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창 의원 대표발의,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과 추모 재조명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한 충북 단양군 영춘면 상리 곡계굴의 최근 현장모습(사진=뉴시스/뉴스포스트)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단양군 곡계굴 사건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과 추모에 관한 법률안(발의:권석창 의원 등 10인)

1951년 한국전쟁 중 미공군의 공중폭격으로 인해 무고하게 희생된 양민 희생자와 그 유가족들의 명예회복과 보상, 추모사업 등 지원을 위한 제도를 담고 있는 법률안

 

호국의달인 6월,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의 희생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은 물론 이에 대한 적절한 추모와 보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도 법을 통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지난 6일 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충북 제천·단양)이 대표발의 한 ‘단양군 곡계굴 사건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과 추모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번 법률안 발의에 권 의원을 비롯해 경대수·김명연·김성원·박덕흠·윤상현·윤한홍·이양수·이우현·홍문종 등 한국당 소속 10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단양군 곡계굴 사건은 무고한 양민 300여명 이상이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그 희생자에 대한 역사적 진실규명은 물론 희생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위로 기념사업 하나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권 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곡계굴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지원근거법률이 지금까지 없어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기념사업 하나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며 “이번 계기를 통해 국민들에게 단양군 곡계굴 사건의 진실을 바르게 알리고,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후손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고 법안 발의배경을 밝혔다.

 

곡계굴 사건은?

 

제2의 노근리 사건이라 불리는 곡계굴 사건은 당시 미군에 의해 민간인이 학살당한 사건으로 알려져 왔다.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지난 2003년 곡계굴 사건을 “한국전쟁 시기인 지난 1951년 1월 20일 폭격을 피해 곡계굴에 은신해 있던 영춘면 상2리 주민 100여명과 인근지역 피난민 300여 명 등 400여 명이 미군의 폭격과 기총소사로 학살당한 사건”으로 규정했다. 또 당시 50여명이 가까스로 살아나왔지만 그 직후나 이후 대부분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곡계굴 사건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지난 2010년 ‘희생된 사실이 확인 또는 추정된 사람은 최소 106명이고 이 중 희생자 58명, 희생 추정자 48명’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2004년 특별법이 만들어진 노근리사건과 달리 지원 근거 법률이 없어 현재까지도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한 기념 사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곡계굴희생자대책위원회는 해마다 음력 12월12일에 맞춰 사건 현장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내는 것이 전부다.

 

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

법안의 주요 내용은?

 

이에 법률안에서는 ▲민간인 희생자 진상규명 ▲희생자의 유해 발굴과 추모사업 ▲민간인 희생자의 명예회복 ▲의료지원금 등 ▲곡계굴 사건과 관련한 추모사업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

세부적으로 보면 우선 민간인 희생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 등에 대한 명예회복, 추모사업 및 보상금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국무총리 소속으로 ‘민간인 희생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위원회는 그 구성을 마친 날부터 6년 이내에 민간인 희생사건 관련 자료의 수집 및 분석을 완료하고, 진상규명보고서를 작성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한다.

또 국가는 민간인 희생자 및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지속적인 치료 등이 필요한 사람에게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한편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단을 설치하여 희생자 유해의 조사·발굴 및 신원확인 등의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국가는 희생자 유해 봉안시설 마련, 추모평화공원 조성 및 기념사업 등 추모사업의 방안을 마련하고 비용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위탁할 과거사재단을 설립하는 내용을 담았다.

 

변화한 시대상황, 법제화 발판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희생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꾸준히 국회를 통한 법제화 움직임이 있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못해왔다.

특히 법제화 과정에서 이념과 비용의 문제는 언제나 큰 난제였다.

거창 양민학살사건도 지난 1996년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 조치법’이 제정됐지만 보상 관련 조항이 제외되는 등 많은 미비점이 지적됐다. 당시 정부 측은 이미 시효가 지나 국가 배상 의무가 소멸했다는 입장을 내세웠고 이에 유족들이 2001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다. 이후 2004년 3월 실질적인 보상을 규정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정부는 한국전쟁 관련 배상 법안이 잇따라 통과될 경우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 아직까지 제자리 걸음을 걷고 있다.

이후 그나마 법률로서 성과를 낸 것도 ‘노근리사건’ 정도다. AP통신의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 노근리사건은 16대 국회에서 ‘노근리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을 당시 한나라당 심규철(보은·옥천·영동) 의원 등 35명의 발의로 2004년 3월5일 제정·공포되면서 제도적 뒷받침을 받게 됐다.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유감 표명 성명을 내고 학살 현장 인근에 13만 2,200㎡ 규모의 노근리평화공원을 조성해 위령제를 여는 등 추모 환경을 조성했다. 다만 여전히 미국 측의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등 풀어야할 숙제는 남아있다.

권석창 의원실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에 “사실상 이념의 문제보다 막대한 비용 문제로 정부가 부정적 입장을 내비쳐왔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은 시대상황과 그 당시 국민들의 뜻을 담는 것”이라며 “시대상황이 바뀌고 있어 이번 법률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과거사 보상 물꼬 기대

 

특히 이 법안에서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민간인 희생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 회복 위원회’ 설치 조항을 담아 내면서 여전 진실규명과 보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타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 사건에 미칠 영향력도 주목받고 있다.

권 의원실 관계자는 “이번 발의는 사건의 진실을 밝혀 희생자·유족 등의 명예 회복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전쟁 전후의 다른 민간인 희생 사건도 대상”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2006년 4월부터 2010년 6월까지 4년 2개월간 민간 희생자 유해 발굴·명예 회복, 추모사업 등의 활동을 했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2기 출범으로 보고 있다.

또 앞서 지난 3월 이개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사건 등 과거사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기본법안’을 대표발의하는 등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제정 움직임과 맞물려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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