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환 전 관훈클럽 총무/칼럼니스트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구월환] 5.9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인사장벽에 가로막혀 애를 먹고 있다. 일자리와 안보문제 등 현안은 산적해 있고 약속한 개혁에 대한 기대도 큰데 국정운영 체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제일 시급한 장관은 3분의 2정도가 지명된 상태고 이들이 국회인사청문회라는 허들을 통과하여 자기 의자에 앉으려면 아직 멀었다.
인사청문회에서 별의별 폭로와 추궁으로 팔자에 없는 망신을 당하고서도 아웃당한다면 그야말로 인생일대의 수치이며 이건 상처뿐인 영광도 아니다. 물론 ‘깜’이 안 되는 장관후보라면 낙마가 지당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여야간 정략의 제물이 되는 억울한 경우도 나올 수 있다.

새 대통령의 정부구성이 늦어지는 것은 현재의 정치구도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것이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프랑스 정치에서 보듯이 만약 대통령선거에 이어 총선이 실시된다면 유권자들이 정권의 안정을 위해 표를 몰아주기 때문에 새 대통령의 정부구성이나 국정추진은 훨씬 쉬울 것이다.
박근혜-새누리정권 시절의 국회를 갖고 일을 하려니 도처에서 막혀 천만촛불을 등에 업고도 쩔쩔매는 형국이다. 프랑스식으로 지금 당장 총선을 한다면 여당인 민주당은 아마 200석을 훨씬 넘는 대승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건 인사 5원칙이란 것도 비현실적이란 것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이 땅에서 살아온 선량한 사람들도 이 5원칙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어떤 양심적인 여당의원은 이 잣대를 들이대면 여기에 안 걸릴 국회의원도 다 걸린다고 공언하고 있다. 거꾸로 말하면 위장전입이나 세금탈루, 논문표절 등을 포함하여 5원칙 위반자들이 앉아서 장관 후보자들에게 큰 소리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소야대 국회의 인사청문회 난관을 거쳐 정부구성을 마치더라도 현재의 국회제도로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수행도 어렵게 될 것이다. 검찰개혁 하나만 하더라도 그렇다. 예를 들어 검찰개혁을 위해 제일 먼저 거론되는 공수처(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는 국회입법 과정을 거쳐야 하는 문제다.
그런도 여야합의가 없는 경우에는 국회의석 5분의3 이상 찬성을 얻어야만 법안을 상정할 수 있다. 이 조항은 국회 내에서의 여야충돌로 인한 폭력사태가 국민의 지탄을 받고 국제적인 웃음거리가 되자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만들어낸 자구적 궁여지책이다.
5분의3이라는 조항은 효율적인 국가운영을 막는 주범이요 한국판 입법산성(立法山城)으로서 시급히 철폐되어야 한다. 이것이 버티고 있는 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도 곧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이 장벽을 극복하려면 또다시 광화문에서 대대적인 촛불을 밝혀야 하는데 정치적 대중동원에는 반작용도 따르는 법이어서 정치혼란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런 비효율적 장벽은 말할 것도 없이 여야 정치인들의 민주적 소양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다. 과반수를 가진 쪽에서 다수결 원칙만을 무기로 하여 밀어붙이려고만 하는 것이 문제다. 이는 여야관계를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로 만들고 국회의사당을 격투 장으로 변질시킨다. 이것은  여야의 협상력과 정치력 부족 때문이기도 하지만 좀더 파고 들어가면 현재의 정치제도의 결함과도 맞닿아 있다.
즉 중앙당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쥐고 있어 정치생명을 좌우하기 때문에 차기 공천을 받기 위해 소속 정당에 목숨을 건 충성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게다가 여당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의 친위대로 변질되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박근혜-새누리당 정권의 경우를 보면 한국정치의 한계가 쉽게 증명된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직면한 인사지연 사태는 빨리 해소돼야 한다. 대국적으로 봐서 그렇다. 원칙도 좋지만 실용적 관점도 역시 중요하다. 우리 국민들이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새 정부가 진용을 갖추더라도 적폐청산과 제도개혁을 가로막는 장벽은 높다. 

구월환(丘月煥)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전 연합통신 정치부장, 영국특파원, 논설위원, 상무
전 세계일보 편집국장, 주필
전 관훈클럽 총무
전 한국 신문방송 편집인협회 이사
전 MBC재단(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전 순천향대학교 초빙교수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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