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균우유는 영양소가 부족하다?"...오해와 진실에 대해 발로 뛰는 '팩트체크'

(사진=박은미 기자)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우유 당번이 들고 오던 ‘초록색 플라스틱 박스’를 기억할 것이다. 2교시가 끝나면 당번들은 급식소에 가서 200ml 우유가 담겨있는 초록색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교실까지 올라왔다. 당번이 박스를 교실에 탁 내려놓으면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자기 것을 골라 집어 들었다. 때때로 몇몇 아이들이 먹다 남은 우유가 책상 서랍에 방치돼 교실에 역한 냄새가 진동하기도 했다. 마법의 가루인 초코분말로 흰 우유를 초코우유로 만들어 먹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렇듯 국민 대다수가 어려서부터 매일 마셔온 우유는 저마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가 됐다. 

우유에 대한 친밀도와 호감도가 높아지면서, 우유는 자연스럽게 ‘국민건강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우유에는 성장을 돕는 단백질뿐 아니라 비타민·미네랄·탄수화물 등 120가지 영양 성분이 골고루 들어 있다. 우유를 ‘완전식품’으로 일컫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먹거리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과 니즈가 늘어나면서 우유도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맛의 차별화 바람과 더불어 저지방우유, 강화우유, 멸균우유 등 가공방법 또한 다양해졌다.

우유의 변신 덕에 몇몇 헤프닝도 발생했다. 1978년 멸균우유가 처음 나왔을 당시 방부제를 첨가한 게 아니냐는 오해가 많았다. 우유가 실온에서 1개월이나 방치되었음에도 부패 되지 않는 것은 당시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균을 박멸해 유통기한을 늘렸다는 점이 알려지자 또 다른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멸균우유는 우리 몸에 유익한 균까지 모두 제거한 제품이라 영양학적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멸균우유 특유의 고소한 뒷맛이 좋지만 ‘영양소가 파괴된 우유’라는 지적에 구입을 꺼리는 소비자들도 등장했다. 이에 <뉴스포스트>는 핵심 쟁점인 유익균 파괴 여부를 비롯, 멸균우유의 영양소를 둘러싼 소비자들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팩트체크’에 나섰다. 

 

멸균우유와 일반우유의 ‘일장일단’

우유 값 인상에 따라 일반우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멸균우유가 주목을 받고 있다. 현재 일반우유는 대형마트 기준 ℓ당 2550원~2850에 판매되고 있으나 멸균우유는 2000원 초반으로 가격이 책정돼 있다. 착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멸균우유는 일반우유보다 영양학적으로 떨어진다는 우려 때문에 구입을 꺼리는 심리도 생겨났다. 

우리가 사먹는 일반우유는 정확히 표현하자면 ‘살균우유’다. 모든 원유는 인체에 유해한 병원성 미생물을 사멸시키기 위해 살균처리 과정을 거친다. 일반우유는 원유가 함유하고 있는 영양분의 손실을 최소화 하는 범위인 63℃에서 135℃ 정도의 온도에서 열처리 한다. 

원유 본연의 신선한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게 장점이다. 다만 식품을 부패시키는 비병원성 미생물은 남아있어 냉장보관 해 운반해야 함으로 멸균우유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유통기한은 냉장보관 기준 7~14일 정도다.

반면 멸균우유는 이보다 더 높은 최고 150℃의 고온에서 살균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미생물이 제거된다. 여기에 빛과 공기를 차단하는 테트라팩에 담기 때문에 상온에서도 1개월 이상 보관 가능하다. 보관이 쉬운만큼 대량 구매도 가능해 휴대용 또는 비상식량으로 적합하다. 물론 개봉 후에는 일반우유와 마찬가지로 10℃이하에서 냉장보관하고 가능한 한 빨리 마시는 것이 좋다.

 

UHT법으로 가공된 일반우유(좌)와 상대적으로 더 고온에서 가공된 멸균우유(우) (사진=박은미 기자)

가공 방법 들여다보기

일반우유와 멸균우유의 가장 큰 차이는 살균 방법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채소를 약한 불에 오랫동안 데친 것과 강한 불에 단시간 데친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우유의 살균방법은 저온장시간살균법(63~65℃로 30분간 살균), 고온단시간살균법(72~75℃로 15~20초간 살균), 초고온순간살균법(130~150℃로 0.5~5초간 살균)으로 나뉜다.

저온장시간살균법(low temperature long time pasteurization, LTLT)은 62∼65℃에서 30분간 가열하는 방식으로 크림, 쥬스 등의 살균에도 이용된다. 원유의 풍미와 세균류의 잔존율을 높일 경우에 효과적이다. 즉 모든 병원성 미생물(숙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미생물)을 죽이면서도 영양소 파괴는 최소화하는 공법이다. 다만 부패균 등 일부 비병원성 미생물(감염성이 없거나 또는 감염하여도 발병까지에 이르지 않는 미생물)은 죽이지 못하므로 부패하기 쉬어 꼭 냉장보관해야 한다.

1987년 파스퇴르 브랜드가 국내 최초 저온살균우유를 선보이며 유명세를 탔다. 파스퇴르 우유는 1860년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가 만들어 ‘파스퇴르 법’이라 불리는 LTLT법으로 만든 우유다. 파스퇴르는 원유를 1,475m의 긴 관에 통과시켜 정확하게 63°C에서 30분간 천천히 살균처리 한다.

고온단시간살균법 (High Temperature Short Time Pasteurization, HTST)은 72∼82℃에서 15∼20초간 가열 유지하는 방법이다. 가열과 냉각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량의 우유를 단시간 살균 할 수 있다. 비병원성 미생물도 거의 사멸된다. 서울대 목장우유, 강원 청정목장 우유, 건국 헬스플러스, 동원F&B 덴마크우유, 연세골드우유 등이 HTST법을 적용한 제품이다.

초고온순간살균법(ultra high temperature short timemethod, UHT)은 130∼135℃의 고온 에서 1∼2초간 살균한다. 대량의 우유를 단시간에 연속적으로 처리 가능해 보관성도 높다. 건국, 서울, 남양, 매일, 빙그레 등 현재 국내 기업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방법이다.

HTST법이 균의 감소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비하여 이 방법은 무균상태 가까이 멸균을 시키는 방법입니다. 특히 UHT법에 의한 가열에서는 수용성 비타민인 비타민C가 거의 파괴된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황인경 교수팀에 따르면 유통되고 있는 우유의 고온살균 전후의 비타민 잔존량을 비교 분석한 결과, 비타민이 고열 살균과정에서 최하 9.45%부터 최고 76%까지 파괴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멸균우유는 병원성, 비병원성을 포함한 모든 미생물을 사멸하는 방식이다. UHT법보다 더 고온인 135~150℃에서 2~5초간 멸균처리 한다. 유해균이든 유익균이든 간에 모든 균을 싹 없애버리기 때문에 부패 속도가 늦어 실온에서 보관 가능하다. 멸균우유는 포장에 ‘멸균 제품’이라고 명시해야 한다.

 

일반우유(좌)와 멸균우유(우)의 주요 영양성분표 (사진=박은미 기자)

영양소 차이, 있다 없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두 제품의 영양학적인 차이는 없다. 멸균우유가 일반우유에 비해 이론상 풍미나 유익균 등이 떨어질 수는 있으나 실질적인 차이는 없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멸균 과정을 거치더라도 칼슘, 지방, 탄수화물 등 우유의 주 영양소는 파괴되지 않는다. 다만 고온에 민감한 일부 비타민, 무기질과 소량의 유익균이 줄어들 수는 있다.

서울대 식품생명공학과 최영진 교수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과거 멸균우유의 영양소가 일반우유에 비해 떨어진다는 논쟁이 있었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시중에 유통된 우유는 첨단살균법을 통해 인체에 유해한 병원성 미생물만 죽이고 영양소는 파괴되지 않을 만큼만 처리한 제품이다”고 말했다.

이어 “큰 저장고에 원유를 넣어 가열하는 것이 아니라 가열판으로 열을 전달하거나 긴 관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순식간에 가열한다”며 “때문에 원유에 담겨있는 기본 영양소 파괴를 우려할 만큼의 노출은 없다”고 설명했다. 온도에 따른 영양소 파괴 기준에 맞춰 우유를 가열하기 때문에 파괴되는 영양소가 없다는 뜻이다.

업계 또한 영양소 차이는 없다고 설명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멸균우유는 저장성에 초점을 맞춰 출시된 제품이다”며 “제조공정이 다를 뿐, 보존료 등의 첨가물도 전혀 사용되지 않으며 영양소도 일반 우유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열 온도와 시간차가 우유의 기본 영양소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멸균우유와 일반우유의 주요 영양성분표를 비교한 결과 동일했다.

 

(사진=뉴스포스트DB)

멸균우유, 원유 속 유익균까지 죽일까?

멸균우유와 일반우유의 영양소 차이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우유에 소량 포함돼 있는 유익균 등의 함량도 동일한 것일까? 

더 높은 온도에서 가열이 이뤄질 수록 균의 파괴양은 많아진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상대적으로 고온에서 가공되는 멸균우유가 일반우유보다 유익균이 적을 수 밖에 없다. 

학계에서는 멸균 과정을 거치는 동안 고온에 민감한 일부 비타민과 유익균 등은 줄어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세균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건강한 젖소에서 바로 짠 원유의 세균 수는 1ml당 500∼1,000개 정도다. 하지만 우유가 착유기에서 관을 통하여 탱크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세균수는 10배 이상 증가한다.

최 교수는 “병원성 미생물에 의해 오염된 우유는 다른 어떤 식품보다도 사람에게 많은 전염병을 옮긴다”며 “병원성 미생물로는 병원균, 결핵균(인형 및 우형), 브루셀라균, 탄저균, 살모넬라균, 연쇄상구균, 포도상구균, Q열의 리켓치아, 디프테리아 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대부분은 가열에 의하여 사멸되므로 열처리를 철저히 해야 하며 살균보다 높은 온도에서 이뤄지는 멸균의 경우 유익균도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멸균우유와 일반우유의 유익균 잔존량 차이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없는 논쟁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고온에서 가열할 시 균의 파괴속도가 빨라지는 것은 사실이다”며 “다만 파괴된 양을 정확히 따져보려면 원유가 열에 노출되는 시간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빠른 속도로 단시간 파괴되냐 느린 속도로 장시간 파괴되냐의 차이”라며 “결과적으로 유익균 잔존량은 멸균우유나 일반우유나 비슷하다는 실험결과가 있다”고 말했다. 63~65℃로 30분간 가열하나, 150℃에서 3초간 가열하나 유익균 잔존량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한성림 교수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원유 속 세균 중 유익균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부터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멸균처리의 목적은 유익균을 살려두는 게 아니라 유해균을 죽이는데 있다”며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는 말이 있듯 우유 속에 있는 극소수의 유익균을 섭취하기 위해 유해균까지 살려둘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마다 균이 인체에 작용하는 영향이 다른 만큼 예민한 사람이라면 안전을 위해 균이 아예 없는 멸균우유를 먹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 전문가들은 멸균우유, 일반우유 구분 없이 갓 나온 신선한 우유를 먹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았다. 결론은 맛에 대한 개인의 취향과 용처에 따라 구매하는 것이 정답이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