성중공업은 사고가 발생한 뒤 119가 아닌 사내 구조대에 연락했다. 때문에 응급처지조차 부실하게 수행되고 생명구조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유족들은 지난 4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삼성중공업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시킬 때 항상 119가 아닌 삼성 자체구조단에 연락을 하라고 한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철저히 물어 달라”고 주장했다.

유족들은 먼저 출동한 사내구조대는 당황해 제대로 된 심폐소생술 조차 하지 못했고, 이동통로가 확보되지 않아 중상자들의 구조 시간이 지연됐다고 설명했다. 현장에 도착한 사내구조대는 제대로 된 구급장비도 없이 ‘우왕좌왕’하며 인명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기업들에게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사고 발생 시 즉시 119에 연락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이 이 같은 지침을 어겼는지에 대해서도 따져봐야 할 일이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보상정책국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응급 사고가 발생하면 119에 연락하는 것과 동시에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응급조치를 다 해야 할 의무도 있다"며 "삼성중공업이 이런 차원에서 본인들이 먼저 조치를 한 것인지 아니면 은폐를 위한 것이였는지 여부는 조사 과정을 통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은폐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면 형사 소송 과정의 양형에 반영이 되지 않겠냐"고 덧붙였다.

그간 사내 구조대와 사내 병원 이송 등은 신속한 빌미로 사고 은폐에 이용되어 왔다.

사고 조사를 경찰, 노동부에게만 맡기는 것은 진실 은폐, 왜곡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외부의 안전전문가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최근 5년간 안전 관리 실태를 포함한 진상을 철저히 조사하고 근본적인 안전대책과 재발방지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산재보험이 도입된 지 50년이 지났지만 기업들은 은폐를 통해 산재보험 수치를 낮추는 것에만 신경 쓸 뿐 안전한 작업장 환경을 만드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대표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국내 산재보험의 제도적인 문제를 근절해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상윤 대표는 “산업재해 발생 빈도에 따라 보험요율을 감면해주는 ‘개별실적요율제’는 기업들이 산재사고를 은폐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며 “도입 취지를 기업이 자발적으로 산재예방에 힘쓰도록 하기 위한 인센티브제도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산재 발생 정도에 따라 최대 50%까지 보험료를 감면해주다 보니 산재은폐를 위한 계기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산재보험 대상이 아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산재를 당하더라도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기에 상대적으로 위험작업들을 떠안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개별실적요율제’는 통해 2014년 한해만 1조 1,376억원의 산재보험료 할인의 혜택이 삼성과 현대, LG, SK 등 20대 대기업에게 돌아갔다. ‘제2의 대기업 특혜’, ‘제2의 대기업 보너스’라는 지적과 비판에 대해 정부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또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기준은 엄격한 것도 문제”라며 “산재를 받기위해 입증해야 하는 자료들이 많고 복잡해 시간에  산재를 신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산재를 막기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주와 이를 방치한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행 법체계로는 산재가 발생해도 경영자에게 형사책임을 묻기 어려워 중간관리자에게 처벌을 내리는 데 그치고 있다. 영국과 캐나다 등은 인명 사고에 경영책임자와 기업의 형사책임을 묻는 이른바 ‘기업살인법’을 시행하고 있다. 

아울러 위험 업무의 외주화를 금지하고, 병원 신고제 등으로 산재 은폐를 원천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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