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배의 포스트데팩토] 낙점(落點)과 인사청문회

[뉴스포스트=김경배 국장] 고려를 흔히 귀족사회라고 한다. 고려 때 대표적인 관료 등용제도로는 과거제와 음서제를 들 수 있다. 특히 개국 공신의 자손이거나 왕가의 친척 자손, 그리고 5품 이상의 고관들의 자손은 음서제를 통해 과거를 거치지 않고 바로 관직에 오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권력을 세습하였다.
고려 초기 개국 공신들의 힘의 강함을 의식한 광종이 중국 후주(後周)출신 쌍기의 건의로 과거제도를 시행하여 이를 타파하려 했지만 각 지역 호족들인 이들 개국 공신들은 문벌귀족으로 거듭나고 이후 무신과 권문세족을 거쳐 사대부가 정권을 장악하여 고려시대를 이끌어 가는데 이들이 바로 고려의 귀족이며 이 때문에 고려를 귀족사회라고 한다.

반면 조선시대는 양반사회라고 말한다. 물론 고려의 대표적 관리등용제인 음서제도 역시 조선시대에 존재했다. 하지만 고려조의 경우 벼슬의 세습이 5품 이상인 반면 조선은 2품 이상으로 제한되어 관리등용에 있어 고려 때보다 상대적으로 과거의 중요성이 커졌다.
조선시대에 모든 양반들이 과거시험에 기를 쓰는 까닭도 바로 이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과거시험은 바로 관직으로 나가는 등용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위직의 경우 수많은 인사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낙점(落點)이다.

낙점이란 인사를 담당한 이조나 병조에서 비삼망(備三望)이라 해서 3명을 추천하여 왕에게 올리면 왕이 자신의 의중에 드는 1명의 이름 위에 점을 찍어서 뽑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인사체제와 매우 흡사하며 그만큼 조선의 정치체제가 선진화된 사회였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왕권과 신권의 타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도 신하와 협의가 되지 않으면 함부로 인사권을 행사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신권이 강하거나 왕권이 강하면 이 같은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

단종을 폐위하고 왕권을 잡은 세조의 경우, 이조에서 비삼망을 올리면 붓으로 묽은 먹물을 찍어 그 먹물이 떨어지는 이름의 사람을 등용하거나 때로는 궁인들 가운데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시켜 무작위로 낙점케 하기도 했다.
이미 세조가 원하는 인물이 3배수로 올라왔기 때문에 아무나 선택해도 자기 사람이었던 까닭이다. 광해군의 경우 이조판서의 낙점 과정에서 비삼망이 마음에 들지 않자 의도적으로 계속 망을 올리게 하여 결국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인물을 낙점했다고도 한다.

물론 이 같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낙점으로 인해 인사 정책에 신하들의 의도가 상당히 많이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낙점은 조선중기를 넘어가면서 치열한 당쟁으로 인해 오히려 각 당파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경향이 심해졌다.
낙점과는 달리 구전(口傳), 또는 구전정사(口傳政事)라는 인사 방식도 있다. 정식절차를 거치지 않고 관직 후보자를 추천·임명하는 것인데 대신이나 관사(官司), 지휘관이 왕에게 추천하여 재가를 받는 방식이다. 대체로 지방관·사신·임시직·하급관직·군관은 이 같은 방법으로 임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구전은 왕의 독단에 따른 폐단을 막는다는 취지로 시행되었지만, 시행 과정에서 관료의 추천을 정부기구가 관리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진행하게 되어 일부 집권층이 인사권을 장악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제수(除授)라는 것도 있다. 이는 대상 인물들을 추천받아 그중에서 마땅한 자를 해당 관리직에 임명하는 절차인 천거를 거치지 않고, 왕이 직접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 현재의 관직을 해임하고 새로운 관직을 내려 취임시킨다는 것이나 일반적으로 왕이 관리를 임명하는 모든 행위를 제수라고 했다.

최근 이낙연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하여 정식으로 국무총리 직을 수행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의 또 다른 인사들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받고 있다. 이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야권에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무난한 통과가 예상되는 이들도 있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벌어지는 인사청문회는 특히, 정권교체기란 측면에서 한편으로 가혹한 검증이 필요하기도 하다. 특히 국정농단파문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같은 과정을 점철하지 않으려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다.

다만 그 검증이 조선시대처럼 당파의 이익에 우선하지 않은 당리당락을 떠난 제대로 된 인사검증이어야 하지 않을까. 국가발전의 원동력은 인사(人事)에 달려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