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근로자 의견 배제된 졸속 정규직 전환, 정부정책 고민 없이 순응하는 전형적인 공공기관의 구태”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지난 25일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이라는 제목의 예금보험공사 측 자료가 언론에 배포됐다.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기조에 맞춰 비정규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으로, 얼핏 보면 예금보험공사가 고용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멀다는 게 노조 측의 주장이다.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에서 비롯된 노사갈등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데다 이번 정규직 전환 과정에도 근로자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에 따라 ‘친박’으로 불리는 곽범국 사장의 교체가능성이 거론되자 재빨리 정부의 주문에 화답하며 자리보전에 나선 것 아니겠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형구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위원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이번 정규직 전환은 정부정책에 고민없이 순응하는 전형적인 공공기관의 구태에 불과하다”며 “이런 눈치보기식 경영에 앞서 고용환경 개선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공기업 본연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뉴스포스트DB)

정규직 전환,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가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기조에 맞춰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을 조기에 추진한다고 밝혔다. 전환 대상은 상시·지속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로, 저축은행 구조조정 관련 한시적 회수업무를 위해 고용한 인력(79명)은 제외된다.

예보에 따르면 현재 근무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 인원은 63명이다. 예보는 우선 직접 고용 중인 비정규직 근로자 14명이 수행하는 업무의 성격을 검토해 상시적 수행을 위해 필요한 인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또 파견제법에 따라 활용하고 있는 간접고용 근로자 49명에 대해서도 정부지침이 나오는 대로 상시·지속 업무의 정규직 전환을 적극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이에 대해 노조는 “전형적인 정부 눈치보기식 경영의 산물”이라며 반발했다. 정권교체기, 자리보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이 미비한데다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한형구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위원장은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직원들의 의견은 무시한 채 이뤄진 정규직 전환의 수요 산정과 방안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며 “건물 내 청소부, 경비, 관리자 등은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구체적인 실천 방안도 없다”고 지적했다.

예보의 보도 자료에는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정부 지침이 나오는 대로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식의 애매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새 정부의 기조에 맞춰나가겠다는 의사 표명을 통해 금융권의 수장 교체 바람을 피하겠다는 곽범국 사장의 의중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한 위원장은 “사측은 경영에 대한 중심도 못 잡고 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다”며 “성과연봉제도 박근혜 정부의 정책에 떠밀려 가장먼저 도입하더니 이번에도 경영평가를 위해 졸속적인 정규직 전환 방침을 발표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제도가 회사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도 없이 정부가 시키는 대로 수동적으로 움직인 결과 예보에 ‘정부정책 선도 기관’이라는 이미지가 따라 붙었다”며 “결국 소신 없는 경영진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고 비난했다.

예보는 정규직 전환과 곽 사장의 자리 보전은 무관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예보 관계자 이모씨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공공기관은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새 정부의 기조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예보 뿐 아니라 모든 공공기관이 마찬가지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정부의 정책 기조에 맞춰 예산 내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할 결과 직접 고용한 범위 내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간접 고용한 직원도 정규직 전환을 할 수 있을지는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야하기 때문에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은 지난달 26일 성과연봉제 폐지를 요구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 제공)

성과연봉제 어찌하나 ‘딜레마’

예보는 박근혜 정부 시절 금융공기업 중 가장 먼저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당시 노조의 강한 반발에도 추진을 강행한 예보는 ‘도입 1호’라는 성과를 올려 기획재정부로부터 기본 월봉의 20%(직원 당 평균 60만 원)에 달하는 인센티브를 받았다.

하지만 노조는 전 노조위원장과 곽 사장의 단독 합의로 성과연봉제가 확대 시행됐다며 재검토와 폐지를 촉구하고 있다. 노조는 성과연봉제를 폐지한다면 지난해 지급받은 성과보수도 즉각 반납하겠다며 사측과 대치중이다.

지난해 성과연봉제 도입 당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투표자 406명 중 250명(62.7%)이 반대해 성과연봉제 도입이 무산되는 듯했다. 그러나 전 위원장은 이를 뒤집고 사측과 성과연봉제 확대에 독단적으로 합의했다.

합의 며칠 뒤 전 위원장은 “조직에 대한 ​정부의 ​불편한 시선을 우려해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못했다”는 의미심장한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이어 지난해 9월 일신상의 이유로 위원장직을 돌연 사퇴했다.

한 위원장은 “현재는 조합원 대부분이 성과연봉제 유지에 반대하고 있다”며 “최근 설문조사에 응한 노조원 358명 전원이 성과연봉제 폐지에 찬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과연봉제 노사합의의 법적효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노조원의 진정한 동의 없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떨어진다”며 “새 정부의 성과연봉제 폐지방침이 밝혀진 만큼 불합리한 부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노사 간 공방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노조 동의 없는 성과연봉제는 무효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이 펼쳐졌다. 여기에 새 정부가 성과연봉제 폐기 검토에 나서면서 예보의 입장이 더욱 곤란해 졌다.

이와 관련 예보는 노사 합의에 법적 절차상 문제점은 없다고 일축했다.

예보 관계자는 이모씨는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은 정당한 대표권한을 가진 기관장과 노조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합의”라며 “강요가 있었다는 것은 노조의 일방적인 주장이다”고 반박했다.

성과연봉제의 노사 재협상 여부에 대해서는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정부 정책이 변경된다면 노조와 새로이 교섭하고 합의 변경사항을 규정에 반영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친박계’ 곽범국 사장, 교체될까

곽 사장의 자리도 좌불안석이다. 전임 박근혜 정부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는데다 예보를 둘러싼 일련의 잡음들로 인해 회사 안팎에서 그의 경영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곽 사장의 임기는 2018년 5월까지로 아직 1년 가량 남아 있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이어지며 그 사이 국내 정세가 급변했다.

이에 따라 새누리당 출신의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곽 사장이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도 불투명해졌다. 

지난 2015년 10월 예보 사장 자리에 오른 곽 사장은 취임 당시부터 ‘모피아’ 논란에 휩싸였다. 곽 사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국가 경제정책을 이끄는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을 맡았고, 새누리당 기획재정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공공기관장의 대대적인 교체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그러나 예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적폐청산으로 삼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최초로 도입한 기업으로 다른 금융공공기관에 비해 여러모로 기관장 교체 가능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또한 새 정부가 노조문제에 상당히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것도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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