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성과연봉제 '운명의 날', 오늘 폐지 수순 논의
금융권 노조 "성과급 반납 당연, 노동환경 개선 위한 책임 마다 않겠다"

[뉴스포스트=박은미 기자] “성과연봉제 조기이행으로 지난해 직원 1인당 약 60만원의 성과보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돈을 받고 기뻐하는 직원은 없었습니다. 성과연봉제가 폐지만 된다면 당연히 모든 직원이 뱉어낼 겁니다. 이미 예금보험공사 노조는 성과 보수 반납에 찬성했으며, 다른 금융공공기관들의 생각도 같습니다. 반납된 성과급이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는 반납처만 제대로 만들어 주십쇼. 성과급 1600억원이 시드머니에 형식의 일자리 창출기금으로 운용되며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저희 금융 노동계의 바람 입니다”

한형구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위원장의 얘기다. 한 위원장은 예보 노조는 조기이행으로 받은 성과급을 일자리 창출기금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 합의했다고 16일 밝혔다. 더불어 본지 취재 결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 또한 성과급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내놓은 것에 동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로써 금융 노동계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아졌다. 혈세 낭비로 귀결 될 뻔 했던 박근혜 정부의 성과급 1600억원이 일자리 창출기금으로 활용 될 수 있을지 이제는 정부의 손에 달린 것이다.

 

한형구 예금보험공사 노동조합위원장 (사진=박은미 기자)

성과연봉제 폐지는 ‘비정상의 정상화’

기획재정부는 오는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를 열었다. 이번 공운위에서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폐지 여부와 관련 임금 체계 개편 방안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6월 공공기관 120곳에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공공기관의 방만경영을 막고 효율성을 높인다는 명목이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적극적인 찬성입장을 표명하자 공공금융기관들도 앞장서 도입하기 시작했다.

공공금융기관 노조들은 성과연봉제 도입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전면 무효”를 주장하며 맞섰다.

‘성과연봉제 도입 1호’라는 기록을 세운 예보는 이번 성과연봉제 폐지는 진실이 승리한 당연한 결과라고 평했다.

한 위원장은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자산관리공사, 신용보증기금 등 10개 금융공공기관 중 노사 합의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은 예금보험공사와 주택기금공사 두 곳 뿐이다”며 “하지만 사측이 주장하는 ‘노사 합의’는 사실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성과연봉제 도입 당시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63%가 반대했음에도 전 위원장은 사측의 강압으로 인해 독단적으로 합의한 것으로, 얼마전 성과연봉제 폐지 찬반 투표에서 투표자 전원이 반대하기도 했다”며 폐지의 당위성에 대해 강조했다.

금융노조 또한 성과급 폐지는 비정상의 정상화라며 환영을 뜻을 밝혔다.

문병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 13일 노정협의(양대 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와 기획재정부)에서 노사합의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 등으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관의 경우 이사회를 열어 종전 결정을 폐기해야 한다고 결론이 났다”며 “금융노조는 이러한 노정협의의 결과에 대해 우리나라 법과 상식에 비추어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병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부위원장 (사진=금융노조 제공)

“일자리 창출에 써달라” 

전문가들은 성과급 환수가 성과연봉제 폐지의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미 준 돈을 다시 거둬들인다는 점에서 정책 신뢰 문제와 법적인 문제도 얽혀 있어 환수가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공공금융기관 노조가 성과연봉제 인센티브로 받은 1600억 원을 일자리 창출 재원 등으로 사용하자며 선뜻 반납의 뜻을 밝혔다. 노동계가 자발적으로 사회적 연대 동참 의사를 밝히면서 성과급 회수 작업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예보는 반납된 성과급이 일자리 창출기금으로 운용되길 희망했다.

한 위원장은 “그간 성과연봉제 무효를 촉구하며 받은 성과급을 내놓겠다고 재차 말해왔다”며 “그러나 ‘성과연봉제는 유효하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입장이다 보니 반납에 대한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새 정부가 성과급 환수를 위한 반납처를 만들어주길 바란다”며 “특히 ‘일자리창출기금’이란 반납처가 생기면 환수가 더욱 쉽고 이를 성금 형태로도 만들어 장기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 위원장은 1998년 IMF 당시 ‘금모으기 운동의 저력’을 사례로 들며 최악의 일자리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공공기관들이 먼저 나서 폭넓은 공감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의해 낭비될 뻔 했던 세금이 일자리 창출이란 공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은 국민들의 눈높이에도 부응한다는 것.

한 위원장은 “기금을 시드머니 형태로 지원해 일자리 지원 사업을 펼칠 수 있게 함으로써 고용창출 효과를 내길 희망하고 있다”며 “사회가 이롭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노동계도 국민들의 눈높이와 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당부했다.

금융노조도 1600억원 규모의 성과급 환수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문 부위원장은 “성과연봉제를 원칙적으로 반대해온만큼 관련 인센티브를 반납하는 것에 적극 동의한다”며 “환수된 금액이 비정규직 처우개선이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에 사용되길 바란다”며 소신을 밝혔다.

이어 “금융노조는 새 정부의 눈엣 가시 같은 존재가 아니라 새 정부의 일자리정책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돕는 조력자가 되기를 희망한다”며 “정부가 앞으로도 노동존중의 정책을 펼쳐나간다면 금융노조 또한 거기에 부응하여 노동조합으로서 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사진=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제공)

직무급제가 대안? 과정이 중요하다

성과연봉제가 폐기된다고 해도 새 정부가 기존의 호봉제를 인정할 가능성은 낮다. 문재인 대통령도 선거 기간 중 현행 연공형 호봉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현재 대안으로 유력하게 제시되고 있는 임금 체계는 직무급제다. 직무급제는 업무 성격이나 난이도, 직무 책임성에 따라 임금 차이를 두는 제도다.

하지만 최상위 직급과 최하위 직급 간 임금 격차 문제에서부터 동일직급 내 임금 격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소지가 남아있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가 명확히 분리된 상태라서 임금 격차 문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만큼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공금융기관 노조들은 직무급제에 대한 찬반을 논하기 앞서, 정부와 현장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예보는 정부의 결정을 기업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구조가 아닌 현장의 의견을 염두에 두고 입금체계 개편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위원장은 “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최우선으로 반영하겠다는 소통의 자세만 보여준다면 새로운 임금체계 도입 과정에 전 정부 때와 같은 잡음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변화하는 노동환경과 직무성격을 진지하게 파악하고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문을 거치면 합리적인 임금체계가 나올 것이다”며 “물론 이 과정에는 현장 실무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금융노조는 성과연봉제의 대안으로 떠 오론 직무급제에 대한 찬반을 밝히는 것은 이르다는 입장이다. 성과연봉제든 직무급제든 임금체계의 개편은 법에 따라 노사 간 충분한 소통을 통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는 것.

문 부위원장은 “임금체계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정부가 직무급제 등 임금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필요성에 대해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과 도입 시기 등에 대해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게 맞다”며 “그렇지 않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노정 및 노사관계는 또다시 박근혜 정권 시절로 후퇴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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