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재벌 저격수'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의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김 위원장은 경제전문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 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국내 재벌 연구의 '1인자'로 불리는만큼 공정한 경제 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해 주길 기대하는 시민들의 반응과는 달리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바로 재벌 기업들이다. 김 위원장의 공식 취임으로 일감 몰아주기와 유통업계 갑질 근절 등 강한 드라이브가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는 강력한 재벌개혁 기조가 자칫 경영 위축을 불러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색이다.

 

(사진=최병춘 기자)

공정위 다지기 나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14일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의 확립은 새 정부의 국정과제 차원을 넘어선 공정위의 존립 목적이자 시대가 부여한 책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시장의 활력을 회복하고 공정한 경쟁과 1차 분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며 "시장 안에서의 1차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시장 밖에서의 재분배 정책, 즉 2차 분배 정책만으로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공정한 1차 분배가 이뤄지는 것은 범정부 차원의 노력과 국회와의 협치가 필요한 과제"라며 "이 과제를 수행하는 긴 여정의 선두에 공정위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하도급 중소기업, 가맹점주, 대리점사업자, 골목상권 등 '을의 눈물'을 닦는 것이 새 정부의 핵심 공약"이라며 "'경쟁 보호'라는 제도적 기반이 '경쟁자 보호'라는 사회적 요구와 꼭 양립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날 김 위원장은 직원들에게 퇴직 관료나 로펌의 변호사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자제하라고도 주문했다.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조직으로 공정위를 바로 세우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는 다른 어느 부처보다도 더 높은 윤리의식과 청렴성이 요구된다"며 "업무시간 이외에는 공정위 OB들이나 로펌의 변호사 등 이해관계자들과 접촉하는 일은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조만간 공정위 전체 차원의 시스템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첫 타깃은?

김 위원장은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하도급 불공정행위, 유통업계 갑질 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 볼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김 위원장은 재벌 저승사자로 불리는 공정위 조사국을 12년만에 부활시켰다. 대기업 총수 일가가 세운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현행법에 저촉되거나 일감몰아주기 방안이 강화될 경우 위반대상이 될 수 있는 회사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만약 공정위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총수일가 지분 기준 현행 30%에서 20%로 낮출 경우 결국 기업 총수들은 지분 상당수를 매각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익명을 요구한 H그룹 관계자는 <뉴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공정위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 될지에 대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과도한 몰아주기 억제라는 정책의 취지는 공감한다"며 "다만 수년간 거래해오던 자회가가 있고 기술력 또한 우수한데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인해 다른 기업과 계약을 해야 한다면 경쟁력 약화라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다른 기업들보다 자회사와 계약할 경우 업무에 대한 믿음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며 이는 완성제품의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다"며 "내부거래의 부정적인 부분만 보지는 말아달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 위원장은 유통업계 갑질 문제 해결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밝히기도 했다. 특히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된 만큼 과징금 한도가 상향 될 가능성이 높아 유통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그간 공정위가 대기업의 매출규모에 비해 매우 적은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무혐의 처분을 내린것을 두고 불공정행위를 뿌리 뽑으려면 공정위부터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유통 대기업이나 프랜차이즈기업들이 불공정행위를 되풀이하는 것은 불공정행위로 얻는 이익이 과징금보다 훨씬 크기 때문. 따라서 과징금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불공정행위를 뿌리 뽑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김 위원장은 지난달 "미국·유럽연합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라며 "과징금 부과기준율과 부과 한도를 상향하고 법 위반 반복시 가중치를 높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부당행위 관련 매출액의 1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미국이 관련 매출액의 2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것과 비교하면 제재 수준이 높지 않다. 이마저도 산정 과정에서 깎여 실제 부과율은 2.5% 수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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