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의 디스코 팡팡( 사진= 신현지 기자)

[뉴스포스트=신현지 기자] 서울에서 가장 짧은 거리에 바다를 볼 수 있는 장소를 뽑는다면 아마도 인천의 월미도가 될 것 같다. 인천시의 중심지에서 서쪽으로 약 1km 거리의 위치에서 내항의 방파제 역할과 함께 인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진 월미도.

월미도는 섬의 모양이 반달 꼬리처럼 휘어져 있다고 하여 월미도라고 했다고 한다. 섬의 최고지점은 94m이다. 1883년 인천 개항을 전후해 외세의 각축장은 물론 일제강점기에는 군사기지로, 대한제국 말기에는 장미섬(Rose Island)이라는 명칭으로, 6·25전쟁 시 인천상륙작전의 전초기지로 중요시되면서 미군기지로 이용되기도 했던 월미도를 찾았다.

월미도가 관광코스의 전초를 이룬 것은 1918년 인천 내항에 도크(dock)를 건설하고 한강에서 흘러드는 급한 물살을 막기 위한 약 1㎞에 달하는 제방을 쌓으면서부터였다.

월미도의 낙조(사진=신현지 기자)

여기에 1962년 석축제방으로 해안도로를 건설하고 1988년, 본격적으로 인천항 방파제 주변의 여러 시설물이 정비되면서 너비 20m, 길이 0.8km의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 카페와 횟집까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역할에 관광명소로 급상승했다.

월미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탕인 ‘조탕’이 증설되면서 인천은 몰라도 월미도는 안다는 말을 생성해 냈다.

이에 관련한 조탕은 일반적인 바닷물이 아니라, 지하 암반층에서 바닷물과 성분이 비슷한 지하수를 끓인 목욕물로 1922년 철도국에서 경인 구간의 승객을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건설되었던 것인데 당대의 최고의 유락 시설로 손꼽혔다 한다. 조탕은 이후 민간업체가 경영을 인수받아 바다에 뜬 모양의 용궁각과 3층 목조건물의 빈(濱)호텔로 인천은 서울까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지만 조탕은 6.25전쟁으로 인해 그 전성시대의 막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다고 월미도가 힘을 잃은 건 아니었다. 오늘날에는 월미도 테마파크로 발전하여 휴일은 물론 평일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도시로써 손색없게 하고 있다.

월미도의 바이킹(사진=신현지 기자)

즉, 하늘 높이로 뛰어 오를 때마다 비명이 저절로 터지는 바이킹, 월미도의 백미로 꼽히는 디스코 팡팡, 디스코 팡팡 디제이들의 입담과 재치에 참을 수 없이 터지는 폭소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들이 유명 방송인들 뺨치게 재미나는 건 확실하다.

“뭐시여! 휴가 나온 군인이 애인도 없이 혼자 나왔다 이 말이여? 음마, 그럼 뭔 재미로 디스코 팡팡을 탄다냐, 가만있어 봐, 그럼 이 엉아가 첫 휴가 선물로 애인하나 만들어 줄 텐 게 기다려 봐.” 라면서 디스코 팡팡을 어르고 달래 여성 한 명을 톡톡 휴가 나온 병사 앞에 떨구어 주는 그런 장면은 여기 월미도 아니고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월미도 테마파크 전경(사진=신현지 기자)

연인들의 사랑고백 장으로 알려진 대관람차 역시 만원이다. 대관람차에서 사랑고백을 하면 100% 이루어진다니. 어디 그뿐인가. 사이버루프, 범퍼카, 회전목마, 미니룸라이드, 점핑스타 등등은 성별 나이를 떠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한 스릴이다.

더욱이 바다 주변을 순회할 수 있는 유람선과 서해의 낙조를 즐길 수 있는 기쁨 역시 월미도를 찾지 않고서는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다. <뉴스포스트>가 찾은 이날에도 월미도 테마파크 여기저기에서 터지는 비명과 폭소로 인천시는 물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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